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Dx2 이인수 안무의 <영원한 현재> (2015년 12월 18-20일. 아르코 소극장)는 관객을 매회 50인으로 한정하고 사흘에 걸쳐 5회의 공연으로 진행하였다. 아르코 소극장 원래의 객석을 접어 넣어 버리고, 무대 바닥에 4면을 빼곡히 접이식 의자를 놓아 50-60개의 객석을 만들어 놓았다. 관객은 객석에 몰려 앉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된다. 상대편의 관객과 마주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나 생각보다 먼 객석간의 거리는 그런 우려를 줄여주었고, 관객은 마치 이 작품 또는 출연자와 일대일로 마주 한 듯 직접적인 참여자로 지위를 부여 받은 것처럼 온전하게 접촉하게 되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알아챌 수는 없지만 출입구 쪽에 있는 메트로놈과 대각선 끝에 후드티를 깊게 쓰고 웅크린 채 누워있는 한 사람이 이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모든 것이다. 메트로놈의 규칙적 박자음,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노크 하는 소리 등의 음향과 영어 나레이션 성우의 목소리, 그리고 춤의 반주가 되는 많지 않은 가지 수의 음악이 장면과 더불어 반복되는 이 작품의 구조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반복되는 장면이 앞의 것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채면서 작품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구조로 진행된다.
한 남자가 마치 기억의 벽을 두드리듯이 온몸을 다해 바닥 쪽을 두드리는 단순한 동작에서부터 시작하여, 규칙적 박자에 따라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계바늘처럼 단순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함을 통해 한 남자가 시간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메트로놈의 초침처럼 몸의 중심을 세웠다가 쓰러뜨렸다가 할 동안 주변의 두 명이 한 남자의 체중을 받쳐주는 장면은 이후에는 보다 격하게 초침의 운동범위가 확장되어 주변인의 몸 위로 사뿐히 올리거나 몸의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면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시간을 시각화 한 듯한 장면이 되거나, 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안겸, 김강산, 이강현, 공명진, 김준영이 등장하여 그 남자를 워커발로 밟으려 하고 그것을 빠르게 피하는 군무씬으로 확장된다.
남자의 외로움을 부각시키는 장면과는 달리 출연자 모두(박정미 포함) 일렬로 서서 손을 잡고 한발 한발 박자에 맞춰 전진하는 장면은 왈츠에 맞춰 때론 함께함의 뿌듯함이 되거나, 이후 장면에선 한 사람이 열심히 전진을 해도 미동도 않는 나머지 사람이 전혀 딸려 오지 않는 막막한 장면으로, 더 나아가 그들이 모두 누워버려 더 이상 이끌 수 없는 절망으로까지 발전한다. 결국 쓰러져 있던 후드티의 한 사람은 한 남자였음이 밝혀지고, 그 남자가 두드린 문이 등장하면서 이쪽을 열고 들어간 남자는 저쪽으로 나가고, 다시 저쪽을 두드리고 들어간 남자는 이쪽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마치 시간의 사이에 갇혀 있는 것처럼 그 두 문 사이에서 사라지고 만다.
규칙적인 시간의 격자음, 현재와 자신에 대한 심경을 표현한 나레이션, 그리고 공허함을 각인시키는 음향이 반복되면서 관객은 매우 강하게 한 남자의 기억과 그의 상태에 흡입되고 점층법에 갇힌다. 그의 멈춰버린 시간의 꿈과 기억을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안무가가 만들어 놓은 정교한 구조를 통해서이다. 이인수는 섬세함에 치밀함을 더하여 꽤나 정교하게 기억의 반복과 그것의 차이를 장면으로 구성하고 그를 통하여 그 상태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심연(深淵)까지 관객을 이끈다.
이런 안무는 다른 안무가들에게서 아직은 쉽게 발견되지 못한 것인데, 한, 두 번까지는 구조를 반복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4번 이상을 반복하면서 변주하고 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그저 형식과 구조의 변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더욱 세밀하고 강하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그렇게 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인수의 안무작 중에서나 다른 안무가의 작품과 비교해서도 <영원한 현재>의 입지는 오래 기억될 듯싶다. 일단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주체성의 획득과 매우 밀접하며, 주체가 실존의 고독을 알게 되는 순간 시공은 실존의 끝없는 질문과 탐색과 원망의 장소가 된다. 그러므로 <영원한 현재>의 소재는 안무가의 주체로서의 성장을 드러내는 출발점이다.
또 <영원한 현재>에서 안무가에 의해 그려진 현재라는 시간은 대부분의 작품이 흔히 하듯이 공허한 사유의 대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내밀하게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서 오랜 시간 동안 탐색되고 반성된 것들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결론에 가서 많이들 그렇게 하듯이 감상에 빠지고 말아 모든 탐색과 사유를 물에 타버리는 것으로 흐르지 않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안무가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의 켜’를 꼼꼼히 설명하면서 가이드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상화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구조를 따라 몇 단계를 내려갈 때마다 시간이나 기억과 결부된 멜랑콜리의 다른 지점을 느낄 수 있는 정직하고 세밀한 것이었다.
이인수는 <영원한 현재>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주체로서의 자신이 탐구한 내용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다룰 줄 아는 재료들-음악, 조명, 안무 기법등-을 아주 충분히 잘 사용하였다. 각 장면은 연습기간의 불충분함으로 완성도는 떨어지나 본인이 표현하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주제를 수렴해 나가며 상당부분 실현하였다. 게다가 그건 다른 장르에서는 모델이 있을 수 있지만 춤에서는 어느 작품이나 방식을 모델 삼지 않은 독자적이고, 진지하고, 창의적인 도전이고 자신의 이전작과도 다른 것이라 더욱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상당한 분량의 대본을 관객에게 제공하지 않으면서 영어 목소리로만 진행한 것은 관객의 몰입도 방해했을 뿐 아니라 관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았다. 표현하려는 장면과 동작 시퀀스의 장면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는 지점 역시 하나의 통일적인 작품을 위해 자신만의 해법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누군가 제시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이인수의 안무는 이번 작품을 통하여 그간의 행보를 정리하여 한 단계 성숙한 지점으로 올라섰다. 춤의 장면을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영화의 장면처럼 깔끔하게 만들어 전달하는 능력이나 이 단체의 이름만큼 관객이 감정에 머물러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는 힘은 이 단체가 추구하는 보통사람들과 춤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성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길에서 ‘상상력과 감정, 드라마와 춤(EDⅹ2)’으로 성장(盛裝)한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