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 관람이 아니라 특별한 체험이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소녀들-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한마음으로 1시간여를 함께 하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슬픈 동행이었다. 아프디 아픈 동행이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무용 작품인 〈동행〉이 보여준 내용은 모든 것이 당시 사실 그대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전율로 와 닿았다. 다행히도, 아픔을 그리면서도 화해와 치유와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주었기에 관객들은 비극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창원시립무용단 창단 30주년 기념공연이자 제55회 정기공연으로 막이 오른 노현식 예술감독 안무의 〈동행〉(4월 21일, 창원성산아트홀 대극장)은 20세기 반문명적 범죄의 하나인 제2차대전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작품이었다. 그간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큰 공연들이 이루어졌고 춤으로서도 소규모로는 다루어졌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공무용단 차원에서 대작(大作)의 춤 작품으로 막이 오른 건 드문 일이었다.
허울 좋게 ‘결사대’를 의미하는 정신대(挺身隊)라 불렸던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였고 강제적인 군매춘제도였다. 매일 매일의 성적 폭행과 집단강간, 강제낙태, 그로 인해 수많은 어린 여성들의 자살, 신체절단과 처형. 위안부는 여성 인권에 관한 최악의 범죄이면서 잔인성과 잔혹성에 있어 인간의 양심을 깡그리 저버린 20세기의 가장 반문명적 죄악 가운데 하나이다.
실로 복잡하게 얽힌 역사적 사실을 춤 작품으로 창작함에 있어 안무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 6개의 장으로 서사를 구성했다-피해자가 평생 악몽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상징하는 프롤로그, 감언이설에 속아 반강제로 납치되는 상황을 그린 1장,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능욕의 현장인 2장, 산산조각 난 소녀들의 꿈을 그린 3장, 전쟁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 소녀들을 죽여 증거를 없애려했던 일본군의 만행을 표현한 4장,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린당하고 있는 나(소녀상)와의 재회를 그린 5장, ‘아리랑’ 노래로 상징되는 해원의 6장,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와 부활을 의미하는 ‘모향(母鄕)으로의 동행’을 상징하는 에필로그.
작품은 큰 줄기로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그저 할머니로 불리기를 바라는 할머니 한 명을 설정하고, 그 할머니 자신이었을 어릴 적 옛 소녀를 한 명 설정하여, 자신의 기억과 과거와의 대화를 간간이 두 사람, 할머니와 소녀의 2인무로 전개시켰다. 할머니 역, 김호정의 춤사위가 한(恨)과 용서를 풀어내고, 소녀 역 정유진이 꿈 많던 소녀 시절을 춤으로 표현했다. 서준영을 포함한 20여명의 여자 무용수들은 잔인하게 당하는 위안부들의 수난, 가족들과 단란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때로는 처참하게 때로는 섬세한 감성의 군무로 표현했다. 5명의 남자 무용수 우현진, 정구영, 강동효, 박수일, 한경우가 일본군 역을 맡아 일본군국주의의 야만성과 전쟁의 잔혹함을 남성무의 춤사위로 보여주면서 여성 무용수들과 대비와 조화를 이루었다. 상징적인 동작과 역동성이 스피디하게 군무로 어우러지면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무대가 내내 흥미로웠다.
안무자는 ‘위안부’라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고심하고 많은 연구를 한 결과로 다양한 미장센(연출, 무대장식·미술, 오브제, 영상, 음악, 음향)과 안무를 구사했다.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을 소녀들을 나비로 상징하여 훨훨 나는 나비의 영상을 활용했다. 능욕 당하던 어두운 방을 네 개의 작은 오두막집 전면으로 처리해 무대를 꾸몄고 각 오두막 사이사이, 수많은 나무 명패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암시했다. 무대 중앙에 소녀상을 세워 할머니의 또 다른 자아가 되게 했다. 어느 장면에선 인간의 수치심을 가리는 탈도 사용했다. 한민족의 동질성과 해원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로 들려줬다. 20명의 여자무용수 각각이 의자를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와 가운데 두 자리는 할머니와 소녀를 위해 비워둔 채 뒤돌아 앉는 장면, 무대 천장 중앙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린 의자에 할머니가 앉아 꽃비가 내리는 위로 상승하는 장면은 할머니들 영혼의 부활을 상징했다.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었다.
예술은 실험이다. 예술에선 풍부한 상상력, 초현실, 전위, 난해 모든 것이 존중된다. 그러나 첫 번째 본질은 아름다움, 심미성의 추구이다. 작품 〈동행〉은 혹심한 비극을 다루면서도 심미성의 추구를 놓지 않았다. 많은 공연예술 작품이 예술성이라는 이유로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러나 〈동행〉은 성적 폭행을 연출하는 장면에서도 오히려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많은 관객이 울거나 눈가를 훔쳤다. 대사 없이 몸의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지는 춤 작품이 많은 사람을 울린, 드물게 보는 광경이었다. 메마른 이 시대에 수많은 사람을 울게 만들었다는 것은 작품이 성공적이었다는 얘기이고 관객의 눈물은 작품의 미진한 부분을 덮는다.
현재 한국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 조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미국과 호주에도 세워졌다. 이 작품 〈동행〉도 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 있는 일종의 소녀상인 ‘인권·자주·평화 다짐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들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철거를 요구한다. 일본은 위안부, 남경대학살 등,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부정하기에 급급하다. 사실을 감추고 역사와 교과서를 왜곡해 후세대의 역사 인식을 바꾸려는 짓을 하고 있다.
베를린 시내 중앙,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 인근에는 축구장 3개 넓이에 2711개의 추모비로 이루어진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유럽 유대인학살 추모공원, Holocaust Denkmal Berlin. 영어로는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 있다. 독일은 수도 한복판에 이 같은 거대한 조형물로 이루어진 추모공원을 조성해놓고 자신들이 과거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죄악을 사죄하고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는 교훈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도쿄 중앙에 ’소녀상’이 서는 날은 언제일까?
창단 30주년을 맞은 창원시립무용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위안부 문제를 창작춤으로 만드는 과감하고 의욕적인 시도를 보여줬다. 우리 역사에서 소재를 찾아, 의식 있는 창작춤 작품들을 만들곤 하는 안무자 노현식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번 작품 〈동행〉에 자기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그는 춤예술로서는 지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함정을 피하면서, 분노만을 강요하는 억지와 어색 또한 배제하면서, 춤이 갖는 고도의 상징성과 감성을 구사해 세계 어느 곳에 가서 공연한다 해도 예술성을 인정받으면서 인간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춤 작품을 만들었다.
이제 남으신 할머니들은 38명. 반문명적인 범죄를 다시금 고발, 환기시키고 그 화해와 치유를 꾀하는 〈동행〉. 공연이 끝나, 막이 내려온 뒤에도 무대 앞에는 소녀들의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보따리 하나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보따리가 풀릴 날은 언제일지?
공연예술 사진작가. 현 서울문화재단 무용 전문평가위원.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2015년,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