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이 자체 기획 ‘접속과 발화’의 한 꼭지로 최근 〈오케코레오그래피〉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와 코레오그래피의 접속에서 이해준·정수동 두 안무자의 코레오그래피를 위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예술감독 임헌정)의 현악7중주가 연주하였다(10월 7-9일, 자유소극장). 발레를 제외하면 클래식 연주단의 현장 반주가 무척 드문 터에서 〈오케코레오그래피〉에서 접하는 현장 반주는 이례적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현악7중주가 연주하는 동일한 곡을 과제로 두 안무자가 제각각의 코레오그래피로 발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과제곡은 미니멀 뮤직의 제2세대인 존 애덤스의 〈Shaker Loops〉(1978년작)로서, 미니멀 뮤직을 과제곡으로 내세운 것은 이번 프로그램의 특이점이다. 1960년대말 실험음악으로 출현하고 이제는 음악 양식으로 정착한 미니멀 뮤직은 부분적으로 춤곡으로 활용되어 왔었다.
짤막한 멜로디나 두 개의 음을 속도감을 동반해서 수없이 반복하는 미니멀적 패턴은 일반적으로 미니멀 뮤직이 환기하는 해방감의 원동력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미니멀 뮤직의 곡은 한 편의 음악곡으로서는 퍽 매력적일 수 있고 실제 그러하다. 이에 비하여 곡 전체가 춤곡으로 전개되는 경우는 드문 줄로 아는데, 아마도 악곡의 변화가 적어 흐름이 단조로운 탓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4악장으로 구성된 〈Shaker Loops〉(참조: https://www.youtube.com)는 미니멀 뮤직의 감성과 아울러 나름의 변화가 뚜렷해서 춤곡으로 활용해볼 소지가 작지 않은 것 같다. 해당 곡은 제1악장이 제4악장과 유사하지만 제2, 3악장은 그렇지 않고 이들 악장에서는 얼마간의 명상적 분위기와 다른 멜로디의 요소가 더해진 그런 곡이다.
누가 듣든 〈Shaker Loops〉에서는 일단 쾌적한 카타르시스를 뚜렷이 감지하기 마련이다. 흥미롭게도, 〈오케코레오그래피〉에 올려진 이해준의 〈Reflection〉과 정수동의 〈Dive〉 두 안무작은 곡의 그런 분위기에 연연하지 않고 곡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정서를 표출하였다. 〈Reflection〉에서 삶은 결코 경쾌하지 않으며, 〈Dive〉는 침침한 일탈이 오히려 일상적인 어느 세상을 들춰 보인다. 이렇듯 〈Shaker Loops〉의 밝은 듯한 느낌 역시 안무작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곡 자체의 빠른 속도감이 움직임에 얼마간 반영되는 정도였다. 춤과 음악 사이의 거리는 이처럼 안무자의 해석과 감성에 좌우된다. 이러한 차이점은 현대음악에서 춤의 영감 찾기를 염두에 두고선 춤에 전곡이 잘 쓰이지 않는 미니멀 뮤직을 택해본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 취지와 부합하는 것 같다.
〈Reflection〉은 방랑자 렝보(19세기 후반 시인)의 시 〈에테르니테〉(영원)를 소재로 한다. 렝보는 태양과 함께 달아나는 바다를 영원(永遠)이라 노래하였다. 덧없는 순간들이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명멸(明滅)하는 바다는 렝보에게서 영원의 이미지로 수용된다. 렝보의 감성을 쫓는 〈Reflection〉에서는 인간들의 격정과 동요가 두드러진다. 리플렉션이 반영(反映) 또는 성찰(省察)이라는 다의로 해석되듯이 〈Reflection〉은 그런 영원의 실상을 거울 비추듯 반영해 보였다. 그런 결과, 영원에 기대어 해방에 다가선 렝보에 비해 이해준의 〈Reflection〉에서 감지된 것은 영원에 기댄 해방이 가능한가 하는 성찰이었다. 여기서 두 남성 출연진은 아주 대조적 품세를 보였다. 류석훈의 섬세한 떨림과 안영준의 육중한 무게감이 그것으로서, 그들의 안정되며 능란한 움직임과 함께 여성 출연진들의 다채롭고도 매끈한 진동과 요동은 〈Shaker Loops〉의 잔잔한 파동들 속에서 긴장과 이완의 순간들을 속도감 있게 엮어내었다.
〈Dive〉에서 목격되는 것은 쾌락의 나락에 던져진 세상이다. 안무자가 소개하듯이, 세상은 무허가 술집, 사창굴, 도박장 같은 면면들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심연의 바다이다. 공공 윤리 이면에서 손을 뻗치는 심연을 그려내면서도 안무자의 판단은 끝내 유보적이다. 심연의 바다에 뛰어들기는 매혹적 허무인가, 거룩한 피난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Dive〉는 바다에 뛰어드는 다이버의 자세 그리고 이를 조금 변형한 날짐승의 큰 날개짓을 축으로 여섯 명 출연진 전체가 눕거나 일시에 멈추는 장면들을 조화롭게 연출하였다. 정수동과 표현력이 인상적인 이주미가 몇 분 동안 펼친 이인무 부분은 심연 속의 실존적 갈등을 꽤 농후하게 묘파한 부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두 안무작의 이미저리가 바다와 결부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주목할 점이다. 〈Shaker Loops〉의 어느 부분에서도 바다를 명시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안무자가 곡에서 바다를 연상해낸 연유는 결국 〈Shaker Loops〉에서 찾아져야 하므로, 이 우연의 일치를 암호풀이 과제로 접수해볼 호기심을 촉발하는 바가 있다. 미니멀 뮤직의 해방감은 순열적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정착을 모르는 내적 논리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그 같은 해방감은 곡을 청취하는 내내 내면을 떠돌아다니는 감각과 직결될 것이다. 이 같은 부유(浮遊)의 느낌이 두 안무자에게 바다나 물결을 연상케 했을까.
이번 프로그램에서 두 안무자는 〈Shaker Loops〉 곡을 나름 역이용하였다. 다시 말해 반복, 진동, 파동, 부유 등등 곡의 요소를 수용하면서 〈Shaker Loops〉를 자기 식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미니멀 뮤직 곡 전체가 춤곡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드문 터에 춤과 미니멀 뮤직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가까우면서도 먼 듯한 관계에 있은 듯하다. 지구상에 출현한 지 50년을 내다보는 장르의 음악을 등한시할 만한 이유가 이해되는 한편으로, 〈오케코레오그래피〉는 이번에 그것을 파헤쳐볼 이유도 있다는 것을 환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