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반도가 그 어느 해보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던 올 여름의 막바지에 젊은 창작자들이 일궈낸 결실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고블린파티의 〈은장도〉(8월 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평자 19일 관람), 김성용댄스컴퍼니무이의 〈Lynch〉(8월 26-2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평자 27일 관람) 그리고 휴먼스탕스의 〈FOG〉(8월 26-2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평자 27일 관람)가 그 주인공들이다.
고블린파티 〈은장도〉 (임성은 등 공동창작)
고블린파티의 〈은장도〉는 그간 주로 안무를 담당해온 임진호와 지경민이 방향제안자의 역할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여성무용수 네 명-임성은, 이경구, 안현민, 이연주가 공동창작자로 전면에 나선 작품이다. ‘은장도’를 섬 이름으로 확장 해석하여, 여인들이 모여 사는 신비롭되 닫힌 공간으로 꾸몄다.
역사가들은 고려 이전이나 조선시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는 남녀평등의 증거가 있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 박힌 조선시대의 이미지- 남아선호, 정절에 대한 일방적 강요, 여성에게 부여된 엄청난 노동 강도 등은 너무나 강력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리 상쇄되는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올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으로 점화된, 우리사회 안 여성의 현실적 위상에 대한 논란들을 고블린의 창작자들도 주의 깊게 지켜보았을 지도 모른다.
격자의 창살무늬가 둘러진 흰 벽으로 세워 막은 무대는 마치 여인들이 갇혀 살았던 규방을 연상시킨다. 창호지 너머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처럼 반듯하게 정좌한 모습으로 등장한 무용수들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대사로 ‘은장도’하면 으레 뒤따르는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 기기묘묘하게 처리한 랩, 노래와 동작들(예를 들어 유령처럼 얼굴만 모아 이동하는 등)을 뒤섞어 넣어 시공간의 경계 자체를 없애버린다.
작업용 목장갑, 망치 등의 소품과 나무박스를 활용한 노동과 놀이의 장면에서는 남자 없이 충분히 강인한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차라리 무용수들이 안무를 수행하는 방식에서 그것이 더 드러났다고 봐야겠다.
고블린파티 특유의 관절을 차곡차곡 접었다 폈다 하는 난이도 높은 동작들, 네 명의 신체를 엮거나 늘어놓아 하나의 움직임을 만드는 안무 등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머리카락, 손까지 동원해 보다 격렬하고도 섬세한 표현을 만들어냈다.
극은 이들이 한 명의 주검을 싣고 나무박스로 배를 만들어 탈출하는 데서 끝나는데 사실 이것은 약간 개운하지 못한 결말이다. ‘은장도’가 정절의 신화로 포장된 물건이 아니라 결국 여성이 참고 참다 자기 몸에 ‘화(anger)’를 내는 자해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포착하고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로 시작되는 대사처럼 자칫 불운한 개인들의 문제로 국한될 소지를 남기거나 이 땅에서의 탈주밖에 답이 없다는 것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블린파티 나름의 전복적인 유머에 보다 날카롭게 벼른 주제의식이 보태어진다면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 될 듯하다.
김성용 댄스컴퍼니무이의 〈Lynch〉 (안무 김성용)
김성용 댄스컴퍼니무이의 〈Lynch〉는 올해 3월 이미 인천에서 초연을 갖고 보다 정비된 모습으로 재공연한 작품인데 ‘폭력’을 주제로 삼은 연작 Moving Violence Episode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이전 작품들이 남녀 듀엣이었다면 이번에는 박은영과 마리코 카키자키의 여성 듀엣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평자는 이번 〈Lynch〉에서 폭력에 관한 연작보다는 2014년 안무작 〈엄마와 낯선 아들, 아들과 낯선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체격과 생김새가 닮은 두 무용수를 기용함으로써 상호간에 일어나는 감정과 행동의 전이 과정을 묘사한 점에서 그렇다. 〈Lynch〉에서는 같은 옷을 입고 쌍둥이처럼 닮은 두 무용수가 폭력을 주고받고 서로 답습하면서 새로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는 설정이다.
태엽 혹은 셔터를 감듯 일정하게 반복된 소리가 깔리고 클래식 발레의 기본 동작에 기계적인 움직임을 접목시킨 전반부와 마리코 카키자키가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쳐든 채 짐승처럼 무대를 가로지르는 후반부는 분명 인류 역사의 어떤 역행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력이 다했음을 뜻하는 말라붙은 나뭇가지, 그것으로도 상대를 때리고 찌르는 모습은 대놓고 우악스런 폭력보다도 더 참혹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강대국들이 짓밟았던 약소국 출신들이 이젠 그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를 감행하는 현실이기에 이 작품에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안무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어머니 지구의 한 자식이라는 것을 각성해야만 폭력은 멈춰질 수 있으리란 점에서 비슷한 모습의 두 무용수를 기용한 안무는 상당히 상징적인 기능까지 담당할 수 있었다.
휴먼스탕스 〈FOG〉 (안무 조재혁&김병조)
조재혁과 김병조가 만든 그룹 휴먼스탕스의 〈FOG〉는 무대 매커니즘과 주제를 연계하는 연작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는 작품이다. 신비하고 몽환적이면서 잘 보이지 않는 데서부터 오는 두려움을 조성하는 무대효과장치로서의 ‘안개’뿐만 아니라 Fear of Generation의 약자로 인간관계, 성장 과정 등을 통해 파생되는 감정의 다양한 측면들을 그려내려고 하였다.
무대를 가득 덮은 포그는 그 자체로 ‘인생’을 상징한다. 그 속에는 수많은 갈래의 길이 감추어져 있으며, 명확하지 않아 두려운 한편 희미하게 보이는 환영들이 보여주는 일말의 가능성이 우리를 매혹시키며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객석과 무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적색의 레이저 광선들은 무대가 감히 침범하기 어려운 성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막아서지만, 한편으로 무용수들이 춤추는 오선지(실제로는 6줄이었지만)처럼 보인 것은 평자만의 착각일까. 이요음, 박혜지, 정혜민, 최문석, 김병조 등 원래도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지만 잠비나이의 이일우가 담당한 음악은 록과 국악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흥을 돋우었고, 무용수들의 신체 속에 내재된 리듬이 표출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고려한 안무가 돋보였다.
특히 남성무용수 2명, 여성무용수 3명이라는 조합의 매력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 이번 작품의 장점으로 기억된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에너지가 꽉 찼던 초반의 5명 군무에서는 그 성비가 다양한 관계망을 구성하면서도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남녀 1명씩 빠진 후 2대 1의 트리오- 또 그 안에서의 듀엣- 뿐만 아니라 옷을 갈아입고 재등장한 최문석과 장혜민의 장면에서 독백과 솔로 등등 풍성한 구성으로 앉은 자리에서 춤의 다양한 형태를 골고루 감상할 수 있었다.
요즘 영화들에서 유행하는 쿠키영상처럼 처리된 마지막장면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했다. 소품으로 쓰인 촛불을 모아 모닥불처럼 만들어 둘러앉으면서 도란도란 얘기하고, 일광욕이나 요가 등을 즐기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소박한 행복들이 인생의 어려움을 건강하게 이겨나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어떤 주제의식을 담더라도 기본적으로 춤은, 보는 사람까지도 추고 싶다는 충동과 에너지를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한다면 휴먼스탕스의 이번 작품은 그런 기본에 충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