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01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첫 무대 때만해도 불과 15년 이후에 이처럼 많은 무용예술가들이 세계 각국을 누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허용순, 김용걸, 강수진, 한상이, 강효정, 권세현 등을 이 무대에서 만났고,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박세은, 국립발레단 주역 이은원 등이 영스타로 출연한 바 있다. 올해의 초청 무용가는 독일 함부르크발레단원 박윤수, 덴마크 왕립발레단원 홍지민, 헝가리 국립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김민정, 캐나다 국립발레단원 나대한,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원 정훈목이다. 홍지민은 14년 만에, 박윤수는 1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섰다니 올해(7월 29-30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의 테마는 ‘숨은 인재 찾기’라 해도 무방할 법하다.
첫 작품 〈차이코프스키 파드되〉에서 김민정은 한층 여유롭고 성숙해진, 라인이 확장된 춤집을 보였다. 나대한 역시 리듬감, 가벼운 착지, 시원한 도약에서 춤의 즐거움과 발레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보기 드문 남성무용가로 등장했다. 두 사람 모두 회전기가 탁월하고, 코다의 땅 드 뿌와쏭(물고기 포즈)에서도 호흡이 잘 맞아 우아하고 경쾌한 조지 발란신의 명작을 무난히 재연했다. 이 커플은 2부에서 다시 뉴욕시티발레단의 대표적 안무가였던 제롬 로빈스의 1970년 작 〈인 더 나이트(In the Night)〉 중 한 장면을 선보였다. 쇼팽의 야상곡 모음에 맞춰 세 커플이 등장하는데, 두 번째 춤 ‘달콤 쌉쌀한’ 부분을 공연했다.
〈지젤〉 파드되에 출연한 영스타 박선미와 전준혁은 성인에 버금가는 기량으로 무대를 빛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재학생 박선미는 성숙한 외양과 더불어 ‘지젤 아다지오’의 기본이라 할 균형감을 타고났다.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재학 중인 전준혁은 한국 발레가 더욱 더 발전할 것을 알리는 상징적 인물이다. 엄격한 교육의 필요성을 보여준 도약과 바뛰(다리 부딪치기)의 한 차원 다른 호흡과 정교함, 지탱한 다리의 완벽한 포인트, 공중회전에서 땅을 향해 발끝을 찌르듯 펴는 순간순간의 기본기가 감동적으로 아름다웠다.
2부에 출연한 영스타는 캐나다 국립발레학교에 재학 중인 송현정, 서울예고 재학생 안세현과 정은지다. 홍정민이 안무한 여성 3인무 〈길 위에서 길을 묻다〉에서 세 사람은 경쟁하듯 열연했다. 국립발레단과 캐나다 알버타발레단 발레리나 출신답게 안무자는 변화무쌍한 기교를 강조했고, 알레그로의 연속을 암전으로 구분하며 다양한 팔 동작을 통해 현대발레의 자유로움을 부각시켰다.
박윤수와 함부르크발레단원 왕리정(Lizhong WANG)은 존 노이마이어의 1992년 작 〈신데렐라 이야기(A Cinderella Story)〉 중 ‘오렌지 2인무’를 먼저 선보였다. 프로코피에프 음악이지만 시대 배경을 20세기 정도로 옮긴 의상이 색다르고,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귀한’ 오렌지를 건넨다. 박윤수의 팔 라인이 명확하고, 노이마이어 특유의 정감 넘치는 드라마가 돋보인다.
이 커플이 2부에 공연한 〈아다지에또(Adagietto)〉는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중 3장에 들어있다. 안무자의 강렬한 감정표현을 전수한 왕리정의 기량이 탁월했고, 박윤수 역시 신뢰할만한 전문성을 분출했다. 남자와 두 손을 맞잡고 앉기 시작한 여자가 남자의 무릎에 눕고, 남자는 팔을 옆에서 앞으로 이동 시키며 음악을 잠재우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베자르의 진한 감정과 킬리언의 섬세한 기교를 고루 지닌 노이마이어의 장점이 두드러졌다.
덴마크 왕립발레단에서 활동하는 홍지민은 같은 발레단 주역 우릭 비야크키야(Ulrik Birkkjaer)를 파트너로 대동했다. 〈백조의 호수〉 2막에 첫 등장한 왕자는 발레가 서양인에게 더 어울리는 예술임을 단숨에 이해시켰다. 1986년 사망한 덴마크 출신 무용가 에릭 브룬 버전으로 소개한 ‘백조 아다지오’는 보다 표현적이라거나 거칠다고 묘사할만했다. 정중동의 섬세한 동작 연결이 현대적 평가 기준인데 반해 여기서의 백조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급작스레 팔을 모으는 등의 극적인 모습을 강조해 옛 영상을 떠올리게 했다.
홍지민 커플이 2부에서 공연한 〈비서라(Viscera)〉는 4세에 무용을 시작, 8세 때 로열발레학교에 입학, 2010년에 안무를 시작한 리암 스칼렛의 2012년 작이다. 당시에 26세였다니 가장 젊은 안무가의 최근 작품이다. 미국 작곡가 로웰 리베르만이 1983년 작곡한 피아노 콘체르토에 맞춘 〈비서라〉는 군무와 2인무의 혼합물인데, 그 중 파드되를 보게 되었다. 작곡자는 자신의 음악을 리듬적 힘, 서정성과 드라마로 설명하며 이런 특징이 무용과 연관성이 크다고 자평한다. 적색과 보라색 타이즈를 입은 2인무는 몽롱한 음향에 유연함을 드러낸다. 트레몰로에 공중회전을 하고, 남자 등에 얼굴을 댄 여자의 포즈에서 새로운 춤 소절이 시작된다. 등을 마주 대는가 싶으면 어느새 등에 올라탄 포즈로 전환되는 움직임 활용법이 신세대의 증표처럼 새롭다.
1부 마지막에 출연한, 유일한 현대무용가 정훈목은 단국대학교 졸업 후 피핑톰 무용단에 입단했다. 예술감독 프랑크 샤르티에와 2013년 공동 안무한 〈장 마르크(Jean Marc)〉는 “한국 샤머니즘 속에 녹아있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고 상상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과 인체의 한계를 실험하듯 과격한 동작을 보인 정훈목이 대조를 이룬다. 액체 위에서 앉아서, 엎드려서, 뒹굴며 회전하는 인체와 바닥의 액체를 분석하는 연구자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경계를 강조하는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예술감독을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는 군무 〈브루흐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초연했다. 2인무로 시작해 군무로 마무리 되는, 남녀 5쌍의 파드되로만 구성된 우아하고 밝은 작품이다. 붉은 몸판에 꽃 분홍 망사를 붙인 튀튀를 입은 여성들, 붉은 타이즈에 검정 민소매 셔츠를 입은 남성들이 등장해 음감과 기교를 일치시켜 나간다.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의 파드되 수준을 통해 한국의 발레 발전상을 새삼 재확인했다.
제13회 행사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진행이 돋보였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수준 높은 고전 공연이나 스타 출연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은 상당히 염려스럽다. 올해는 존 노이마이어, 제롬 로빈스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감정적 연결성이 강한 대작의 일부를 떼어낸 단절감도 상당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과시적 이미지가 기회와 용기를 주는 요람 같은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현재 한국을 빛내는 각국 발레단 주역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