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 단체 ‘dance project EGERO’(대표 이용진)의 창단공연 〈콘크리트 인간〉(5월 16일, 해운대문화회관). 3년 전에 단체를 결성, 오랜 연습 끝에 내놓은 첫 작품, 첫 무대이다. '에게로(EGERO)', 단체명이 이채롭다.
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격조사로, 그 대상이 춤, 춤에게로 또는 춤으로 꾸는 꿈에게로, 관객들에게로 등 모든 것일 수 있는 팀명에서 그리고 다소 무거운 주제인 ‘죽음 또는 안식에 대한’ 춤으로 스스로와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안무의도에서 이들의 열려있는 의식과 사고를 읽는다. 〈콘크리트 인간〉. 이 춤에 대해 설명해야할 것이 많지 않다. 무대에 담아낸 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도 주목해서 끄집어낼 수 없게 되어버린, 춤을 추기도 전에 춤보다 무용수와 안무자의 마음이 먼저 달려 나와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았기에. 다르게는 (스승이 없었다는)춤에 대한 회한이나 절망감 같은 것이 그 많은 말 가운데 하나로, 이 춤을 반드시 설명해야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훈이 몸을 날리고 뒤집다가 한 쪽에 벽처럼 서 있는 사각의 큰 프레임(흰색 스티로폼)을 한쪽으로 밀어내면서 시작되는 무대. 나신에 가까운 7명의 무용수들이 사각 틀 안에 박제처럼 서로 엉켜 있다가 느린 동작으로 무대에 굴러 나오면서 그려내는 생명의 장. 무대 중앙, 한 줄로 내리꽂히는 빛 아래 모였다가 몸을 퉁퉁 튕기며 흩어지는, ‘볼레로’ 음악에 얹은 심장박동을 닮은 춤. 완벽하게 배분된 박자의 선율과 정확하면서도 미묘한 움직임이 주는 울림, 반복되는 춤에서 전해지는 고통. ‘봄의 제전’의 그것처럼. 고통이 아름답게 번지는 춤이었다.
이어 ‘피어나다’를 그린 3장. 남녀 8명이 추는 군무, 맥락 없이 느슨하고 헐렁하다. 여자무용수들의 치렁치렁 컷이 많고 무거워 보이는 의상. 굳이 치마를 입힐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 한국춤이라는 장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큰 주제와 상관없이 따로 작업해서 그냥 끼워 넣은 것 같은, 춤의 큰 그림이 흔들렸다.
반면 남자무용수 둘(강건, 김유성)의 호흡, 좋았다. 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나란히 몸을 뒤로 젖히고, 다리를 들어 앞으로 길게 뻗는다. 아뿔싸! 다리 길이가 다르다. 한 이가 짧다. 길이를 맞춰보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짧다. 자연스럽게 위트가 생긴 부분. 힘 있는 에너지와 시원한 선을 가진 김유성의 춤이 돋보였다.
흰색 큐브의 무대설치물, 식상하다. 무용수들이 큐브를 조합하고 쌓아올린 신전을 닮은 구조물. 안무자 이용진이 만족스럽다는 고갯짓을 한다. 큐브로 ‘찬란했던 문명’까지 담아내려한 시도, 과욕이다. 성을 쌓고 마지막 장에서 큐브로 벗은 몸을 가리지만 그것도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 신마다 5분 전후 길이의 끊임없이 바뀌는 통일성 없는 음악편집 또한 아쉬운 부분이었다. 검정색 슈트를 입고 이용진과 이상훈이 중앙에서 만나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손잡기, 밀어내는 등의 동작. 지나치게 많은 움직임과 곡예에 가까운 춤. 지루하고 난삽하다. 하고 싶은 (춤)말이 많을수록, 절제, 압축해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고독’ 장. 검정색 슈트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온몸으로 추는 김현진의 수려한 춤. 타인의 시선을 오롯이 다 받아내면서 추는 자기 고백 같은 춤, 슬프고 아름다웠다. 그런가하면 앉고, 서고, 생각에 잠기는 등 다양한 동작의 움직임으로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것을 그려낸 군무 신은 심심했다.
마지막 장,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여 생명으로 왔던 곳, 죽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천천히 서로 엉키면서 시작되는 군무, 끝날 것 같으면서 끝나지 않는, 오래 반복되는, 모든 에너지를 담아 온 몸으로 추어내는 춤. 춤과 춤 사이의 여백으로 춤은 진해지고 깊어졌으며 단순해졌다. ‘에게로’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근사한 춤이었다.
‘특별히 사사한 스승 없이’ 혼자 오래 모색하고 공부한 이용진의 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춤의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다. 이용진에 있어 춤은 삶의 객관적 질서와 예술적 신념과 결합하여 삶의 원리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춤의 원리 속으로 초월하고, 형식 속에서 명쾌해지는 일이 이 젊은 안무가에게 남은 숙제이기도.
영남 지역을 대표할 젊은 춤 단체로 잘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