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칼 위에서〉
가벼운 유머와 춤의 난장 그리고 불균형
방희망_춤비평가

 국립무용단은 2015년 중반부터 반 년 이상 수장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시도를 해왔다. 무용단 내부에서 안무자(최진욱)를 찾아 〈적(赤)〉을 올렸고, 이후에는 음악감독 장영규에게 〈완월〉, 의상디자이너 정구호에게 〈향연〉의 무대연출을 맡겨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왕 공백이 생긴 김에 국립무용단에 딱 맞는 옷을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입어보는 실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 번의 시도가 이루어진 후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결국 내부적으로도 거기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닐지 염려하게 된다.
 게다가 국립극장이 레퍼토리시즌 제를 도입한 이후 여기 속한 국립단체들 모두 어떤 레퍼토리 창출에 대한 과다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국립무용단은 윤성주 단장 재임기간에도 기존 작품을 다듬어 완성된 레퍼토리로 갖추어내기 보다는 신작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거듭되는 실험의 혼란 속에 국립무용단의 구성원들이 가장 힘든 입장이겠지만, 국립무용단을 아끼는 사람들로서도 단체가 오롯이 무용인의 숨결로써 자립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에 국립무용단이 새해 들어 첫 선을 보인 작품 〈칼 위에서〉(1월 20,22-23일, KB하늘극장)는 안무가 류장현에게 의뢰한 것이다. 완성도를 논하기 어려울 만큼 거친 구성으로 40여분을 소비했기 때문에 이번의 실험도 실패에 가깝다고 결론지을 무렵 벌린 20분의 흥건한 춤판이 겨우 마음을 붙잡은, 애매한 작품이었다.


 



 막이 열리면 검은 복면과 옷을 두른 두 사람이 등장하여 일제시대 풍의 대중가요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이 장면이 왜 도입부로 들어가 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여기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복장이 주는 이미지다. 이목구비 일체를 가리고 뒤집어쓰게 한 복면은 그 아래에서 아우성치는 기괴한 표정 변화에 주목하게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던 눈과 입술 등은 가슴 부근과 등판 등에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다.
 이어 객석으로 들어간 무용수들이 관객들을 하나 둘 무대로 데리고 나오는데, 관객과 함께 무대 뒤편에 말아둔 대자보를 한 장씩 뜯어 들고 행진하는 풍경은 요 몇 년간의 사회상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청년들의 ‘안녕하십니까’, 역사 교과서 문제 등등. 그리고 맨 왼쪽의 두루마리를 풀어 카펫처럼 펼친 장면부터 비로소 여기에 굿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검은 옷의 무용수들은 죽음의 그림자, 저승사자일는지 모른다. 혈서를 쓴 듯, 붉은 글씨로 어지럽혀진 두루마리에는 맨 끝 미처 펼쳐지지 않은 부분에 ‘DON’T MOVE(가만히 있으라)’가 적혀 있다.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에 만연한 눈 먼 죽음.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지만 죽음에 제대로 눈이 달려 있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죽음들이 세상에는 일어나고 있다(어쩌면 복면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희생자·망자를 상징하는 무용수를 내세우고 겹쳐 누운 무용수들이 검은 물결을 만들어 그를 띄워 보내고, 두루마리를 찢고 쌓는 일련의 과정들은 진혼굿의 몇 가지 코드를 연상케 했다. 다만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은 너무나 장황하게 열려 있었다.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했다하기엔 느슨하고 긴장감이 없는 퍼포먼스였고, 연출자가 단원들과 어디까지 합의에 이르렀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행위의 구심점을 찾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주 말초적이고 격한 일레트로닉 음악이 공연장을 뒤흔들고, 무용수들은 막춤을 추다가 검은 옷을 벗어던진 후 이어진 우리 장단에 맞추어 각자가 그동안 갈고 닦아온 우리춤의 동작들을 정신없이 추어낸다. 일레트로닉 음악 다음에 동해안별신굿의 빠르고 정교한 푸너리를 매치시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한 것이라든지, 춤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웃다리 농악장단을 사용하여 단순한 굿판으로 종결짓지 않고 보다 건강한 에너지 발산으로 갈음한 것 등의 아이디어는 좋았다.
 마지막 20분은 류장현이 안무했다기보다는 단원들에게 그들의 의지로 춤출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다 보이는데, 근래 국립무용단 공연 중에서 그들이 이렇게 원 없이 자유분방하게 춤을 출 수 있었던 공연이 있었나 싶다.


 



 안무가는 살기 위해 작두를 타는 무당의 모습과 일상이 사선(死線)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동일시하면서 〈칼 위에서〉라는 제목을 정했다 하는데, 공연의 전반적인 내용에 비해 과하게 비장한 감이 있다. 현실을 날카롭게 벼려내는 풍자와 비판 의식을 겸했더라면 설득력이 있었을 테지만, 가벼운 유머에 얹어가려는(대자보의 내용 중 ‘역사를 까먹은 민족에게 남는 건 알사탕 밖에 없다’ 정도) 전반부의 느슨한 연출은 누구를 위한 굿판인지 내내 의문을 남겼다. 대신 국립무용단원들에게는 새해 들어 원점을 찾아가는 한바탕 살풀이가 되었을 터.
 그런 점에서 안무가는 ‘DON’T MOVE(가만히 있으라)’에 대응하는, 춤꾼 나름의 메시지는 전했다고 생각한다. 

2016. 02.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