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발레단 ‘댄스 인투 더 뮤직 &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성숙한 창작 의식 함양 지향하기를
김채현_춤비평가
 발레 애호 관객층을 충족시킬 공연작을 다양하게 갖추는 일은 발레계의 오랜 과제였다. 완성도 있는 창작품이 드문 실정에서 다양성을 기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최근 몇 해 사이 공공 및 민간단체에서 약간의 시도들이 누적되면서 발레 장르가 그전의 답보 상태를 벗어날 것 같은 기대감도 없지 않다.
 국립발레단은 지난달 ‘댄스 인투 더 뮤직’(8월 4-6일, 토월극장),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8월 12-13일, 토월극장)를 기획 행사로 펼쳤다. 국립발레단은 ‘해설이 있는 발레’를 서울을 벗어나 전국의 여러 지역으로 수년간 가져가서 발레 저변을 넓히는 노력을 기울여왔었다. 그렇더라도 ‘해설이 있는 발레’가 주로 발레단의 기존 레퍼토리를 해설 소재로 하는 데 비해 이번 두 기획의 초점은 발레단 내적으로 새 레퍼토리와 안무가를 발굴한다는 차이가 있다.
 ‘댄스 인투 더 뮤직’은 8편의 소품을 간략한 해설을 곁들여 올렸다. 여기서 이색적인 점으로서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해설과 실연 반주를 맡으면서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제2피아니스트, 퍼커셔니스트와의 실내악 협연까지 감독 진행하였다. 발레뿐 아니라 춤 공연에서 라이브 연주자가 라이브 해설을 진행하는 경우는 희소하다.

 

 
 여기서 맨 앞에 공연된 〈에뛰드〉는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의 여섯 아동들의 것이어서 관객으로선 설핏 엉뚱하다는 선입견부터 가질 법하다. 하지만, 쇼팽 연습곡에 맞춰 기본 스텝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품새에서 앳된 안정감이 두드러져 내심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흑백사진 속의 남자를 플래쉬백 속에서 추억해내는 〈흔적〉(음악: 에릭 사티 〈짐노페디〉)과 남성과 여성을 피아니스트와 피아노로 치환하여 사랑의 감정을 묘사한 〈더 피아노〉(음악: 드뷔시 〈꿈〉)는 단적으로 단순한 구성으로 인해 상투적으로 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2인무〉의 경우 조급한 전개와 평이한 감정 노출로 인해 발코니 신의 미묘한 정서를 살려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박슬기는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를 반주로 〈영혼의 4인무〉를 안무하였다. 두 여자와 두 남자가 제각기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포즈를 취함으로써 4인무가 악기(음향)들의 조화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2인무의 파트너를 재빠르게 바꾸며 만나고 헤어지는 자태 이면에서는 더러 농밀한 관능과 고독의 정서가 탱고스럽게 흘러나왔다.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봄〉을 반주로 신무섭이 안무한 〈탱고〉는 2인무이다. 탱고보다는 날쌘 이미지의 발레를 곁들인 그 둘의 탱고는 예기치 않게 피쉬 다이브를 가미한 종지부에서 묘하게 탱고의 정염을 환기하였다.

 

 
 이영철 안무작 〈3.5〉(음악: 라벨 〈볼레로〉)에서, 작품 소개에 따르면, 3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세 여성 현역 무용수이고 0.5는 그들처럼 되길 꿈꾸는 한 여성 무용수다. 남녀 각 8명씩 출연한 이 작품의 소재는 16무용수들의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의 에피소드이다. 각자 카르멘, 지젤, 〈백조의 호수〉의 백조 역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세 무용수에 비해 한 무용수(0.5)는 성장 중이므로 뚜렷한 역이 없다.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볼레로〉를 배경으로 위의 역할 춤들과 주로 사선 및 횡대 형태의 대열을 짓는 군무가 반복적으로 교체된다. 다소 산만한 감이 있은 반면에 〈3.5〉는 무엇보다 구성의 다양성 그리고 개성의 표현 면에서 객석의 흥미를 촉진하였다.

 

 
 ‘댄스 인투 더 뮤직’은 소품들로 구성되었다. 소품이든 대작이든 크게 의식할 일은 아니다. 이번에 현장 반주와 춤(발레)을 동화시키면서 연주자의 해설로써 이를 뒷받침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다만 그 해설이 반주 음악 소개에 치우친 탓에 춤과 반주 음악의 연계성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미흡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듣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을 함께 전달함으로써 이번 무대는 ‘해설이 있는 발레’에서 통용되던 해설 구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는 KNB 무브먼트 시리즈 이름으로 해마다 열렸고 이번이 3번째이다. 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이고, 완성도 있는 창작품을 만들 주체의 육성을 위해 비중 있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연초에도 이전까지의 KNB 무브먼트 시리즈의 관심작을 가려내어 다시 무대를 제공한 바 있듯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식으로 지속해서 다듬어가는 방안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댄스 인투 더 뮤직’의 〈영혼의 4인무〉와 〈3.5〉는 지난해 시리즈 2에선 선보인 작품들이다.
 이번 시리즈 3에는 4편이 출품되었다. 배민순의 〈굿바이〉는 마주 보는 남녀가 다가가되 어긋나버리는 이별의 쓰라림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송정빈의 〈잔향〉은 이별의 기억을 뿌리칠 수 없는 트라우마로 해석해 보였다. 두 작품은 이별에 관한 일상적인 상식의 언저리를 맴돌 뿐더러 구성과 표현의 면에서도 주시해볼 바가 매우 미흡하였다.
 박나리가 안무한 〈Face: 마주하다〉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 착안해서, 그림자를 진실로 착각하는 미망에서 깨어날 것을 환기한다. 인간 군상을 여러 형태로 제시하고 마지막에 그들에게 거울을 비춰 자신들의 모습을 보도록 하는 순간에 어느 여자가 무대를 가로지른다. 튀튀를 변형한 의상을 무용수들에게 착용시키는 등 여러 착상이 곁들여지지만 〈Face: 마주하다〉의 의미를 포착해내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

 

 
 이영철의 안무작 〈미운 오리 새끼〉는, 생상의 〈백조〉 허밍이 들리는 가운데,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여러 오리(여성 발레리나들)가 뒷짐 지고 행렬을 지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트 위 무대 바닥에 오르지 못하는 마지막 오리를 한 남자가 도움으로써 둘 사이의 인연이 형성되지만, 아마도 자신을 떠나 버린 그 백조를 잊지 못해 남자는 허밍을 부르짖기도 한다. 희미한 어둠 속 테이블 위에는 여자들이 누워 있고 그 앞에 남자들이 위치하며, 테이블들은 뒤로 이동하고 남자는 실신하며 여자들은 테이블에 누운 채 사지를 허우적댄다. 이들 면면을 통해 〈미운 오리 새끼〉가 겨냥하는 것은 경쟁 또는 배반 사회의 비인간성일 것이다. 이 공연은 백조의 여러 모습을 형상화하고 코믹한 모습도 삽입해서 관객과의 교감을 염두에 두었으나 행렬을 지은 대형이 좀 과하게 빈번하고 반주 음악에 비해 대형도 실하지 않아 보였다.

 

 
 누구나 알 듯, 완성도 있는 창작품을 완성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 그래서 조밀한 전략이 요청될 터인데, 국립발레단은 기왕 내친걸음으로서 여기 소개된 두 기획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크다. 그러려면 여태까지의 내부 관행과 통념을, 때로는 과감하게, 손질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또한 두 기획 행사의 출품작들로 미루어 판단하자면, 전반적으로 작품 소재 채택이나 창작 구상을 끌어가는 시각이 더 성숙하고 깊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의할 점으로서, 춤의 형식미가 주는 매력에 거듭 맴돌다 보면 자칫 유치해지는 폐단이 따르기 십상이다. 끝으로, 춤의 타 장르를 비롯하여 타 예술 장르와의 접속·융합이 발레 창작자의 상상력과 시각을 성숙시키는 효과가 작지 않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9.
사진제공_국립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