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 반주음(伴奏音) 차원에서 판소리만으로 춤의 운율을 이어간 경우는 그간 아주 드물었다. 그런 경우에도 소품이나 작품의 일부가 판소리로 진행되곤 하였다. 이 사실은, 우리로선 익숙한 판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의 춤이 판소리와 대등한 접합을 이루려면 예상을 능가하는 내공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터에, 춤계 원로 김매자는 이미 15년 전에 안무작 〈심청〉에서 판소리 〈심청가〉와의 융합을 모색하여 새로운 현대성을 기조로 우리 춤의 새 면모를 제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초연 당시부터 여러 면 의미심장했던 때문에 〈심청〉은 이후 해외 무대에도 20회 남짓 소개되었으며 이번에는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선정 공연되었다(6월2-4일, 국립극장해오름극장).
줄거리 면에서 〈심청〉은 심청 설화의 일반적인 내용에 준하되, 생사별리(심청의 탄생-어머니의 죽음과 이별), 반포지효(안맹한 아버지 공양-공양미 삼백석 약조), 범피중류(남경상인 인신공양 제물 자청-인당수 투신), 수중연화(용궁에서의 부활), 천지광명(맹인잔치와 부녀상봉)의 5개 장으로 정리 구성되었다. 2001년 엘지아트센터에서의 초연, 2003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의 공연, 그리고 이번까지 이 틀거리는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또 사각형의 흰색 대형 배경을 무대 가운데 지점까지 중첩시키고 객석 옆 가장자리에서 객석 높이의 하얀 가교가 무대와 이어진 것도 초연 때와 유사하다.
판소리 연행에서는 소리꾼과 고수의 연행을 완전히 노출시켜 구경꾼과 호흡을 맞춰가는 관행이 철칙이다. 〈심청〉 구성 양식 면에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판소리와 춤을 동시에 펼쳐보이는 일이다. 초연 이후 소리꾼과 고수가 변경되곤 했어도 이 구성 양식은 고수되어 왔다. 안무자가 〈심청〉을 두고 ‘소리로 보는 춤, 춤으로 듣는 소리’라 명명하듯이 춤과 판소리의 융합은 춤이 한국 특유의 개성을 담보해내는 방안으로 주목되어 왔었다.
이 두 장르의 매우 드문 융합을 15년 전에 결행했던 안무가의 결기는 〈심청〉을 현대춤(컨템퍼러리 댄스)으로 출현시켰다. 생각해보면, 판소리의 아니리, 성음과 장단을 소재로 춤의 운율을 이어가야 한다면, 춤이 기댈 선율과 리듬은 매우 제한된다. 〈심청〉이 당면하기 마련이었을 그 같은 제약점은 오히려 춤 움직임이 내재율을 바탕으로 표현되도록 했을 것이고 이와 동시에 흔한 사실적 재현과 구체적 감정 묘사로부터 탈피하도록 유도하였다. 말하자면, 옛 판소리와 만난 덕분에 〈심청〉은 오히려 현대의 양식을 더 다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번 공연 현장에서 소리꾼 성음의 전달력이 미흡했던 탓에 객석에서는 이전의 공연들에 비해 ‘소리로 보는 춤, 춤으로 듣는 소리’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심청〉은 처음부터 김매자 안무로 창무회가 공연해온 레퍼토리이다. 이 레퍼토리를 창무회가 아닌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국립무용단이 김매자와의 협업으로 공연하게 되었다. 단체가 달라지면서도 작품의 전반적 구성은 초연 때의 것이 유지되었으나 몇 군데 눈에 띄게 손질이 가해졌다. 3장 범피중류에서 한 명의 심청을 두 명으로 늘리고 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원일의 사운드를 부분적으로 첨가하는 데 더하여 특히 유럽의 오페라-연극 연출가를 드라마투르그로 기용한 것이 손질의 대표적 사례들인데, 국립무용단이 이번에 〈심청〉의 버전업을 모색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심청〉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번의 버전업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었음직하다. 이에 반해, 〈심청〉에서 국립무용단이 의도한 버전업은 기대만큼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국립무용단의 춤 움직임과 〈심청〉은 서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상체 위주의 경직된 듯한 내두름은 〈심청〉의 전아한 미감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추가된 음향이 과도한 의욕을 자제하고 브릿지 구실에 머물러 효과를 살린 점도 있었으나, 새로 추가된 다음의 착상들은 대개 사족(蛇足)에 머문 것으로 생각된다.
2명의 심청이 죽음에 직면한 뱃전 위 심청의 애절하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기에는 둘 간의 차별성 또는 대조점이 적어 우선 차이부터 잘 식별되지 않는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초연 때부터 옅은 색조를 유지한 조명에서 이번에 후반부에 추가된 컬러 조명은 작품 특유의 단색조(모노톤) 품격 및 간결미와 얼마간 상치되는 느낌을 주었다. 2장 반포지효에서는 기억컨대 여성 군무진이 과도해서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나로서는 초연 때부터 〈심청〉을 심청에게 현대성을 투여하는 작업으로 주목해왔다. 유교적 효, 자기 희생, 왕생극락, 인과사상, 자아 각성, 페미니즘 등 오늘의 우리에게 다면적 성찰을 촉발할 수 있는 〈심청가〉에 비추어 〈심청〉이 현대성 짙은 춤으로 형상화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에 따라 〈심청〉에선 〈심청가〉마저 현대화되는 의의도 컸었다. 반면에, 과거의 매체로, 과거의 방식으로 〈심청가〉를 재현하는 것은 시대성에 뒤떨어진 번안 작업으로 흐르기 쉽다. 옛 판소리를 활용하지 않고 클래식 음악으로 재현했어도 과거의 심청에 머문 실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심청이 현대의 정체성을 갖고 환생해서 우리의 성찰을 촉발하려면 〈심청〉처럼 오늘의 매체와 표현방식으로 재발굴·재해석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심청〉은 한국적 정서와 격조를 환기하기 위해 판소리와의 융합을 착안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심청〉의 이전 버전과는 달리 이번 국립무용단 버전의 상당 부분이 비록 희망에 그쳤을지라도 〈심청〉의 원래 작품성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