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언어학 Linguistics〉
춤이 정말 언어가 될 수 있을까
방희망_춤비평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산문화재단의 공연장상주단체로 지정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신작 〈언어학 Linguistics〉이 6월 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2009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힙합의 진화’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언어〉를 새롭게 확장시킨 작품으로, 본 공연 일주일 뒤에 열린 엘지아트센터의 ‘댄스 엘라지’ 본선대회에도 이것으로 진출하여 관심을 모았다(‘댄스 엘라지’에서는 10분으로 축약시킨 버전이 공연되었다). 5월 21일 모다페에서 신작 〈봉숭아〉를 선보인지 불과 이주일 후에 또다시 공개하는 신작이라, 근래 안무가 김보람의 왕성한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얼핏 보면 기본 선글라스 착용에 일렬로 늘어선 안무, 뒤로 갈수록 옷을 벗어던지는 포맷이 ‘김보람표’로 비슷할 수 있지만 여성들의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매력을 그리기 위해 무용수들을 더 많이 풀어주었던 〈봉숭아〉보다 〈언어학〉은 훨씬 치밀하게 집중된 내용을 갖고 있었다. 평자는 2009년의 〈언어〉는 보지 못하였지만 제목의 변화나 이번 〈언어학〉의 공연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기에, 김보람이 그간 개성과 자기주장 가득한 춤으로 ‘이것이 나의 언어다’라고 천명해오던 데서 살짝 뒤로 물러나 이런 춤이 정말 언어가 될 수 있는지 혹은 누구나 똑같이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식이란 게 과연 가능할지 조망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느꼈다.
 1장 시간의 사용, 2장 몸의 에너지, 3장 상상하는 마음들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에서 1장의 첫 부분은 이 작품에서 행해진 실험의 ‘대조군’과도 같았다. 장경민, 신재희, 진다운, 윤현수 네 명의 무용수가 키 순서대로 줄을 서서 한쪽 다리로 폴짝거리면서 들어오는 시작 부분은 음악과 서로에 일체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춤에서 음악은 움직일 타이밍, 동작을 지속할 시간 등을 지정해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 눈에 이 장면은 매우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보인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일렬로 서서 각각 한 가지씩 동작을 도맡아 그것만 반복하는데 이것은 바벨탑 이후처럼 인간이 각기 다른 언어를 갖게 된 상황을 가리킬 수 있다. 작게 분절된 단순한 동작들은 춤으로 인식되기보다 마치 단어 하나를 어렵게 습득한 아이의 유일무이한 소통방법처럼 보이게 된다. 거기에 분위기와 빠르기가 상이한 6개의 음악-마이클 잭슨, 슈베르트,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LCD 사운드시스템, 고릴라즈 등-과 무음 상태를 번갈아 바꿔 늘어놓으며 같은 동작을 계속하게 함으로써 배경 곧 맥락에 따라 같은 언어가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무음 상태에서는 무용수들이 신체를 때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면서 음악을 대신하던 것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음악이 끝나면 이후 40분 가까이 아무런 음악 없이 무용수들의 진지한 분투가 펼쳐진다. 배열도 바뀌고 네 사람 중 누가 움직일지 당번을 바꾸어가면서 각자의 지정된 움직임을 시행한다. “발차기!”를 외치며 발차기를 한다던가, “동글~ 동글~” 소리를 내면서 팔과 몸을 돌린다든가 하는 장면은 말과 동작의 일대일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경민이 일어나!”하는 외침에 누워있던 장경민이 벌떡 일어나는 장면은 객석의 많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앞서의 동작들이 개인이 인지하는 언어-동작의 연관성을 질문한다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부름에 반응하는 이런 동작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언어-동작의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김보람의 작품에서 ‘탈의’는 ‘솔직해지기’, ‘자유로워지기’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무용수들이 선글라스를 벗고 수영복에 반바지 차림으로 다시 들어오면, 앞서의 해체 작업을 거쳐 다시 만난 상태에서의 조합은 앞장과 같은 동작이라도 새롭게 태어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용수들이 다른 사람이 갖고 있던 동작을 따라 하기도 하고 노래의 리듬과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마무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김보람 나름의 언어학 탐구를 같이 잘 공부했다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11일의 ‘댄스 엘라지’에서 무음 상태 장면만을 따와 진행했는데, 역시나 앞뒤의 맥락이 잘린 상태에서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아이디어와 주제를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본의 아닌 한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안산 공연 당일의 객석 반응은 그간 안산거리극축제에도 참여하고 꾸준하게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해온 앰비규어스의 노력을 짐작하게 했다. 평자가 앉았던 객석의 바로 앞자리에는 여러 할머니 관객들이 있었는데, 앰비규어스의 공연을 즐기는데 연령의 제한이 없다는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내는 소음은 무음 상태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여서 관객층 확산과 함께 관람문화에 대한 홍보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2016. 06.
사진제공_안산문화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