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린스키발레단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백조의 호수〉
마린스키다운 주역, 평범한 군무
방희망_춤비평가
 지난해 마린스키가 인수한 블라디보스토크의 프리모스키 극장 발레단이 <백조의 호수>(11월 9-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평자 12일 관람)를 들고 내한했다. 본진인 상트페테르부르크 1극장의 수석무용수 빅토리아 테레시키나와 동양 출신 남성무용수로는 최초로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을 초청하여 2회 공연을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그동안 몇 번 공식적으로 출시된 영상물이나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백조의 호수>를 이미 접한 관객들이 많고, 이전 마린스키의 내한공연을 관람했던 관객들, 혹은 근래 대중화된 러시아 여행을 통해 본토의 공연을 직접 관람한 경험이 있는 관객들도 상당수에 이르기에 ‘마린스키’의 이름을 걸고 온 프리모스키 스테이지의 수준은 뜨거운 관심사였다.


 

 

 마린스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대표적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백조 군무를 이번에는 보기 어려웠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로 고아함을 자아내야 하는 백조 군무진들의 체격은 기존의 마린스키보다는 확실히 작아 보였다. 일견 동작들이 별다른 실수나 흔들림 없이 맞아떨어지는 듯 보인 것은, 체격조건과 기량이 부족한 것을 가리기 위해 섬세하고 정교한 안무를 추구하지 않고 단순하게 갔기 때문이다.
 보통 ‘네 마리 백조’ 춤에서는 체격이 작은 무용수들을 뽑아 사랑스러운 일체감을 강조하는데, 나머지 백조군무들도 비슷하게 작다보니 차별화가 되지 않기도 했으며, 백조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듯 다리를 튕겨 감아올리는 동작 역시 그 아름다움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이렇듯 백조의 군무는 한마디로 동작의 연결에서 벗어나 ‘춤다운 춤’으로 거듭나지는 못하면서 평범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중요 조역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릿광대나 로트바르트 역시 맛깔스러움이 잘 살지 못했다. 어릿광대는 기본적인 테크닉은 갖추고 있었으나 배역 특유의 착착 붙고 통통 튀는 탄력이 덧붙여지지 못해 평범한 춤에 그쳤고, 로트바르트도 비교적 작은 체격으로 위압적인 존재감을 주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군무를 가끔씩 혼란에 빠뜨리는 듯 했던 것은 지휘자 안톤 토르비예프의 다소 안정적이지 못한 템포 운용이었다. 1막 군무의 퇴장 전 술잔을 들고 추는 춤에서는 군무의 회전을 맞추기 위해 늦춘 템포가 오히려 맞지 않아 엇박이 되는가 하면, 2막 디베르티스망의 마주르카에서는 춤추기 어려워 보일 정도로 광포한 템포로 몰고 나가기도 했다. 서울콘서트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후반부로 갈수록 나아지기는 했지만 총주에서 드럼이나 심벌즈의 음량이 전혀 조절되지 않아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상쇄시키고 관객을 구원한 것은 김기민과 빅토리아 테레시키나였다. 김기민은 1막의 첫 등장에서부터 마린스키에서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시켜주었다. 과연 러시아 무용수들 사이에서 김기민이 지크프리트로 어울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뛰어난 기본기에 마린스키에서 흡수한 상체의 아름다운 표현이 더해지니 완벽한 지크프리트가 되었다. 팔과 손의 우아한 포즈가 돋보였고, 이제 막 성년이 된 왕자의 설렘과 약간의 수줍음이 가미된 표정은 늠름 당당하기만 했던 외국 무용수들의 지크프리트와 차별된 신선함이 있었다. 앳되어 보이는 외모는 극에서 설정된 지크프리트의 원래 나이를 상기시켰고, 그 순진한 연기는 고루한 마린스키 버전의 플롯에 당위성을 부여할 정도였다. 흑조와의 그랑 파드되에서는 명불허전, 그야말로 잠시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점프의 체공을 보여주어 마린스키 버전의 지크프리트 솔로 분량이 적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데트 오딜 역의 빅토리아 테레시키나는 공연을 완전히 장악했다. 어깨에서 상완으로 이어지는 근육이 유난히 가늘게 붙어 더욱 처연하게 아름다운 아치를 그리는 팔의 움직임은 바가노바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는 토르소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펼쳐졌다. 백조 군무의 아쉬움을 그녀가 모두 커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딜을 잘 하는 발레리나는 그래도 많지만 오데트까지 균형 있게 갖추기란 쉽지 않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손끝까지 완벽히 아름답게 세공된 오데트 배리에이션은 마린스키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아우라가 어떤 것인가 증명했다. 김기민과의 호흡은, 흑조 그랑 파드되의 코다에서 김기민의 피루엣이 끝나고 테레시키나의 32회전 푸에테가 시작되는 그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두 주역의 눈부신 열연이 충분한 기쁨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프리모스키 발레단은 아직 마린스키의 이름을 공유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어쨌든 표면적으로야 마린스키이기 때문에 김기민과 테레시키나를 함께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2017년 11월의 관객은 두 사람의 춤을 가까이서 본 것만으로도 만족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글거리는 천의 주름이 고스란히 보였던 1막 1장의 허름한 세트, 굳이 불러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 프리모스키 오케스트라 수석연주자(바이올린 솔로)의 다소 실망스런 연주 등은 관객이 마린스키라는 이름을 앞세운 홍보를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