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획_ 공공재단 기획형 지원사업 진단(1)리뷰 서울문화재단 ‘닻 DOT’
분명한 콘셉트, 차별화된 아이디어
장광열_춤비평가
 서울문화재단 소속 서울무용센터가 시행하는 ‘닻 DOT’에는 ‘유망예술지원사업’이란 타이틀이 붙어있다. 수년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 형 지원사업은 시작 때부터 기존의 춤 작업과는 차별화된 실험적인 것들을 추구해 왔다.
 1월 17일부터 27일 사이 ‘닻 DOT’에 선정된 4명 안무가들 작품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차례로 선을 보였다.




 안무가 공영선은 작품 〈곰에서 왕으로〉를 세 달에 걸쳐 세 편으로 나누어 연작으로 발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곰에서 왕으로- 바위편〉 (1월 17-18일 서울무용센터 스튜디오 블랙, 평자 17일 관람)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신화와 인간을 연계시킨 구도가 작품 전편에 묻어났다.
 울퉁불퉁한 서로 떨어져 있는 2개의 바위 형상 중 하나는 녹색으로 치장되어 검정 톤의 또 다른 형상과 색채적인 대비를 보인다. 곳곳으로 이동하는 이 두 개의 형상은 놓인 위치에 따라 객석에서 보이는 형태도 각기 달라진다. 공영선은 그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지 않으려 몸을 지탱하기도 하고, 가뿐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숨을 멈추었다 내뱉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소품을 활용한 공영선의 지체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확장이 주는 묘미 외에 몸과 소품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상징성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신화와 인간과의 어떤 연계를 말하고자 한 느낌은 어렴풋이 전해진다. 무대에 흩어진 상징들이 개개 관객들에게 개인의 신화로 엮이기를 염두에 둔 안무가의 의도는 이쯤 되면 다음 연작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폭시킨다.
 세 개 작품 연작을 표방한 만큼 1편을 본 관객들은 이어지는 다음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세 편의 작업이 오롯이 끝나기 전까지는 work process 형태로 남는 만큼 완결편 작업에 대한 기대치는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작업자의 입장에서는 공연된 작품에 대한 분석과 관객들의 반응을 듣고 다음 편에 대한 방향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창작자나 관객 모두에게 이런 형태의 작업 과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화이트큐브 프로젝트1’이란 부제가 붙은 정성태의 〈가장 소중한 것〉 (1월 19~20일 서강대학교메리홀소극장, 평자 19일 관람)은 몇몇 댄서들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구사가 능란하고 이를 십분 활용한 작업이란 점에서 여타의 춤작업과 차별성을 갖는다.
 그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프랑스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작은 장식적인 아름다움〉에서 보여주었던 무용수들의 등에 강력한 고무 밴드를 부착하고 그것의 탄력성을 활용해 무대 위를 날아다니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백색으로 치장된 사각형의 무대(화이트 큐브)는 이 작품의 중요한 골격이다. 전반부에는 이 큐브를 중심으로 키가 각기 다른 4명의 댄서들이 위치를 이동하면서 만들어내는 지체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라면, 후반부는 큐브 아래에 숨겨져 있던 스프링보드를 이용해 댄서들의 몸을 더 빠른 동체로 변환시키고 보드의 탄성을 이용 몸의 각도와 방향 그리고 높낮이를 자유롭게 변형시킨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객석의 구조상 시선을 수평 또는 아래로 고정시켰던 관객들은 댄서들의 이 변화무쌍한 동체의 떠다님으로 인해 새롭게 확장된 공간 속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묘한 흥분과 함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댄서들을 지켜보는 관람의 재미가 쏠쏠하다.
 안무가는 백색으로 치장된 큐브형 무대세트에 높지 않은 계단을 만들어 이곳에 댄서들을 배치하고, 스프링보드의 탄성을 이용해 수직적인 공간까지를 구획하면서 무대미술을 활용, 공간과 움직임을 매칭시키는 범상치 않은 안무 감각을 발휘했다.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연극 및 미술, 넌버벌 등 다양한 장르와 작업해온 정성태는 물론이고 심주영의 곡예적인 움직임, 댄서 중 가장 몸집이 큰 김성록의 매칭은 화이트 큐브를 이야기를 풀어내는 키워드로 사용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구성하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하겠다는 안무가 자신의 의도를 가장 근접시킨 일등 공신들이다.




 안무가 최명현의 〈시간은 무게다〉(1월 20~21일 M극장, 평자 21일 관람). “물이 깨진다” “유리가 자란다” “소리가 녹는다“ 란 팸플릿에 게재된 몇 개의 문장이 던져준 호기심은 작품을 보고나서야 해소되었다.
 수십 개의 병에 담긴 물이 부어지고, 와인 잔은 담겨진 물과 함께 바닥을 향해 날아간다. 댄스 플로어를 흥건히 적신, 물 위로 댄서들의 흰색 운동화가 밀착되면서 생성되는 소리, 흩어진 유리 조각들 위로 신발을 벗어던진 댄서들의 발바닥과 몸이 밀착되면서 그 유리 파편들 위로 몸을 부비고 밟고 춤 출 때 관객들은 비로소 물이 깨지고, 유리가 자라고, 소리가 녹는 것을 체감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스모그 속을 뚫고 어슴프레 새벽 호숫가에 떠 있는 쪽배, 혹은 구름 속을 유영하는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듯한, 댄서가 머리에 쓰고 움직이는 커다란 오브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음산함과 약간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작품의 전반부를 넘어 중반부 물이 든 수십 개의 병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종반부 깨어진 와인 잔의 유리 파편들 위로 백색 의상의 댄서들이 몸을 내던지는 섬뜩한 장면에 이르기까지 무대는 전체적으로 무겁고 약간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소극장 공간에서 흑과 백의 대비가 주는 선명함,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은 더 땅에 가까워지고, 무게가 전혀 없을 때는 공기보다 가벼워져 땅으로부터 멀어지는 상반된 명제를 두고 안무가는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를 되묻는다.




 안무가 도황주의 ‘전시회를 보는 듯한 춤 공연’의 콘셉트는 비교적 분명했다. 〈변 : 태-전시〉(1월 25~27일 서울무용센터, 평자 27일 관람)는 서울무용센터 1층에 있는 3개의 스튜디오에서 각기 다른 내용의 공연을 설정하고 이를 관객들이 자유롭게 찾아가서 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30여분 정도는 왼편과 오른편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솔로춤 공연을 보고, 마지막 20분 정도는 가운데 스튜디오에서 세 명 퍼포머들의 공연을 보는 형식이다. 관객들의 숫자는 매회 40명으로 제한했다.
 평자의 경우 먼저 오른편 스튜디오에서 남성 무용수의 솔로춤과 만났다. 한 사람이 1분씩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댄서와 관객이 일대일로 춤추고 보는 공연, 바로 코앞에서 댄서가 짧은 단어들을 내뱉으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 관객이 들어오면 무조건 퇴장해야 하는, 이렇게 짧은 공연을 본 적이 없었던 평자에게도 이는 새로운 체감이었다.
 왼편의 스튜디오로 이동하자 여성 댄서 혼자의 춤과 맞닥뜨렸다. 정면의 커튼이 열려있어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스튜디오는, 오른편 커튼이 열리면서 거울이 노출되어 더 밝아졌고, 이어 왼편의 커튼마저 오픈되면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했다. 놓여있던 의자와 스탠드는 공간의 풍광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위치로 이동하면서 댄서의 춤과 조우했다.
 세 번째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한 판 퍼포먼스였다. 공연은 스튜디오 중앙에서 한 명의 퍼포머가 한쪽 구석에 놓인 비닐을 잡아끌어내면서 시작되는데 그 시간이 꽤 오래 계속되었다. 비닐 사이에서 움직이는 댄서들은 비닐 위에 드러눕기도 하고
 두 손과 두 팔로 기어 다니기도 한다. 비닐 속을 헤집고 드러난 바닥을 발바닥과 무릎 손바닥 등으로 밀착시킬 때 나는 소리, 꽤 많은 양의 비닐을 만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와 형태는 청각적으로 시각적으로 관객들의 귀와 눈을 자극한다. 작품 후반부에 들어서면 바람을 맞아 애드벌룬처럼 둥글게 변한 비닐 기구를 퍼포머가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더 넓고 크게 공간을 확장시킨다.
 움직임과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는 비닐은 퍼포먼스를 위한 오브제로서 주요하게 기능한다. 춤 공연을 본다는 것보다 댄서들은 움직이는 전시 속의 한 퍼포머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정도가 되면 사회 환경 속에서 소외되는 신체의 기능에 집중하고자 한, 사회적 소통의 투명성에 대한 환영을 염두에 둔 안무가의 메시지가 어느 정도는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2017 유망예술지원사업 ‘닻 DOT‘은 무용분야에 선정된 5명의 안무가, 지난해 9월 정수동의 〈터미널〉을 시작으로, 새해 1월에는 공영선, 정성태, 최명현, 도황주의 다양하고 실험적 작품들을 지원해왔다.
 창작지원금, 작품별 전문가지원(국제교류, 아카이빙 외) 등 안무가 육성의 특징을 가진 유망예술지원사업이 1개년 지원에서 2개년 지원체계로 확대된 것이다. 지원 기간의 확장에 따라 선정 안무가들은 실험적 접근에서부터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의 제작까지, 2년에 걸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네 명의 젊은 안무가들은 모두 기존의 한국 춤계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작업 유형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문화재단의 기획형 지원사업의 차별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2017 ‘닻 DOT‘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유능한 안무가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일 필요가 있다. 예전에 발표했던 작품을 재조립하거나, 연작 시리즈로 제작하거나, 독창적인 메소드를 활용한 작업 등 기획단계에서부터 분명한 콘셉트를 설정하고 이를 풀어내는 아이디어 역시 다채로웠다는 점에서, 또한 선정 작가들 대부분이 안무가로서의 만만치 않은 감각의 소유자들이란 점에서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8. 02.
사진제공_서울무용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