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 작가의 삶과 생각이 제 결을 따라 발전하는, 제 미래의 틀을 짜는, 종내는 그 내용이 되는 춤(삶). 그 춤을 지어 세상에 내어놓는 작업, 강미리(부산대 교수)의 〈할, 2〉(10월 28일,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 의미 있었던 작업, 그 여정을 본다.
높이를 달리하여 상, 하 두 부분으로 나눈 무대. 전체에 한지를 붙였다. 흙빛 의상의, 토우를 닮은 무용수들이 땅속에서(오케스트라 박스) 올라온다. 부조 같은 무용수들. 박을 든, 붉은 의상의 강미리가 박을 치자 마치 땅이 움직이는 듯 열림과 떠오름의 기운이 가득한 토우의 움직임. 안무가 치밀하다. 허투루 쓰는 에너지가 없는 춤이다.
무대 가운데, 나신의 남자. 생명의 근원을 보여주려는 듯. 흙을 의미하는 여자무용수들과의 춤.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마다 ‘스스슥’ 음악처럼 따라다니는 소리. 한지 안에 숨어 있는 부드러운 생명력과 춤의 교섭, 부드러운 땅이 되고 은유가 된다.
붉은 색의 긴 원피스를 입은 강미리의 솔로. 힘껏 춤을 춘 뒤 웅크린 채 가만히 객석을 쳐다본다. 조용한 응시에서 붉은 격렬함을 감추어 둔 마음의 온갖 것들과 무대 위 모든 것에서의 아우성을 듣는다. 여자무용수들이 높은 무대로 오르는, 연극 같은 동작의 군무. 무대 가운데 떠 있는 푸른색의 圓(원), 그 아래 노란색 의상을 입고 탈을 쓴 상신. 空(공)이기도, 無(무)이기도 한, 비존재로 읽힌다.
솔로, 셋, 일곱, 아홉 등의 홀수 숫자의 무용수로 춤을 구성한 강미리의 안무. 홀수가 뜻하는 陽(양), 불변, 吉(길). 무용수의 배치 수(數)에 춤의 본질을, 만물의 감정과 상태를 담아내고자 한 안무자의 의도. 완전 전체성을 뜻하는 숫자 7 등. 춤이 가치를 띠는 계기에 정신과 감각을 집중하는 것. 가능한 한 가장 끈질기고 확실하게 춤의 본질과 교섭하는 것. 강미리에게는 이것이 춤의 본질을 찾아가는 한 방식일지도.
흙빛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손에 들린 꽃, 도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미리.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성숙과 그 회한을 짐작케 하는 장. 조명을 받아 올린 무대 바닥의 색과 소리. 안무자의 상상력과 감정을 가로막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 한지로 바른 무대는 그 요지부동함 앞에서 마음이 특별한 반응을 얻어 어떤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작품 중반을 넘어선 지점에서 들어온 대금과 전자음악이 충돌이 빚는 부조화. 세 부분으로 구분한 무대에서 추어지는 많은 춤, 마지막 매끄럽지 않은 무대전환 등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마지막, 박을 치니, 개가 짖는 듯한 소리가 따라 나온다. 아무 설명도 없이 손에 쥐여 주는 존재 하나. 양쪽 무거운 무대 커튼이 모두 걷힌 뒤, 안쪽 깊은 곳에서 굴러 나오는 무용수들. 무대에 나눠 선 뒤, ‘할’ 무용단 특유의 재치와 위트를 얹은 군무. 어느새 웃음기를 거두고 다시 정색, 정렬. 늘어진 마음을 경각시키는 예기치 않는 춤, 은유가 된다. 소멸하는 춤은 현실의 우연으로부터 분리되었기에 순수하고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강미리는 생명이 짊어져야 할 운명(춤)을 이해한 듯도.
춤 창작이란 것이 현실을 떠나 무슨 순수본질에 망명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춤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무대 춤을 통해 낯익은 것이 된, 말하자면 최초에 순정했으나 우리의 불순한(?) 삶에 의해 실종된 본질 같은 것을 찾아가고자 하는 춤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