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콘셉트로 개최한 해외 우수 융복합 공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은 대만의 안무가이자 무용수, 프로그래머인 황이(Huang Yi)와 산업용 로봇 KUKA의 공연 〈HUANG YI & KUKA〉(셀스테이지, 2월 14-18일, 평자 14일 관람)였다.
평자가 다른 리뷰에서 두어 번 언급한 적이 있는, 작년 리우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장애인 댄서 에이미 퍼디가 선보였던 듀엣의 상대가 바로 이번 공연에서 쓰인 것과 같은 종류의 산업용 로봇 KUKA이다. 당시 에이미 퍼디의 두 다리를 대체하는 갈고리 모양의 발과 그녀의 손을 맞잡고 공중으로 끌어올린 KUKA의 고리는 멋지게 어울렸으며 그녀가 입었던 3D프린팅의 원피스까지 조화를 이루어, 신체의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한계가 있을 수 있는 약한 신체부위가 강인한 첨단의 신체로 교체된 것이라는 전위성을 보여주었었다.
2013년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는 〈HUANG YI & KUKA〉 공연이 KUKA(이하 쿠카)로서 인간과의 협연으로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지만,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면 쿠카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이전에도 여러 편 존재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여러 대의 쿠카를 이용해 일체화된 움직임을 선보이는 것들이고, 윌리엄 포어사이드가 쿤스트할레 미술관에서 연출한 퍼포먼스 〈Black Flags〉(2014) 역시 천고가 높고 넓은 미술관 공간에 맞추어 이 산업용 로봇 두 대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형 깃발을 규칙적으로 휘두르는 퍼포먼스이다.
한편 쿠카는 아니지만, Thomas Freundlich라는 안무가가 ABB 산업용 로봇을 이용해 2012년 헬싱키에서 초연한 〈Human Interface〉라는 작품은 로봇 두 대와 인간 무용수들의 근육질을 병치시키면서 SF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미래의 이미지를 무대로 가져오기도 했다. 이렇게 로봇의 ‘힘’에서 주로 영감을 받아 대응하고 기술의 진보에 동참하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서구의 작품들에 비하면, 황이의 이번 공연은 무대장치를 생략하고 무용수의 신체 또한 근육을 아예 드러내지 않게끔 검은 정장으로 감싼 채 로봇과 사람이 일대일로 맺는 ‘내밀한 관계’와 감성에 최대한 집중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도라에몽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음을 안무가가 밝혀 왔듯이, 첫 장면에서 웅크린 황이의 모습은 이 작품의 자전적인 성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만의 내면에 갇혀 있는 황이를 주시하고 레이저 빛으로 말을 걸어오는 로봇과의 첫 만남과 서로에 대한 탐색이 심연에서부터 물결을 일으키는 듯한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차근차근 펼쳐진다.
둘은 서로 만나기 이전부터 ‘충분히 외로운’ 존재였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이내 친구가 된다. 쿠카의 튼튼하고 긴 팔은, 때론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에서 알란 스트랑의 애마가 그의 주인을 향해 기꺼이 목덜미를 수그리듯 황이에게 다가간다. 수줍다 마침내 활짝 피어난 꽃처럼 열린 황이의 동작들, 특히 상대를 ‘발견’하고 나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로봇 시선의 이동은 우리가 결코 혼자서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서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정립하게 된다는 삶의 진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자못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작품은 음악을 단위로 크게 네 파트로 진행되었다. 아르보 패르트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 메트로놈 등 딱딱 떨어지면서도 고요한 풍을 지닌 정박의 음악이 선택된 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안무가가 로봇의 1분의 안무를 짜기 위해 10시간 이상 프로그래밍에 매달려야 한다는 현실이 고려된 탓이 커 보였다. 그리하여 한 마디 안에서 강박이 돋워질 때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패시지에서 황이와 쿠카의 동작을 일체화시키고 각각의 동작들까지 음악의 흐름에 맞게 방점을 찍는 형태로 배치되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흐름이 되었다.
강박이 들어갈 때에 맞춰 팔다리와 목의 움직임에 튕김을 주고 들어 올리거나 뒤틀고 툭툭 떨어뜨리는 이러한 동작 진행방식을 보다 극대화시키면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을 사용한 네 번째 파트는 같은 음악이 사용된 앙쥴랭 프렐조카쥬의 〈Le Parc〉와 음악이 주는 이미지를 인용한 점에서 유사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사실 내용면에서는 ‘외전(外傳)’이나 다름없다 싶을 정도로 이 네 번째 파트는 황이와 쿠카의 듀엣만으로 진행된 앞의 세 파트와 사뭇 달랐다.
황이와 동등한 위치에서 내면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친구 쿠카는 황이가 사라진 무대에서 갑자기 인형처럼 움직이는 두 남녀무용수를 조종하는 조물주의 입장으로 변모한다. 앞서 황이와의 장면의 녹색 레이저와 달리 다소 전형적이고 진부하게 공격성향을 표현하는 붉은 레이저로 남녀의 결합을 방해하고 금지하는 것이다.
아마 황이가 처음 20분짜리였던 공연에 점차 살을 붙이고, 그의 동료인 두 무용수와 함께 세계투어를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장면을 삽입시키면서 원나잇 프로그램으로 완성했을 거라 짐작되는데, 이것은 앞선 장면과 이미지나 내용면에서 간극이 너무나 커서 관객에게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우선은 전체의 일관된 흐름을 깨뜨린 측면이 더 크다고 보였다.
붙박이로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 쿠카의 여건상 쿠카의 바로 앞에 의자를 놓고 남녀무용수를 출연시킨 마지막 파트와 앞선 황이와의 듀엣조차도 움직임의 영역을 마음껏 확장시킬 수 없기 때문에 무대가 다소 침체되어 보이고 소박한 형태의 안무로 끝나는 한계가 있었다. 또,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안무가가 직접 말했듯 1분 안무에 10시간 이상 투자해야하는 이유로 한 번 프로그래밍 한 안무는 5년에서 10년간은 바꿀 계획이 없이 계속 쓸 거란 이야기는 로봇과의 춤에 안무가들이 별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15일에 마련된 안무가 황이와의 오픈 토크와 16일 YCAM(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의 워크샵은 그런 한계점들을 다시 검토하게 할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오픈 토크에서는 2006년부터 시작된 황이의 작업을 모아 영상으로 쭉 소개했는데(그는 자신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소개하기도 했다), 메탈 위주의 여러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해보다가 마침내 로봇에 다다른 그가 KCP라는 쿠카용 언어를 따로 배워가면서까지 로봇의 표현을 끌어내는 과정 자체가 그 자신에게 치유와도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카와의 끈질기고 오랜 대화시도 작업은, 어떤 면에서는 그의 자폐에 가까울 성격을 바꾸기도 하고, ‘인간의 고독’을 다루면서 차갑게 가공된 그의 작품 세계에 따스한 색채가 스며들게 하면서 그저 ‘고독’에 머무르지 않고 ‘공존’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도록 만든 공이 있었다.
한편, YCAM과 관련된 Ryoichi Kurosawa라는 음악가가 현재 황이와 협업으로 신작을 준비하는 인연으로 준비된 2차 워크샵에서는 예술과 과학의 바람직한 공존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새삼 돌아보게 하였다.
작은 시골 야마구치에 마련된 이 센터가 어떻게 미디어 아트의 성지로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고방식, 심리의 문제까지 계량·가시화하는 연구도 물론이지만 그보다 숲의 생태를 파악하고 유전자지도를 완성해내려는 아주 기초적인 연구부터 진득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 곳 센터는 소속된 연구원들이 과학과 예술 양쪽에 대한 이해가 깊어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대하고 오랜 시간 지역 주민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 응용 가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투자하려는 근시안적인 사고로는 융·복합은 물론이고 예술과 과학 어느 쪽에서도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진득한 기다림과 존중어린 대화, 이것이 〈HUANG YI & KUKA〉 공연과 워크샵이 남겨준 해법이었다.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