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합창곡이 현대무용과 만나 만들어낸 장면은 확실히 달랐다. 댄서들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오브제를 이용한 운동성이 노래와 영상과 어우러질 때면, 확장하고 있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면면을 적지 않게 음미할 수 있었다.
메타댄스프로젝트의 현대무용 〈카르미나 부라나〉(4월 14-15일, 대전예술의전당 대극장, 평자 15일 관람)는 기대 이상이었다. 댄서들의 다채로운 움직임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와 솔리스트들의 각기 다른 음역의 독창과 합창과 맞물리면서 대극장 공간을 가득 채웠다.
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와 무용예술의 접목은 국내외 안무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웅장한 합창, 화려한 관현악곡 여기에 세속적인 내용의 가사까지 원작은 무대예술가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음악이 워낙 강해 무용예술과의 접목을 시도할 경우 그것의 합일을 이루어내기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메타댄스프로젝트 예술감독인 안무가 최성옥이 현대무용으로 만든 〈카르미나 부라나〉는 30여 명의 댄서들을 때론 합창으로, 그리고 몇 명의 솔리스트 댄서들은 독창으로, 그리고 짧은 독무, 남녀 2인무와 트리오 등은 그 사이 장면 전환의 간극으로 활용하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퍼포머들은 무용수들만이 아니었다.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음역의 세 명 독창자와 55명의 관현악 연주자(연주 안티무지크필하모니아, 지휘 이운복), 40여 명의 합창단(대전시립합창단)과 대전시민천문대 어린이합창단이 합류한 매머드 출연진들이었다.
안무가는 춤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테이블과 여행 가방을 활용했고, 탄탄한 기량의 주역급 객원 무용수들을 합류시켰다. 비주얼을 살리기 위한 영상(영상 디자이너 김성하)의 기여도도 적지 않았다. 강렬한 음악 쪽으로 편중될 수 있는 위험성을 저지하며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주용철의 무대 디자인과 민천홍의 의상도 듣는 무용, 보는 음악의 융합과정에서 영상과 함께 빠른 전환과 매끄러운 연결 고리를 이어가는데 일조했다. 민천홍은 댄서들의 의상은 흰색이 주조를 이루게 하면서 남자 상의와 하의는 블랙&화이트로, 7개의 테이블은 화이트&블랙으로 배열, 백색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시노그라퍼적 역할을 포함해 최성옥은 안무 뿐 아니라 연출까지 맡으면서 전체를 조율했다.
중세 시대 유랑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부른 시가집을 발췌해 칼 오르프가 25개의 곡을 붙인 이 작품은 중세 보헤미안 시대의 종교, 유희,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자연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담고 있는 풍자와 익살, 신성과 세속적인 이미지를 현대무용이 주조를 이루는 공연으로 치환하면서 최성옥은 이 방대한 내용을 서곡- 프롤로그- 그리고 1막 대지의 풍경, 2막 방랑자들, 3막 사랑 이야기로 담아낸 3개의 장과 에필로그 등 크게 6개로 압축했다. 이 과정에서 서곡의 경우는 작곡가(안성혁)에게 새로 위촉을 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안무가는 무용수들의 춤의 배열을 전체적으로 음악이 갖는 각기 다른 색깔을 충분히 조화시키는 쪽으로 할애했다. 14명의 여성 무용수와 1명의 남성무용수가 추는 군무는 무대 전면에 투사된 흰색 꽃무늬로 장식된 회전하는 바퀴의 영상 이미지와 합치되면서 시각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고, 이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안남근의 솔로춤을 배열해 음악과의 합일이 주는 맛깔을 살려내는 시도에서 정점을 찍는다.
대전예술의전당이 무용 음악 영상 등 지역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이만한 프로뎍션을 완성했다는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이 작품의 초연은 2015년 대전예술의전당이 주도하는 스프링 페스티벌을 통해 시도되었다. 이번 재공연을 통해 더욱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메타댄스프로젝트는 재공연을 하면서 서곡을 위촉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대장치를 새롭게 보완했다.
극장에서 시행하는 축제에 지역의 예술가들과 단체를 합류시키고, 여기서 만들어진 우수 작품을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로 축적시키는,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한 대전예술의전당의 노력은 칭찬 받을 만하다. 대전예술의전당은 수년 전부터도 대전시립무용단과 지역의 음악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에서 소기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200개가 넘는 지역의 문화예술회관과 여타의 공공 극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타댄스프로젝트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향후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댄서들의 춤의 질이 더욱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린이 합창단원들이 무대 위로 등장할 때 먼저 자리한 출연진들과 오버랩 되면서 생겨난 산만한 장면이나 솔로나 2인무 등의 춤들이 독무나 2인무 그 자체만으로 그 맛깔을 살려내지 못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인상에 남는 솔로춤이나 2인무 등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점도 두고두고 아쉬웠다.
현대무용이 잘 알려진 음악과 만나고 비주얼을 살려내는 영상과 만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카르미나 부라나〉는 스펙터클한 요소와 함께 앞으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