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제전악-장미의 잔상〉
전작의 독창성 뛰어넘지 못한 탐색전
장광열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전악-장미의 잔상〉(8월 28-30일 토월극장, 평자 29일 관람)은 예술감독 안성수가 한국의 전통악기를 기반으로 만든 창작음악을 사용한 60분 길이의 신작, 안무가의 전작인 〈장미〉〈틀〉〈혼합〉과 연계된 작업이란 점이 관람의 포인트였다.
 안무가는 공연 팸플릿에 “2009년에 만든 〈장미〉는 땅과 여성을 예찬하는 굿이었고, 2013년 국립무용단과 만든 〈단〉은 기원제였고, 2016년에 만든 〈혼합〉은 진혼제였다. 이번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자신이 만든 굿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고 적었다.

 

 
 전체적으로 무대는 심플했다. 제작진들은 토월극장의 장점인 깊은 무대 대신 가운데를 정점으로 하수에서 상수를 가로지르는 5미터 남짓의 흰색 벽을 설치했고 그 위에 연주자들을 위치시켰다. 그 아래로 〈오고무〉에서 사용되는 7개의 북틀을 같은 색깔로 배치했다.
 전작 〈장미〉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원곡을 그대로 사용한 중편, 〈단〉이 15분 남짓 현대적인 감각의 움직임과 한국무용에서 보여 지는 춤사위를 접목한 소품, 〈혼합〉이 기존의 우리 음악을 주조로 사용하면서 무용수들의 춤을 감성적으로 음미할 수 있었던 50분 길이의 소극장 작업이었다면,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60분 길이의 새로운 한국 창작음악을 사용한 중극장 작품이란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반면에 〈제전악-장미의 잔상〉이 안무가의 이전 세 개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 국립 무용단체의 수장으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예술감독 자신이 직접 안무한 한 편의 작품으로 오롯이 하루 공연을 책임진다는 것은 안무가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곧 이 세 가지로 인해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언론과 춤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반대로 제작진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짊어지게 한 셈이다.

 

 
 전체적으로 안무가(안성수)와 작곡가(라예송)는 움직임과 음악, 음악과 움직임의 매칭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전반부 30여 분 동안 안무가는 경기도당굿 장단에 맞춘 태평무의 변용- 솔로춤에서 15명의 군무로 이어지면서 빠른 장단에 녹여낸 상체 위주 팔의 움직임, 오고무의 북틀 주변에서 선보이는 두 개의 북채와 북틀을 활용한 춤과 사운드의 매칭, 그리고 〈장미〉와 〈단〉에서 보여주었던 몸통 회전과 두 팔을 활용한 상체 위주 무용수들의 춤의 유형들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성창용과 최수진의 2인무, 이주희의 솔로춤, 그리고 군무진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형성되는 남여 무용수들의 도약은, 부분부분 움직임 변주를 통한 음악과의 충돌이 가져다주는 감흥을 생성, 이후의 전개에 기대감을 갖게 했다.
 안성수의 안무는 솔로 2인무 군무 등의 배열에서 하나의 춤이 끝나면 다음 춤이 이어지는 정형화 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군무 속에서 예기치 않게 솔로춤, 또는 2인무가 또는 그 반대로 군무에서 솔로춤과 2인무가 자연스럽게 돌출되도록 시도했다. 안무가로서 안성수의 특별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전개구조와 움직임의 스타일이 후반부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작품은 미로에 빠졌다. 〈봄의 제전〉에서 보았던 음악을 넘나드는 무용수들의 에너지, 〈단〉에서 보았던 팔의 움직임을 활용한 느린 춤의 접목은 보였으나 〈혼합〉에서 보았던 궁중음악에서부터 민요, 산조, 창사,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 4중주까지 맞물린 음악과 세밀한 움직임 접합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전작과 차별화 된 또는 그것을 넘어 서는 독창적인 움직임과 이미지의 형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용수와 연주자들이 치장한 검정 의상과 흰색 무대세트가 매칭 된 블랙&화이트의 시각적 대비효과는 지나치게 단조롭게 다가왔고, 무대를 가로 지르며 버티고 있는 변화 없는 세트와 그 위에 자리한 연주자들은 어느 새 춤이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조금씩 방해하는 걸림돌로 보여 지기 시작했다.

 

 
 전작인 〈장미〉는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원곡이 갖고 있는 제의적이면서도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은 안무가에 의해 조합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한 끊임없는 에너지의 분출, 곧 몸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으로 다가왔었다면, 〈제전악-장미의 잔상〉 후반부는 전반부 모색의 단계를 넘어 음악과 움직임의 앙상블, 음악에 의해 ‘살아나는’ 댄서들의 내외적인 앙상블, 악가무가 함께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그 무엇으로 분출되지 못했다.
 안무가는 나름대로 계산된 움직임과 음악, 그리고 스페이스를 조합했다. 최수진과 성창용의 2인무 구성에서 리프팅이나 신체적인 접촉 없이 서로 다가갈듯 하면서 흩어지고 모아지는 구도 자체를 음미하도록 한 구성과 오고무 북의 두드림에서 라이브 연주를 잠시 멈추고 오고무의 사운드와 춤만을 음미하도록 시도한 것, 연주자들이 함께 부르는 구음 때 무대를 비워둔 것 등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과 움직임과의 접합은 어느 부분 서로 합일에 가까운 듯 느껴졌지만 따로 플레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적지 않게 받았다. 음악은 우리 국악기를 토대로 만든 창작음악에서 보여 지는 툴 안에 있었고, 안무가에 의해 조율된 춤은 그의 전작 작품에서 늘 보아왔던 움직임의 툴 안에서만 분절되고 있었다. 춤에 의해 음악이 빛나는, 음악에 의해 춤이 살아나는 조합이 충족되지 못한 데는 60분 동안을 안무가의 전작에서 시도되었던 움직임의 틀 안에 너무 안주한 것도 그 요인 중 하나이다.

 

 
 후반부에 안무가는 극장예술로서 무용예술이 갖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중극장 규모의 무대에서 60분 길이의 작품을 스토리텔링이나 분명한 캐릭터의 설정 없이 끌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게다가 무대미술이나 의상의 별다른 변용 없이 오직 음악과 움직임 조합 하나의 패턴으로만 진행할 경우는 더욱 어렵다.
 “개개 무용수들의 캐릭터의 특징들을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안무가의 의도는, ‘시간여행’ ‘전사들의 춤’ ‘확장’ ‘곰과 호랑이’ 등 설정된 10개의 장면에서 그 차별성은 감지되었지만, 감흥의 정도는 미약했다. 안무가가 말한 캐릭터의 은유적 표현은 댄서들의 움직임을 솔로와 2인무 군무로 펼쳐놓은 춤 그자체로만 다가왔다.

 

 
 자주 보아 익숙해진 움직임, 창작 국악연주에서 자주 들었던 스타일의 음악, 그 둘이 만나 서로 탐색하는 과정은 초반부 몇몇 장면에서 스파크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스며들지 못하고 각각 자신의 색채만으로 수놓아졌던 무대, 이것이 〈제전악-장미의 잔상〉을 본 후 들었던 느낌이다.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었던 〈혼합〉에서 보여주었던 무용수들의 내밀한 움직임과 음악이 맞물린, 그래서 관객들과 꽤 끈끈하게 소통했던 감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안무가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움직임 조합의 유사성 외에 새로운 그 무엇을 창안했어야 했다. 전작과 차별화 된 <제전악-장미의 잔상〉에서만 구현된 독창적인 예술성이 존재할 때 전작의 연계작업도, 한국의 춤과 음악이 갖는 고유한 가치를 세계무대에 알리겠다는 포부도 성취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제전악을 표방하면서 음악과 움직임의 접합에 지나치게 무겁게 접근한 점, 60분 길이의 장편 작품을 위한 또 다른 장치의 부족, 한국의 굿이 갖는 놀이성, 엑스타시, 악가무 일체의 요소들이 춤예술의 속성을 통해 더욱 발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제작진들의 분명한 콘셉트와 댄서들의 나쁘지 않은 움직임의 질, 안무와 음악에서의 내공이 빈약하지 않았던 만큼 재공연 무대에서는 탐색을 넘어 음악과 춤의 조합과정에서 악가무, 한국의 굿이 갖는 원초적 속성들이 함께 버무려지는 작업을 기대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8.1
사진제공_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