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유경무용단 〈로미오와 줄리엣〉
간결한 무대미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춤
권옥희_춤비평가

 흰 무덤. 늘어서 있는 죽음들. 그 위로 떨어지는 흰빛. 정적. 장유경(계명대교수)의 〈로미오와 줄리엣〉(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4월 28일). 사랑을 풀어내는 방법이 달랐다. 죽음을 먼저 툭 던져놓은 뒤 풀어내는, 덧없는 사랑에 대한 단상이었다.


 



 흰색 큐브(56개)가 줄지어 서있는 무대. 죽음의 세계가 지녔을 아름다움과 질서가 깊고 서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검정색 바지와 셔츠 차림의 남자 무용수들이 무덤주인의 이름을 확인하듯, 무덤가를 서성인다. 지하, 죽음의 세계에서 올라오는 로미오(서상재)와 줄리엣(김정미), 웅크린 채 같이 올라오는 사신(김용철)이 연인들의 길을 인도한다.
 무용수들이 돌려세우는 큐브, 그 안쪽이 검다. 죽음을 품고 있는 삶. 다른 죽음과 차별된 성질을 확보하고 있는 간결하고 세련된 설치물(구동수)이 압권이다. 무용수들이 어깨에 얹고 밀고 끄는 큐브. 다소 건조해 보이는 춤의 언어와 감성적이고 이지적인 설치물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무대다.
 사랑의 춤을 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상이 맑고 밝고 환하다. 이들에게 길을 내주듯, 큐브를 재배열하며 춤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신. 어린 연인들, 두 장의 푸른 색 자리위에 사랑의 시간을 춤으로 풀어놓는가하면 무덤길을 따라 오가다 어둠과 흰빛이 교차하는 삶(죽음)의 숲에 이른다.


 



 죽음과 삶을 바꿔 세우면서(큐브) 시간을 관장하는 사신. 강하고 아름다운 남자 군무진의 춤에 이어 머리를 풀어헤친 줄리엣과 로미오의 듀오. 검정큐브를 이동시키면서 서로를 찾아다니는 연인들. 불꽃같던 사랑, 죽음에 이른 그들의 트라우마를 확신하는 끝없는 불안과 고독, 벗어날 수 없는 기억처럼 춤이 한없이 무겁고 슬프다.
 전경을 정리, 큐브에 몸을 숨긴 채 춤을 슬쩍 내다보는가 하면 그림자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이들의 처연한 춤을 지켜보는 사신. 설치물 자체가 완결적임은 물론 사신의 움직임이 이들의 춤에 삽화 형태로 스며들어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낸다. 숨어서 상징으로, 춤으로 하나의 장을 오로지 한다. 김용철의 도저한 자신감이다. 반면 빨강, 노랑, 파랑색 천 조각이 배색된 의미가 읽히지 않는 흰색드레스. 춤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다.
 이들이 춤을 추는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춤의 언어로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가. 이 죽음을 어떻게 다른 죽음과 구분할 것인가. 아마도 이 세상에 몸을 두고 살면서 다른 세상의 감각을 확보해야 가능할 것이다.
 장유경은 이 어린 연인들이 저승에서 올라와 이승에서 추는 춤으로 이것을 풀어낸다. 하여 몸 하나 제대로 뉘이지 못하는 크기의 푸른색 자리를 깔고 연인들이 춤을 추는 공간은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의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보이지 않는 공간과 같기도. 저승에, 혹은 이승에 있지만 이들의 사랑이 필 자리는 저 허공, 어느 곳이 될 것이다. 사랑으로, 춤으로 젊은 연인들이 건너간 저편, 정말 아름다운 곳인가.
 장유경은 덧없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사랑에 바쳤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예술에, 춤에 바쳤던 사람들의 청춘에 대한 비유는 아닐까. 문득 슬프다. 예술이, 춤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마지막 장, 흰색 원피스(치맛자락 안이 검은)에 검정타이즈를 입고 치맛자락을 넓게 펼친 채 추는 군무. 뒤로 돌아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면서 추는 윤무로 치명적인 사랑이 품은 죽음의 뒷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동시에 삶의 시간에 감쪽같이 스며드는 죽음을 말한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춤이었다.


 



 너무 자주 들어 이미 묽어진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이전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이미 낯익은 형식의 춤은 안무자에게 필요 없었을 것. 낯익은 춤의 언어란 춤의 힘을 낭비하게 할 뿐. 장유경이 낯익은 춤의 언어를 바꾸고 사랑 춤의 달달함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안무자가 경계해야 하는 낡은 춤 형식에 젖어들고 날선 기운이 소진되는 것, 장유경은 알고 있는 듯하다. 무대에서 쉽고도 강렬하게 드러나는 춤은 그것이 안무자의 독특한 해석을 거쳐 새로운 춤의 언어를 넘어섰을 때다. 그녀만의 춤 형식에 그녀만의 춤 언어의 의지를 실어 자신의 춤을 다른 춤과 구별하려 한 〈로미오와 줄리엣〉, 성공적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7. 05.
사진제공_장유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