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무용제 박근태 〈광장〉
젊은 춤의 정신, 실천의지
권옥희_춤비평가

 참 비루한 권력, 그 어둠의 끝을 보고 있다.
 너무나 허망하게 주어진 그 세계를, 그 허망함으로부터 벗어나보겠다는 듯 박근태(안무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춤으로 시비를 건다. 시비는 교묘할 필요도, 그것을 부정확하게 인용할 필요도 없다. 선명한 춤이었다. 박근태(현대무용단 자유 대표)의 〈광장〉(11월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본다.


 



 무대 앞, 가로로 나란히 서 있는 12대의 스탠딩 마이크와 흰색의상의 남녀 무용수들. 마이크에다 대고 ‘아~’ 라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춤은 저마다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분출되는 광장의 상징이다. 프레임을 밀고 들어오는 무용수들. 기억과 의식의 공간을 설정하는 틀로 작용하는 프레임이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안선희의 솔로. 팔꿈치로 다른 쪽 손바닥을 치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앉는 춤, 이채롭다. 춤을 추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 그녀의 동선을 따라 프레임과 함께 움직이는 무용수들. 창을 낸 프레임은 개인(안선희)의 기억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장치가 된다. 현재와 과거, 시간과 공간이 무대에서 중첩되는.
 두 명의 남자 무용수, 분명하지 않은 검은 형체, 여자군무진의 춤으로 가득한 무대(광장). 한 명에서 시작된 춤이 하나 둘 꼬리를 물면서 군무로 휘몰아치는 춤은 흩어진 것들이 다시 엮여 광장에서 내는 고함소리가 되는 과정을 춤으로 정직하게 그려낸다. 3명씩 덩어리로 모여 선 무용수들, 한 그룹이 움직이면 다른 무용수들이 움직임을 작게 하거나 멈춰 선다. 춤추고(말하고) 있는 누군가의 춤(소리)에 집중하는, 말하자면 춤을 낭비하지 않는 것.
 겹쳐 서 있는 프레임. 중첩된 기억. 그 아래로 원피스를 벗어던진 안선희가 천천히 기어 나온다. 만약 프레임이 고통의 기억이라면 고통은 배가된다. 그녀의 무의식에 내재된 기억이라 짐작한다. 두 발로 설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기억. 벌거벗은 자아, 무너진 자존. 안무자는 고통의 역사를 프레임과 나신의 무용수를 배치,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중앙에서 양쪽으로 빛이 번지듯 확장된 조명. 개인의 문제가 공동체의 문제로 번져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얹어본다. 프레임을 사이에 두고 세 명, 여섯 명으로 늘어나는 무용수들. 양쪽에서 몰아치듯 들어왔다가 나가는가 하면 다시 갈라지는 춤의 파도. 밀리고 밀어내는 춤의 반복과 조명.
 서로의 주장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밀어내면 밀렸다가 다시 자신의 주장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춤을 감정을 벗어버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움직임의 형태로 보여준다. 바닥에 가깝게 몸을 밀착시키는가 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프레임을 사이에 두고 춤을 추는 탄력있는 조현배의 춤(몸). 좋은 무용수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광장’의 무용수들. 눈이 어두운 권력의 마지막 공포를 춤으로 본다. 죽음처럼 누운 뒤 다시 일어나 춤을 춘다. 다시 바닥에 납작 쓰러지고 벌떡 일어나기를 거듭하는 춤은 극적인 동시에 슬픔이 어려 있다. 농담이 다른 베이지와 자주색의 의상. 가슴에 손을 대고 불안한 듯 추는 춤. 내면의 강인함, 동시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고통을 온 몸에서 뿜는다. 화해를 청한 뒤, 일제히 뒤 돌아선 채 추는 군무. 변화를 위한 혁명적인 거리의 에너지를 닮은 춤. 근사했다.
 마지막, 길고 폭이 넓은 붉은 색 치마를 입은 안선희. 치마를 거머쥔 채 무대를 달린다. 붉은 광장. ‘붉다’는 ‘아름답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자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달릴 수 있는 광장. 12명의 무용수들이 한결같은 춤의 에너지로 조화롭게 빚어낸 무대. 빛났다.


 



 안무자 박근태는 춤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환상적인 힘의 강도만큼 춤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이 조금은 변화할 것을 진지하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온 몸과 마음을 던져 춘 춤이 다시 무대에 오를 수도 없고, 세상은 기대한 만큼 변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시도와 함께 적어도 춤의 정신(자존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록 춤이 무력하다해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안무자로서의 실천의지를 보여준 박근태의 〈광장〉. 젊은 춤의 정신, 그 자체였다. 

2016. 12.
사진제공_현대무용단 자유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