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크 브루-김보라 〈공·空·Zero〉 & 안은미-칸두코댄스컴퍼니 〈굿모닝 에브리바디〉
질이 담보된, 더 확장된 장애인 무용
장광열_춤비평가
 충만했다.
 댄서들의 몸은 한없이 자유로웠다. 휠체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확장하는 오브제가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몸이 되었다. 두 개의 바디(body)가 따로 하나가 되어 홀로 춤출 때는, 마치 개개의 영혼들이 부유하는 듯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만든 신작, 마크 브루-김보라의 〈공·空·Zero〉(3월 17-18일 아르코예술소극장, 평자 17일 관람)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선사했다.
 울퉁불퉁한 금속성의 빛깔로 채색된, 네모난 거대한 바위(디자인 김종석)와 마크 브루(Marc Brew)가 무대에 등장할 때 타고 온 휠체어는 작품을 풀어 나가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소극장 공간을 육중하게 차지하고 있던 바위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금씩 움직이며 공간을 마름질하고, 어느 순간에는 확연하게 이동, 아예 그 무대를 분할해 버린다. 바위가 서서히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그 기울어진 공간 사이를 김보라가 비집고 들어갈 때 무대는 전혀 새로운 또 다른 공간으로 확장된다. 헬륨 가스를 이용, 떠다닐 수 있도록 한 이 바위는 두 안무자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한 '비움'과 연계되어 있다.


 

 

 김보라와 마크 브루가 조합해 내는 움직임의 변이는 다음 순간을 기대할 만큼, 예기치 않은 즉흥의 묘미를 한껏 선사했다. 김보라가 움직이는 육중한 바위를 자신의 등으로 막아 선 채 휠체어 위에 앉은 마크의 한 손을 잡을 때 만들어진 선명한 곡선 라인, 해체된 휠체어, 마크가 휠체어에서 벗어나 바닥에 자신의 몸을 누이려 할 때, 마크가 쓴 모자를 김보라가, 김보라의 상의를 마크가 쓰고 입을 때 만들어지는 움직임 조합은, 반복되는 연습에 의한 춤추기를 뛰어넘는, 즉흥안무의 백미였다.
 경사진 바위 아래 의자를 사이에 두고 추는 2인무는 작품의 정점에서 빛났고, 김보라의 무표정 페이스 연기는 압권이었다. 브루의 휘파람 소리 등 간헐적으로 청각을 자극하는 음악(Angus MacRae), 조명(이승호)을 활용 두 무용수의 실루엣이 바위에 투사되는 시각적인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휠체어와 의자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확장시키는 이들의 작업은 출중했다. 빼어난 감각과 순발력을 갖춘, 내공이 쌓인 댄서들의 내밀한 감정의 교감은 이들이 구획한 몸, 시간, 공간과 오버랩되어 창조적인 몸의 예술로 치환되었다.
 협업을 통해 댄서로서, 안무가로서 김보라의 또 다른 재능과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업을 줄곧 지켜보고 있는 평자로서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마크 브루와 김보라의 협업이 소극장 공간에서의 내밀한 작업이었다면, 영국의 장애인 무용단인 칸두코댄스컴퍼니(Candoco Dance Company)와 한국의 안무가 안은미의 협업 작품인 〈굿모닝 에브리바디〉(3월 17-18일 아르코예술대극장, 평자 18일 관람)는 장애인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인 장애와 비장애인 무용수들의 온전한 몸의 결합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구현이 보다 적나라하게 이루어져 대조를 이루었다.
 안무가에 의해 구현된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들의 몸의 조합은 군무와 솔로로, 때론 2인무 등으로 다채롭게 변환되었고, 댄서들의 각기 다른 지체의 태(態)는 안무가에 의해 새로운 몸으로 확장되었다.
 안무가는 한 쪽 다리가 없는 여성 댄서는 두 개의 목발에 의해, 두 다리가 없는 남성 댄서는 크고 강한 상체에 의해 그 움직임이 더욱 확연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휠체어에 앉은 남성 무용수와 그 휠체어의 두 바퀴를 손으로 지탱하는 정상적인 여성 무용수의 2인무 등 장애를 가진 무용수들 사이를 파고드는 정상적인 무용수의 가세는 그 자체로 새로운 조형미를 구현하는 소스(source)였다.


 

 

 전반부의 다소 무거운 분위기는 중반을 넘어 안무가 특유의 색깔이 덧입혀지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무용수들이 일렬로 도열할 때 안은미 특유의 색채적인 감각이 작품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안은미는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과의 작업을 경험한 안무가답게 개개 무용수가 갖고 있는 지체 그 자체를 작품 속에서 하나의 유용한 콘텐츠로 작용시켰다. 지난해 두 명의 장애인 배우와 8명의 전문 무용수들을 출연시킨 〈大心땐쓰〉에서 왜소증(저신장) 장애인인 두 명의 퍼포머는 작품의 전체적인 성격이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무자 안은미는 〈大心땐쓰〉에서 장애인 출연자의 등장으로 인한 깜짝쇼가 아니라 독창성을 바탕으로 따뜻한 휴머니티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냈던 경험을 이번 작품에서는 유용하게 활용했다.


 

 

 영국의 장애인 공연예술 단체를 이끌고 있는 마크 브루와 김보라, 영국의 장애인무용단 간두코댄스컴퍼니와 안은미의 이번 협업 공연은 한국과 영국 상호교류의 해 폐막행사로 마련되었다. 주한영국문화원은 ‘크리에이티브 퓨처스’라는 슬로건 아래 2017년 2월부터 2018년 3월까지 1년간 진행되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들은 총 6–7주 간 공동 워크숍을 통해 60분 내외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물인 이번 세계 초연은 평창문화올림픽 프로그램 중 하나이기도 했다. ‘페스티벌 아름다움: 아름다운 다름’이란 타이틀에서 유추되듯 장애인과 비장애인 댄서들의 함께 하는 이 무대는 무용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임을 각인시켰다.
 2년 전 태동된 국제 장애인 무용축제와 트러스트무용단, 안은미댄스컴퍼니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장애인 무용작업 등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장애인 무용은 변방이 아닌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흐름 속에서 마련된 이번 공연은 장애인 무용의 협업이 국제적으로, 그리고 보다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장애인 무용의 확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8. 04.
사진제공_주한영국문화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