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영두 〈푸가 Two in One〉
뭉근하게 우러난 음악과 춤의 향취
방희망_춤비평가
2015년 10월 LG아트센터와 (재)안산문화재단이 공동제작했던 안무가 정영두의 〈푸가〉가 올해는 안산문화재단과 클래식 공연 기획사인 목(MOC) 프로덕션과의 공동기획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푸가 Two in One〉(12월 8~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 평자 8일 관람).
전자가 대극장용 규모로 7명의 무용수들이 11곡에 맞추어 춤을 꽉 채운 작품이었다면, 이번에 선보인 〈푸가 Two in One〉은 두 명 피아니스트와 두 명의 무용수로써 음악과 춤을 번갈아 올리거나 합치기도 하는 형태의 소극장용 공연이었다. 2015년 버전의 〈푸가〉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악기군의 합주도 풍부하게 사용했지만 녹음된 연주를 썼고, 올해의 〈푸가 Two in One〉은 두 대의 피아노(손일훈의 편곡)가 무대 위에서 동등하게 실연을 펼쳤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전자가 대극장용 규모로 7명의 무용수들이 11곡에 맞추어 춤을 꽉 채운 작품이었다면, 이번에 선보인 〈푸가 Two in One〉은 두 명 피아니스트와 두 명의 무용수로써 음악과 춤을 번갈아 올리거나 합치기도 하는 형태의 소극장용 공연이었다. 2015년 버전의 〈푸가〉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악기군의 합주도 풍부하게 사용했지만 녹음된 연주를 썼고, 올해의 〈푸가 Two in One〉은 두 대의 피아노(손일훈의 편곡)가 무대 위에서 동등하게 실연을 펼쳤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2015년의 무대에도 섰던 김지혜와 하미라, 두 무용수는 각각 두 차례의 솔로를 춘 다음 두 곡에서 듀엣을 추었기 때문에 춤에 사용된 곡은 모두 6곡이었다. 그 6곡은 전부 예전 공연에서 안무가가 사용했던 곡이지만, 하미라의 두 번째 솔로인 Contrapunctus 9('푸가의 기법’, BWV 1080 中)나 두 사람의 첫 듀엣인 Canon alla Ottava(역시 ‘푸가의 기법’ 中)만 같은 구성일 뿐, 나머지 네 곡은 예전 안무의 복잡한 무용수 구성으로부터 변화를 꾀한 것들이었다.
안무가의 전작이 악기 구성과 무용수 구성을 대응시키거나 악보의 흐름을 동작들로 치환시키며 귀로 듣는 푸가를 눈으로 바로 볼 수 있게끔 시각화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세월이 지나 소규모 구성으로 다시 찾아온 〈푸가 Two in One〉은 안무가가 바흐의 곡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소회, 마치 숙성된 와인을 조금씩 음미하며 여운을 즐기는 듯한 흥취가 무대를 채웠다.
그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난 장면이 하미라의 두 번째 솔로이다. 금붕어 서너 마리가 담긴 작은 어항을 들고 나와 무대 앞쪽에 놓은 뒤 펼친 춤은, 맨 처음 무대를 열었던 같은 무용수의 솔로와도 사뭇 달랐다.
각진 어깨에 시원시원한 체격을 가진 하미라는 첫 무대에서 그의 체격에 어울리는 직선적이고 강인한 움직임을 구사했었는데, 어항을 앞에 두고서는 뒷짐을 진 채 가볍게 발을 들어 올리며 작은 궤적을 그려나갔다. 무대 뒤편에 자리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로써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어항을 지그시 응시하는 하미라와 작은 물고기들도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용수가 하늘거리는 금붕어의 유유자적함을 함께 즐기는 듯한 모습이랄까. 장자와 혜자의 호량지변(濠梁之辨)―나는 물고기는 아니지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이 생각나기도 하는 유쾌한 순간이었다.
물론 공연이 끝난 뒤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무가는 그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에 변화를 주기 위해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어항을 넣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모르고 춤을 보았던 바로 그 때는 그런 소소한 유쾌함과 유유자적함이 딱딱한 서양음악과 현대무용 사이에 놀랍게도 빛을 발했던 동양적 흥취의 순간이라 느껴졌다.
안무가의 전작이 악기 구성과 무용수 구성을 대응시키거나 악보의 흐름을 동작들로 치환시키며 귀로 듣는 푸가를 눈으로 바로 볼 수 있게끔 시각화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세월이 지나 소규모 구성으로 다시 찾아온 〈푸가 Two in One〉은 안무가가 바흐의 곡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소회, 마치 숙성된 와인을 조금씩 음미하며 여운을 즐기는 듯한 흥취가 무대를 채웠다.
그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난 장면이 하미라의 두 번째 솔로이다. 금붕어 서너 마리가 담긴 작은 어항을 들고 나와 무대 앞쪽에 놓은 뒤 펼친 춤은, 맨 처음 무대를 열었던 같은 무용수의 솔로와도 사뭇 달랐다.
각진 어깨에 시원시원한 체격을 가진 하미라는 첫 무대에서 그의 체격에 어울리는 직선적이고 강인한 움직임을 구사했었는데, 어항을 앞에 두고서는 뒷짐을 진 채 가볍게 발을 들어 올리며 작은 궤적을 그려나갔다. 무대 뒤편에 자리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로써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어항을 지그시 응시하는 하미라와 작은 물고기들도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용수가 하늘거리는 금붕어의 유유자적함을 함께 즐기는 듯한 모습이랄까. 장자와 혜자의 호량지변(濠梁之辨)―나는 물고기는 아니지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이 생각나기도 하는 유쾌한 순간이었다.
물론 공연이 끝난 뒤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무가는 그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에 변화를 주기 위해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어항을 넣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모르고 춤을 보았던 바로 그 때는 그런 소소한 유쾌함과 유유자적함이 딱딱한 서양음악과 현대무용 사이에 놀랍게도 빛을 발했던 동양적 흥취의 순간이라 느껴졌다.
제목의 ‘Two in One’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현되었다. 크게는 음악과 춤의 조우였지만, 공연에 참여한 무용수와 피아니스트의 개성이 상반되었던 점에서도 그렇다. 천의무봉인 것처럼 매끈하게 이어지는 춤의 곡선미를 보여주는 김지혜와 훤칠하고 힘 있는 움직임을 가진 하미라, 대범하고 선 굵은 스타일의 연주력을 가진 김재원과 섬세하고 낭만적인 풍의 피아니스트 한지원의 조합은 그 자체가 푸가가 추구하는 ‘조화’를 실현시킨 셈이었다.
두 피아니스트가 페달을 사용하지 않고 연주했던 전반부에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뱉어내 건조하게 느껴지는 별무리극장의 환경에 피아노의 선율들이 서로 녹아들지 못하고 부딪히며 삐걱거리는 느낌도 있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춤과 음악이 서로를 보완하며 어우러지고 다자간의 합도 맞아떨어지면서 풍성한 무대가 완성되어갔다는 점에서도 특별히 조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음악에 즉각적으로 춤을 대응시킨 안무의 정교한 맛은 15년의 〈푸가〉가 우세하고 이번 작품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성을 취했지만, 시각적 감상만이 예술체험의 전부는 아니기에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다. 전작에는 바흐의 푸가라는 큰 산맥을 넘기 위해 온갖 지력(智力)을 다해 탐구하는 자세로 달려들며 어쩔 수 없는 조급함도 있었다.
이제 안무가는 음악을 온전히 사랑하고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안무가의 글에 썼듯이 사계절의 흐름을 겪어내는 것처럼― 그 마음은 이번 작품에 뭉근하게 우러나 관객에게도 그 평온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두 피아니스트가 페달을 사용하지 않고 연주했던 전반부에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뱉어내 건조하게 느껴지는 별무리극장의 환경에 피아노의 선율들이 서로 녹아들지 못하고 부딪히며 삐걱거리는 느낌도 있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춤과 음악이 서로를 보완하며 어우러지고 다자간의 합도 맞아떨어지면서 풍성한 무대가 완성되어갔다는 점에서도 특별히 조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음악에 즉각적으로 춤을 대응시킨 안무의 정교한 맛은 15년의 〈푸가〉가 우세하고 이번 작품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성을 취했지만, 시각적 감상만이 예술체험의 전부는 아니기에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다. 전작에는 바흐의 푸가라는 큰 산맥을 넘기 위해 온갖 지력(智力)을 다해 탐구하는 자세로 달려들며 어쩔 수 없는 조급함도 있었다.
이제 안무가는 음악을 온전히 사랑하고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안무가의 글에 썼듯이 사계절의 흐름을 겪어내는 것처럼― 그 마음은 이번 작품에 뭉근하게 우러나 관객에게도 그 평온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2015년의 〈푸가〉 공연을 안산에서 마쳤던 직후부터 국립국악원의 검열시비에 저항하는 1인 시위(관련내용은 <춤웹진> 2015년 12월호에 수록된 인터뷰 참조)를 런던에까지 1년 넘게 이어갔던 정영두 안무가의 지난(至難)한 시간을 생각할 때, 꼬박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흐의 푸가를 붙들고 또 한 번 변신을 보여준 그 뚝심은 존경스럽다. 2년의 여정 후 안무가가 제시하는 푸가의 매력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 것은 안무가나 관객이 그간 사뭇 다른 세상을 만들고 맞이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면 억측일까.
한편 지난 국립발레단의 〈안나 까레니나〉에서와 같이 클래식음악의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춤과 만나며 황홀함을 빚어내는 무대가 늘어난 점에서도 이번 〈푸가 Two in One〉의 콘셉트가 반가웠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지혜, 하미라 두 무용수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보통 연습 때도 피아노 반주와 함께할 수 있는 발레무용수들과 달리 컨템포러리 무용수들은 라이브 연주의 섬세하게 달라지는 호흡을 맞출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용수에게는 춤을 추게 하는 본원이 되는 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음악가에게는 음악에 내재된 춤을 보게 하는 이러한 협업은 두 분야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지난 국립발레단의 〈안나 까레니나〉에서와 같이 클래식음악의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춤과 만나며 황홀함을 빚어내는 무대가 늘어난 점에서도 이번 〈푸가 Two in One〉의 콘셉트가 반가웠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지혜, 하미라 두 무용수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보통 연습 때도 피아노 반주와 함께할 수 있는 발레무용수들과 달리 컨템포러리 무용수들은 라이브 연주의 섬세하게 달라지는 호흡을 맞출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용수에게는 춤을 추게 하는 본원이 되는 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음악가에게는 음악에 내재된 춤을 보게 하는 이러한 협업은 두 분야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1.
사진제공_안산문화재단/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