리뷰
북한춤이 남한에서 관심권외에 놓인 지 꽤 되는 듯하다. 1980년대 말 무렵 동서 해빙(解氷)과 북한 및 공산권 자료 해금(解禁)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북한춤에 대해서도 관심이 고조되던 그 시기에 학구적 연구 작업도 더러 행해진 바 있다. 몇해 그러다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북한춤은 다시 관심권 바깥으로 밀려났었다. 최근 있은 〈안은미의 북한춤〉은 북한춤을 무대에 올려서 그러한 관심을 새삼 자극한 드문 이벤트로 특기된다(6월 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90년대 초 북한춤이 관심을 끌었다 해도 북한춤이 남한에서 제대로 무대화된 경우는 사실상 전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료 소개 차원 이외에 북한 공연단이 남한에서 어쩌다 북한춤 레퍼토리 몇 가지를 드물게 올린 공연들이 무대화 사례로 손꼽힐 뿐이다. 특히 당시에는 VHS 비디오 테이프 자료나 중국 동북 지방에서 온 동포 무용인들이 소규모 워크숍 형태로 전한 북한춤 소개가 대종을 이루었다. 이와는 별개로, 재일동포 출신으로 북한에서 몇해 수학한 백향주가 2000년을 전후한 몇 차례 공연을 통해 최승희 류의 춤을 남한에 소개한 바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단된 금강산 관광 말고 (대한민국 국적자의) 북한 여행은 물론 북한 현지에서의 학습 및 수련이 원천적으로 위법인 상황에서 북한춤(을 향한 관심)을 무대화할 무용인이 사실상 없(었)다. 탈북민 가운데 북한춤 전공자가 있을 듯하지만 남한 춤계에 동화된 경우 또한 전무해서 무대화 경로도 실제 막연한 편이다. 게다가 북한춤이 전체주의 사회 체제로부터의 제약이 완강하고 시대 감각도 처진다는 인식 등이 북한춤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이 같은 복합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동질성 측면에서 북한춤에 대한 미온적 관심을 더 이상 방치하기가 바람직스럽지 않은 정황에서, 〈안은미의 북한춤〉이 새 물꼬를 트는 계기로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은미의 북한춤〉은 북한 개량의 25현 가야금이 공연장의 어둠 속 적막을 깨뜨리듯 탄주(彈奏)되면서 격정적 선율이 크게 울려 퍼지고 안은미 제 자신이 최승희의 〈보살춤〉을 잠시 재현한 후 무대 전면에 스톱워치에서처럼 1945 숫자부터 하나씩 빠르게 더해져 비춰지면서 2018 숫자에서 딱 멈추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지난 70여 년 남북 사이에 누적된 세월의 더깨와 최승희의 상징성을 전제로 〈안은미의 북한춤〉은 남녀 장병들의 제식(制式) 행진, 부채춤, 쟁강춤, 팔뚝춤, 상모 돌리기, 옹헤야, 깃발춤, 대중춤과 최승희의 〈조선민족무용〉을 소재로 재빠르게 펼쳐졌다.
이들 춤과 동작들은 선후 관계 같은 연관성 없이 제 각각 독립된 소재로서 옴니버스 양식으로 진행된다. 움직임들은 북한춤의 일반적 특성으로 들어지곤 하는 상체를 곧추 세우거나 대개는 위를 지향하며 위를 향해 끝맺음하는 동작 등을 절도 있으면서 대체로 빠르게 전개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러한 모습들에 힘입어 이번 공연은 북한춤의 중핵에 정곡을 찌르듯이 접근하는 품새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 더해 형광색조와 비닐 재질로 제작된 땡땡이 느낌의 은색 및 옅은 남색조의 대형 막이 무대를 두루 감싸며 또 유사한 느낌의 알록달록한 몽당치마와 바지저고리, 진푸른색 쾌자, 누런색 제복, 짙은 청록색 연회복, 검정 정장 외출복 등의 복색에서부터 (평소 안은미의 개성으로 여겨지는) 안은미스러운 감성이 완연하다. 이 무대와 복색의 분위기는 순발력 있게 약동하는 움직임들을 알록달록 생동감 있게 뒷받침하여 이번 무대에서 북한 스타일의 흥취(興趣)를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에 확립된 북한의 주체무용에서 인민성이 절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누구나 대개 짐작할, 상식이다. 이를 넓혀 보면 북한춤이 춤의 공감도 면에서 객석 대중과의 호흡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객석이 즉석에서 수용하는 춤사위로써 춤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은 북한춤이 남한춤에 대해 갖는 차별점이며 얼마간 강점이기도 하다. 〈안은미의 북한춤〉이 이번에 유쾌하게 받아들여진 저변에는 이 같은 차별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남북한이 함께 선호하는 북한 대중 노래 〈반갑습니다〉가 마치 주제곡인 듯이 공연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선도하는 가운데 공연 후반부에 드레스 차림의 안은미가 〈휘파람〉 노래를 립싱크하면서 가수 같은 몸짓을 과장되게 재연하는 부분에서는 안은미스러움이 더욱 고조된다.
북한춤을 소개한다고 하여 무대에 그대로 옮겨 재현하는 그간의 드문 사례를 생각해 보면, 그 같은 재현이 지금의 객석에서 얼마나 호소력 있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말하자면, 북한춤의 개성을 안은미는 이번에 자신의 감성을 자유롭게 경유하여 객석에 각인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달라지는 시대의 지평 위에서 북한춤에 색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연은 북한춤의 동작적 특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북한의 사회 체제와 정치 이념 및 지역적 기질과 생활 정서 같은 요인들이 맞물려 그 같은 특질을 형성했을 것이고, 북한춤을 제대로 수용하는 데 있어 춤에 앞서 이 같은 요인에 대한 이해가 전제를 이룬다. 관객들도 특히 북한의 사회 체제와 정치 이념 및 생활 정서에 대해 나름의 이해로써 공연에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그 같은 이해가 희박한 환경에서는 아마도 〈안은미의 북한춤〉은 관광식 극장식당에서 접할 부류의 유쾌한 아크로배틱 정도에 머물지도 모른다. 이처럼 춤의 수용은 춤의 배경 맥락과 밀접한 상관 관계에 놓인다. 따라서 분단이 깊어지고 서로 외면할수록 북한춤의 배경 맥락을 놓칠 가능성도 높아가기 마련이다.
춤의 동작으로 구현되는 작품 측면에서 〈안은미의 북한춤〉은 주로 쟁강춤 같은 소품들을 인용한다. 이런 점에서 〈안은미의 북한춤〉에서는 일부 북한춤이 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안은미의 북한춤〉이 안은미 식으로 북한춤을 소화해낸 장(장)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번 공연은 발랄한 정서를 바탕으로 북한춤의 동작적 특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간과할 수 없는 점으로서, 안은미의 감성이 두드러진 때문에 〈안은미의 북한춤〉에 대해 객석에서의 호응이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 통일에 대한 열망이 예전 같지 않아 보이는 시대에 이르러 종전 선언과 더불어 남북 교류가 다시 추진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의미심장하다. 한 뿌리였던 한반도의 춤은 남북 간의 상당히 이질적 춤 세계로 나뉜 현실 속에서도 나름 특질들을 구현해왔다. 이들 특질을 남북의 소중한 자산으로 공유(共有)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안은미의 북한춤〉은 통일로 향하는 도정에서 안은미 특유의 춤 상상력으로 문이 열려라 재촉하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