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진미 〈달구벌 體·짓〉
스스로 묻는 다른 춤의 시간
권옥희_춤비평가

“춤, 짓, 신명의 굴레를 짊어지고, 날이 밝으면 (춤판)일을 벌이고 밤이 되면 후회”하는 춤(삶) 30년, 나이 오십에 들어서도 또 어김없이 벌이는 박진미의 춤판 〈달구벌 體·짓〉(3월 23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을 본다.

삶(춤)의 체험과 감정은 인식이기 이전에 살아내야 할 운명 같은 것인지도. 지혜로운 지침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체험과 감정의 내용을 바꿔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감정의)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라거나 자연의 이치 같은 것을 들며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 싶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어떤 조언과 시선도, 남아 있는 이의 생각과 말(춤)에서 별로 멀리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여, 아버지(‘동수씨’)의 1주기 기일에 벌이는 박진미의 춤판은 아버지와의 온갖 기억에 천착, 어떤 것을 그려내는 것이 그 기억을 포장하거나 스스로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며, 어떤 지혜를 구하기 위함도 아닐 것이다. 다만 아버지가 가신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부디 꽃으로 펴, 꽃길을 걷듯 잘 가시라는 바람을 담아 추는 춤일 것이라 짐작한다.





박진미 〈달구벌 體·짓〉 ⓒ박진미



작품은 1장 사부곡을 시작으로 ‘넋 올림’, ‘동수의 이야기’, ‘씻김’, ‘회향(다시 꽃이 된 동수씨)’까지 5장. ‘청신-오신-송신’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씻김굿의 형식을 빌어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무대 양옆에 기타(김마스타)와 가야금(오혜영)을 배치, 죽음 같은 슬픔으로 펴 있는 국화꽃,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흰나비 영상. 기타 선율에 달 같은 둥근 물체를 안고 박진미(안무자)가 무대로 들어선다. 달은 때로 그리운 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둥근 물체에 남자의 얼굴 영상이 입혀진다. 젊은 날 ‘동수씨’의 모습으로 짐작되는. 그리워하던 이의 얼굴이 슬픔을 소환한 듯, 어루만진다. 이어 무대 한켠에 놓인 낡은 외투를 안아 들고 잠시 얼굴을 묻는다. 이내 외투를 휘릭 걸쳐 입고 추는 춤. 아름다운 기타연주가 춤에 깊이를 더한다. 무대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달. ‘동수씨’의 얼굴 사진이 어른거린다. 허공에 아버지 ‘동수씨’를 그려내는 것은 박진미의 그리움이며, 그의 춤은 아버지 동수씨를 그리는 그리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슬픔이 괴어 있는 기억의 시간을 잘 보여준 장이었다.



박진미 〈달구벌 體·짓〉 ⓒ박진미



2장- ‘넋 올림’. 무용수 두 명이 객석에서 무대로 기어오르듯 오른다. 마치 다른 시간에서 건너오는 듯. 현대음악으로 해석한, 옅게 깔린 굿가락인 듯 아닌듯한 음악에 신명이 실린 듯 뛰고, 몸을 털고 흔들어대는 다섯 명(남숙현, 유경원, 김도연, 이서현, 신혜민)의 춤. 무용수 한 명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부르듯, 무대 안쪽을 향해 팔을 뻗고, 곧 달려 나갈 듯 몸을 기울이자 나머지 무용수들이 말리듯 그의 몸을 잡아당긴다. 다른 공간과의 경계,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박진미 〈달구벌 體·짓〉 ⓒ박진미



정적. 남자가 걸어 나오며 3장, ‘동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검정과 흰색이 배열된 상의와 일상복 바지를 입은 ‘동수씨’(장요한). 기타와 가야금 소리에 얹은 느린 춤. 걷다가 깊게 내려앉는가 하면, 일어나 제자리에서 돌고, 위로 팔을 들어 크게 궤적을 그린다. 채 정리되지 않은,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의 선으로만 풀어낸 ‘동수의 이야기’, 불분명한 경계, 답답하고 밋밋한 장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이 남아있는 안무자의 마음속에 어떤 형식으로 기억되며, 그 기억이 어떤 춤언어와 어떤 방식으로 만나 춤으로 그려질 것인가. 아니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 ‘동수씨의 이야기’로 더 깊은 곳으로 사라질 것인가. 한 남자(동수씨)의 삶,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춤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서로(무용수와 안무자가) 얼마나 영리해야 하는가.

죽음은 그 자체로서는 비어있으며, 그것을 채우는 것은 오직 그의 삶을 기억하는 남아있는 이의 깊고 강렬한 감각들뿐이다. 그렇다면 안무자의 춤재능을 따돌리며 그 기세를 억눌렀던 모든 것, 그 자유로운 정신에 항상 고삐가 되었던 모든 것, 그것들을 아버지의 무심하지만 따뜻한 말 하나하나로 기억하듯, 춤으로 소환할 수 있었을 수도.

공연 다음날(아버지의 1주기) 지낼 제사 음식이 제사를 통해 색다른 기운을 얻듯이, 기념된 것들은 벌써 기념되기 전과 같지 않다. 그것들의 시간은 여전히 현실의 시간이면서 조금 낯선 시간이 된다. 그래서 춤을 추는 이가 추는 춤동작 하나하나는 그 현실을 거느리고 이 현실의 시간에서 저 낯선 시간으로 한 걸음 옮겨 딛게 하는 (예술) 작품이 된다. 그때 춤(삶)이 그 한 걸음만큼 예술로서 의미를 얻게 된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박진미 〈달구벌 體·짓〉 ⓒ박진미



긴 살풀이 수건(고풀이춤 수건)을 들고 추는 4장-‘씻김’장. 나무그림자가 비치는 물가(못이거나 호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영상에 으스스한 음악. 큰 새가 물을 치고 날아오르는 날개 짓 같은 효과음이 섞인다. 긴 살풀이 천으로 고를 맺었다가 풀어내고 다시 고를 맺고 풀기를 반복하는 군무. 넋을 건져 올리고, 씻고, 위무하는 의식. 장마다 다른 춤과 음악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조명, 아쉬웠다.

마지막 ‘회향’-다시 꽃이 된 동수씨. 남자(장요한)와 박진미가 무대 상수와 하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서로 스쳐 지난다. 앞만 보며 걷는 남자(아버지)의 뒷모습을 몸을 돌려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박진미. 미련은 산자의 몫인 듯.

흰색 종이꽃을 든 군무진의 꽃을 박진미가 하나씩 받아 무대 바닥에 늘어놓는다. 아버지가 다시 꽃으로 피길 바라는 마음에 올리는 헌화의 춤인 듯. 두 손으로 가슴께에 받쳐 든 꽃을 힘있게 끌어왔다가 다시 앞으로 뿌리는 춤을 반복한다. 군무진에게서 건네받은 꽃을 들고 징검다리를 놓듯, 한 송이씩 바닥에 놓는다. 옷걸이에 걸린 (반투명) 흰색 외투가 내려온다. 죽은 나무가 그려진. 위에서 내리꽂히는 하얀 빛 조명 아래 몸이 빠져나간 이의 옷, 아름답고 섬뜩한 기운이 서린 장면이었다.





박진미 〈달구벌 體·짓〉 ⓒ박진미



늘 후회를 하며 ‘춤을 그만 추어야지’가 결국 ‘그만 출 수 없어’로 혹은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박진미는 무대에서 무엇을 하는가 자문해야 하고, 자신이 춤을 만들고 추는 춤꾼인 것을 아는 이는 문제가 문제인 것을 안다. 춤을 추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을 때 그는 벌써 이 현실에서 어느 현실이 가능할지 묻는다. 또한 어떻게 추어야 할지 묻는다. 그리고 다른 춤의 시간을 열어줄 수 있을지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문제를 문제되게 하는 시간에 춤을 춘다.

〈달구벌 體·짓〉, 부제 -‘꽃이 된 동수氏’에서 박진미의 춤·몸은 (감정)슬픔의 저장고이며 그리움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어쩌면 춤을 추는 삶만이 중요한데 그것도 어떻게 추었는가를 잊어버리고 또 추는 춤(삶). 춤으로 가야 할 긴 길 앞에서 숨을 고르며 인내하는 한 방식일 수도. 그리고 적어도 그의 춤은 아무런 열정도 없이 자신이 잘 알지도 믿지도 않는 춤·짓으로 무대를 채우는 이들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4. 4.
사진제공_박진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