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월 하순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이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작년에 있은 행사는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의 국내 프리(pre-) 페스티벌이었으므로, 올해가 실질적인 첫 행사에 해당한다. 서울 이외 지역의 국제적 춤 행사가 드문 상황은 우선 이 춤 페스티벌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대개 페스티벌들이 의욕적인 출발 이후 해가 지나면서 페스티벌의 참신한 기운이 퇴색해가는 전철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는 더욱 대구와는 거리가 있더라도 국외자의 진단이 중요해 보인다.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은 세계안무가전을 비롯 세계안무콩쿠르, 해외 안무가 레지던스 프로젝트, 플래쉬몹, 세계안무포럼의 다섯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7월 25-28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세계안무가전과 세계안무콩쿠르는 경연 형식의 행사이다. 전자가 작품 발굴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후자는 신진 안무가 발굴에 초점을 맞추는 차이가 있다. 플래쉬몹은 대구오페라하우스 옥외광장에서 20분 가량 일반인들과의 어울림 춤판으로 열렸고, 레지던스 프로젝트는 해외 공동 안무자의 춤적 구상에 대구 지역 춤꾼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포럼은 대구 지역의 춤 역사를 일별하는 발제와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발제로 구성되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이 다목적성의 춤 페스티벌을 지향하고 있음을 대변한다. 실제 주최 측이 설정한 목적과 목표에서도 그 점이 확인된다. 주최 측이 제시한 목적은 젊은 무용인들의 안목을 세계로 넓히기, 공연예술 도시의 브랜드 증진 도모, 대구 문화예술의 해외 소개, 지역 무용인 - 대구 시민 간의 문화적 공감대 형성 등이다. 그리고 목표로는 신진 무용인의 성장 지원, 국내 안무작의 해외 진출 기여, 세계에 대구 알리기, 현대무용 도시로서 대구의 자리매김, 지역 기반 예술가의 협업 기회 제공 등이 제시되고 있다.
국내 어느 분야에서나 세계, 국제 타이틀이 눈에 띄는 것은 다반사이다. 넓혀지는 시각과 일견 자신감마저 읽도록 하는 이런 타이틀을 쓰는 만큼 충실도가 따르면 된다. 특히 세계와 안무를 페스티벌로 묶어내는 행사는 다소 생소하다. 그것이 낯설지라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성과가 관건이다. 지금까지의 관행, 지금까지의 인식이 전부는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도 그런 역할을 자임하면서 새 타이틀부터 내걸었다. 안무 작업을 기반으로 위와 같은 목적과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원론적으로 말해, 물론 주최 측의 역량과 대구 지역의 문화적 의지에 좌우될 것이다.
첫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에서 비중이 높았던 것은 세계안무가전과 세계안무콩쿠르의 두 경연 행사다. 이들 경연 행사는 국내의 유사 행사들과 엇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으며 올해의 성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향후의 과제를 들라면,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만의 개성을 발휘하도록 경연작 심사 기준을 세심하게 다듬는 일이다.
이번에 세계안무콩쿠르는 신진 안무가 발굴 프로그램으로서 독무와 군무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 반면, 세계안무가전은 기성과 신진 단체 구분 없이 춤 작품 2편을 선정하여 시상하였다. 두 행사 가운데 후자의 세계안무가전에서 일반 관객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방안이 구현될 수 있고 실제 그러하였다. 세계안무가전은 참가신청서 및 영상 제출의 공모를 통해 참가 단체를 선정하고 참가작은 15-20분 길이로 공연된다. 안무자와 춤 애호가를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연결하는, 일테면 1석2조의 효과를 가질 만한 이 프로그램은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의 핵심 행사이다. 그런 만큼 세계안무가전을 참가작의 선정 및 심사 양면에서 ‘창의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앞으로 이 페스티벌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연 행사가 무용인을 겨냥한 행사이긴 하지만 지역 무용인 - 대구 시민 간의 문화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춤 전문인이 줄어가는 국내 춤계의 현시점에서 전문인을 육성하는 일과 일반 관객을 배가시키는 일은 춤계의 초미 현안이다. 특히 지역에서 이 두 가지 목표는 두 마리 토끼 잡기처럼 더욱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는 데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역의 어려움을 고려해서 경연과 작품 공연을 병행하는 기획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관객과 동떨어진 작품으로는 기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거울삼아 주최 측은 세심한 기획안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안무가전은 한국, 타이완, 홍콩, 일본에서 일곱 작품이 참가하였다. 타이완국립예술대학의 포커스무용단을 제외하면 30대 전후의 안무자들이 경합을 벌였고, 이 점에서 세계안무페스티벌은 젊은 안무 축제라 불림직하다. 세계안무가전의 참가작 가운데 다음 두 작품이 수상하였다. 먼저, 이민영(LDP무용단)의
이번 세계안무가전에서 다수 안무작들이 군무와 1-2인무를 교대로 배치하며 구성해나가는 안무 패턴을 구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15분 여의 단시간 내에 작품을 진행시켜야 하는 제한이 있을지라도 그처럼 단조로운 안무 패턴에 기대어 작품을 구성해내려는 발상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의식 변화가 요청되었다. 국내 안무 또는 춤 경연 대회들에서 마치 관행처럼 통용되는 이런 맹점이 이 자리에서 환기되어 향후에 참가 안무자들이 개성 있는 안무 패턴을 구상하고 표현해낼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나로선, 세계안무가전이 참가 안무자로 하여금 참신한 안무를 창안해서 관객과 함께 즐길 작품을 내도록 재촉하는 장으로서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국내에서 거의 일상적으로 이뤄지다시피 하는 해외 안무자 초청 창작 또는 워크숍으로서 레지던스 프로젝트는 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에서도 운영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랑스의 두 안무자(치카 야카야마, 리롱델 가에탕)는 20대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그 나이에 국제적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주관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자극이 되었을 법하다. 그들의 안무 발상을 대구 지역의 근 20명의 무용수들이 소화해낸 작품은 <무엇이 관계를 정의하는가?>였다.
무대에서 참가 무용수들은 높은 순발력의 춤으로 단련되었음을 직감케 하였다. 15분 길이의 작품에서 인간 관계를 은유하는 작업을 그들은 무용수들의 여러 이합집산을 기초로 하였다. 전체 집단무와 10인 가량의 성별 집단무와 번갈아 등장하는 솔로, 듀엣, 그리고 성별 집단무 등 다양한 변주들은 객석의 예측을 벗어났다. 20대 안무자 그들의 <무엇이 관계를 정의하는가?>는 관객이 인간 관계를 다면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하면서도 관객 생각의 맥을 요령있게 잡아가는 안무 표현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