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영준이 이번 창작산실에서 발표한 〈애니멀〉(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1. 26~28.)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득실대는 모사꾼들의 생리를 목격하게 된다. 2016년 안영준은 숨막힐 듯한 샌드위치 인생을 소재로 한 〈당신의 바닥〉에서 계층 사회의 현실을 풍자한 바 있다. 누군가의 바닥이 누군가에게는 천장이다. 그러더니 곧 이어 2017년의 〈가족놀이〉에서는 직장처럼 가족과 비슷한 인간관계로 포장된 유사가족 내에서 가족을 빙자하여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메스를 가하였다. 이 모두를 그는 고난도의 춤, 또는 아크로배틱한 몸 움직임으로 전개하여 주목을 끌었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이번의 공연작 〈애니멀〉은 옛 팝송 ‘Yesterday, When I was young’으로 서두가 열린다. 자만 또는 오만의 삶을 지새우던 어느 사나이의 회한을 담은 이 유명 팝송에서 〈애니멀〉의 주제 또한 으레 그러하리라 직감할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배경으로 어느 남성(안남근)이 구겨진 종이를 떨어뜨리며 생각에 젖어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이 그런 직감을 더욱 부추길 법하지만, 그러나 〈애니멀〉의 전개는 그러한 예상을 통째로 벗어났다. 〈애니멀〉의 끝자락에서 보게 되는 반전이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애니멀〉은 권력이 주어지는 순간 인간은 짐승으로 돌변한다는 상식 같은 우화를 변죽으로 울린다. 그처럼 짐승과 그닥 멀지 않은 인간의 모습들이 끈질기게 제시된다. 공연 내내 일상의 미세한 힘들이 작동하면서 인간사 권력의 양태들이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갔다. 안무자도 염두에 둔 바로서, 여기서 잡고 잡히고 쫓고 쫓기고 뜯어먹고 뜯어먹히면서 폭력과 유린이 집요하게 난무하는 세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탈과 해방의 자유로움 속에서 이뤄지는 놀이도 기실 그 이면에서는 인간 각자의 감춰진 수성(獸性, 짐승의 기색)을 드러내는 모멘트라는 상당히 우울한 진실 말이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애니멀〉은 안영준이 2010년대 중후반 집중 탐색했던 일상 권력의 문제를 새 버전으로 제기한 의의를 갖는다. 〈당신의 바닥〉 〈가족놀이〉에서 일상의 구체적 에피소드가 축을 이룬 데 비하여 〈애니멀〉은 보다 추상적인 형상화를 기하고 있어서, 이를 어떤 변화의 조짐으로 봐야 할지 아직 미지수이긴 하다. 이보다는, 그의 공연작을 장기간 접해 온 시각에서 반추하자면, 안무자가 지난 몇 해 잠수 끝에 춤생각 면에서 내공(內攻)을 다져온 결실일 것이라는 짐작을 갖도록 하는 대목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추상적 형상화 면에서 자칫 애매모호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취약점을 〈애니멀〉 안무자는 반복의 기법을 통해 사전에 예방하며 제어해나갔다. 이를 위하여 안무자가 집중해서 동원한 장치는 단적으로 몸과 소도구의 쓰임이었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먼저 몸의 쓰임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소집단의 일사불란한 몸짓의 반복이었다. 때로는 몸들이 겹쳐지고 대개는 근접하거나 포개진 몸들이 엉키는 상태에서 기계적 동작을 반복하면서 인간 상호간의 내밀한 실랑이들이 끊임없이 연출된다. 이에 더하여 각자 밧줄로 양발을 묶고 풀어가며 또 네 다리로 바닥을 어슬렁대거나 바닥에 누워 엉덩이를 치켜들어 두 다리를 세우고 그리고 몸들 위에서 몸이 구르도록 하는 데서는 집단 움직임의 다양성이 강화된다. 완강한 움직임의 틀이라 말해지는 것들이 안영준의 전작들에 못지않고 더 다져졌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소도구로 등장하는 하얀 밧줄은 활용도가 높다. 그것은 두 발을 묶어 어떤 제약 또는 자승자박 같은 간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휘두르기 목조이기 상대의 뒤에서 끄집어 당기기 등 상당히 위협적인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동시에 각자 인간들은 그것을 마치 꼬리 삼아 수시로 둥글게 돌려댐으로써 능글맞은 계교를 시전(施展)해 보이기도 한다. 덧붙여 앞서 소개된 구겨진 종이를 각자의 얼굴에 붙였다가 그것을 떼다가는 한 사람의 얼굴에 모아 붙이고선 끝내 떼버리고 내동댕이치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복잡미묘한 가면, 간계 심리가 읽혀진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공연의 도처에서 들리는 낮은 사이렌, 자동차 클랙슨 소리 등 다양한 거리의 소음으로 〈애니멀〉은 인간의 일상사가 야릇한 간계로 점철돼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애니멀〉 중반부에서 사운드는 타악의 명쾌한 리듬이 주조를 이루며 규칙적인 리듬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떠받쳐 참신한 감을 더하였다. 공연의 막바지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작곡 ‘레데츠키행진곡’이 갑자기 울려퍼진다. 위풍당당한 그 곡조에 맞춰 출연자 한 사람씩 제자리 뜀박질로 튀어올랐다가 착지하기를 반복하는 각자는 곡조의 밝은 느낌과는 퍽 대조적으로 고개를 숙인 채 꼬리를 돌려대는 습성을 되풀이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 〈애니멀〉이 강조하려는 것은 아마도 세상에 널린 모사꾼들의 음침한 간교는 쉬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정글 장치 속에 갇힌 어느 인간은 울타리 같은 그 안에서도 꼬리를 돌려댄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이번 공연에 쓰인 반구형의 정글은 쓰임새가 높지 않았다. 그리고 소도구로 쓰인 밧줄의 활용도는 높았던 반면 굳이 하얀색으로 통일되어야 하는지 의상도 하얀색으로 통일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말하자면 공연 전반에 걸쳐 단조로움을 벗어날 연출이 요구되었고 이런 연출 전략은 음악과 효과음 설정에서도 더 고려돼야 했던 것 같다.
안영준 〈애니멀〉 ⓒ김채현 |
출연자 5명이 다투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애니멀〉이다. 팝송 ‘Yesterday, When I was young’은 〈애니멀〉에서 어느 개인의 회한(悔恨) 짙은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회한에도 불구하고 고약한 습성을 끝내 떨구지 못하는 인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반전이라 말해 무방하다. 세상의 각자에게 은밀하게 뿌리박힌 간교는 간보기, 꿍꿍이 따위에서 연유하는 집단의 린치를 린치가 아니라고 우기는 자기 합리화를 조종할 것은 물론이다. 〈애니멀〉은 말한다, 설령 당신이 모른다 쳐도 자기 합리화 그리고 유무형의 권력은 작동한다고. 이런 실상을 안무자는 〈애니멀〉에서 일상 권력을 소재로 하는 2010년대 중후반의 작품 경향을 유지하되 기존 구성 방식에서 벗어난 새 방식으로 시도하였고 그 변화가 주목되는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2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아르코예술기록원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