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주시립발레단 〈봄의 제전 G.〉
대중들의 눈높이 겨냥한 원작 비틀기
방희망_춤비평가

 지난해 정식으로 광주시립무용단에서 광주시립발레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광주시립발레단(예술감독 신순주)은 창단 40주년 기념 정기공연으로 〈봄의 제전 G.〉를 올렸다(6월 23-24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평자 23일 관람).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공동제작한 이 작품은 이미 지난 4월에 기아 타이거즈 개막전에서 짧게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이틀간 공연된 바 있다.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 니진스키가 만든 1913년의 〈봄의 제전〉 초연은 발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된다. 지축을 흔드는 듯한 생명의 박동, 원시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의 색깔 중 8할의 지분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면 그 음악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출발해야하는데, 이번 광주시립발레단의 〈봄의 제전 G.〉은 스트라빈스키 곡의 유명한 첫 바순의 테마를 해금이 연주하는 식으로 살짝 흘려 넣고 멜로디 라인을 변주할 뿐 거의 전체를 양승환 음악감독이 새로 작업한 곡들로 채워 넣었다.


 



 제목 〈봄의 제전 G.〉의 ‘G’가 광주와 광저우(이 작품은 광저우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등의 키워드 말고도 ‘굿’을 뜻하듯이, 국립무용단에서 나와 홀로서기한 안무가 이정윤이 합세한 〈봄의 제전 G.〉는 씻김굿의 콘셉트를 접목시켰다. 정주의 울림으로 시작된 공연은 수백 수천의 넋전을 이어붙인 무대 배경이 시선을 압도한다. 순백의 한지로 사람모양이 빼곡하게 붙은 벽면은 그 자체로 신전이나 사원의 부조를 연상케 하며, 더 나아가 그간 인신공희(人身供犧)로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을는지 짐작하게 한다.
 역광 속에 무용수들이 일렬로 갈대처럼 흔들리며 넋전의 모양과 오버랩 되는 장면 뒤로는 희생제의를 연상하게 하는 여러 종교의 사진과 판화그림이 제시된다. 무용수들이 걸치고 있던 한지를 찢어 발겨 뭉친 다음 신녀의 항아리 속에 넣는 모습은 순결한 동남동녀(童男童女)들을 산 제물로 바쳤던 인류의 아픈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초반의 강렬한 미장센을 뒤로 하고 〈봄의 제전 G.〉는 보다 쉬운 스토리텔링을 선택해 거기에 집중한다. 희생 제물이 되는 고결한 ‘베라’와 신관의 아들 ‘니카’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여주인공의 희생,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여제와의 대립구도, 용서를 통한 구원 등은 우리가 〈지젤〉 등에서 익히 보아온 형태이다. 여기에 희생자를 위한 씻김의 장면(그러나 흰 옷이 아닌 검정 옷이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발레 작품으로서는 특색있다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국공립무용단들이 지역 설화나 전설을 가지고 만든 무용극에서 자주 보아온 구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진정 창의적이고 혁신적인지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대중의 눈높이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해하기 쉬운 창작발레라는 장점을 갖는다.


 



 베라와 니카의 파드되에서 흘러나오는 뉴에이지풍의 애상적인 피아노 선율, 한국 전통 악기까지 가미하여 장중한 영화 ost처럼 매끈하게 작품을 감싸는 음악은 그런 대중적인 취향의 극의 구조에 맞게끔 유유히 흐른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가진 날 것의 감성과는 완전히 다른, 어떻게 보면 감상용에 더 적합하게 가공된 음악이라 무용수들의 에너지 분출을 끌어내지 못하는 측면이 아쉬웠고, 군무진들이 박자를 맞추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 보였다.
 여제와 여령들에게 접목된 이국풍의 춤이라든가 두 주인공의 파드되 등은 고전발레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형태로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이정윤이 힘을 보탠 부분은 몸을 치거나 기마자세와 권법을 취하며 힘을 불어넣는 남성군무에서 드러났다. 그는 안무가로 독립 이후 솔로이스트 작품 〈판〉에서 홀로 큰 무대를 꾸려가는 힘이 역부족인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 〈봄의 제전 G.〉로 어느 정도 만회한 듯 하다. 김주원과 윤전일은 베라와 니카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마스크와 분위기로 작품 전체를 잘 이끌었는데, 스타 마케팅의 전략도 그들이 배역과 어울렸기에 시너지를 냈을 것이다.


 



 섬세하게 설계된 조명, 아마도 일식(日蝕)을 의미했을 두 개의 원의 심플함,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한 색조로 진행된 의상까지 무대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층 1,200여석 규모의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중고생까지 청소년 관객이 가장 많아 보였고 무용전공과 관계없이 공연을 보러온 일반관객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발레단 측은 이에 대해 지난 4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시작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하여 3개월 가까이 지속하여 온 점, 주역무용수 윤전일의 일반시민(비전공자)대상 무료 원데이 클래스 및 무료로 배포했던 공연 스터디가이드북 등의 선전효과가 이틀 공연 티켓 매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광주시립발레단 측이 표방하는 창작 드라마발레로서의 〈봄의 제전 G.〉는 극의 구조나 안무에 있어 예술적인 성취도, 군무의 기술적인 수준을 높일 과제가 남아있지만,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공연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 

2016. 07.
사진제공_광주시립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