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 예술감독 제임스 전)가 창단 20주년을 맞아 사흘 동안 예술의전당에서 기념페스티벌 ‘BRAVO SBT’를 개최했다. ‘BRAVO SBT’는 서울발레시어터의 20년을 있게 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인희 단장은 “민간예술단체로 어느 한 해도 특별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오늘을 만들어 주신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 속에서 꿋꿋이 자라 성년을 맞이한 올 해가 더욱 특별하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기념공연과 심포지엄을 중심으로 서울발레시어터 20년을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1) 창단20주년 기념공연
〈스페셜 갈라 & BEING the best〉
방희망_춤비평가
서울발레시어터가 그들의 창단 20주년을 기념한 밤은 뜨겁고 아름다웠다. 10월 22일과 2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스페셜 갈라 & BEING the best〉는 서울발레시어터의 개성과 역량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공연의 1부에서는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의 최근작인 〈RAGE〉 뿐만 아니라 그간 서울발레시어터에서 초청한 여러 안무가들- 리처드 월락, 허용순, 로이 토비아스-의 작품을 모아 다양한 색깔을 포섭할 수 있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유연함을 뽐냈다.
작년 발레부문에서 유일하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초연했던 〈RAGE〉는 이번에 13분 길이로 축약하여 선보였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제임스 전 뿐만 아니라 현대무용에서 참으로 많이 선호하여 쓰기 때문에 흔한 감이 없지 않지만, 한편 국내에서는 제임스 전 만큼 그 음악의 감성을 이해하고 활용하여 안무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무대 위를 질주하고 격투기를 응용한 동작들을 소화해내는 서울발레시어터 여성무용수들의 모습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한껏 펌핑된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은 그들이 흘린 피땀의 양을 짐작하게 하였다. 온갖 부조리하고 부당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존엄하고도 정당한 분노’를 담은 이 작품은, 특히 이번 갈라 공연의 첫머리에 들어감으로써 2부에 구성된 〈BEING the best〉와 수미상관을 이루었는데 제임스 전이 천착한 주제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되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알찬 구성이었다.
창단 때부터 인연을 맺은 스위스 바젤발레단의 상임안무가 리처드 월락을 초빙하여 올해 과천시민회관에서 초연한 〈Snip Shot〉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배경으로 한 깔끔한 안무가 돋보였다. 이 곡을 연주할 때 활이 좌우를 가로지르면서 극단에 머물렀다가 되돌아오는 아주 짧은 순간, 아주 작은 그 공간 안에서도 나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묘미가 있다. 그것을 포착하여 안무 아이디어와 결합시킨 흥미로운 소품이었다.
허용순의 2001년작 〈Elle Chante 그녀는 노래한다〉는 원시적이면서도 에스닉한 정취를 담은 유대 민속 리듬이 흐르는 가운데 그 리듬이 춤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점점 일체가 되면서 정열적인 에너지로 발산되는 모습을 담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구도의 균형 감각이 남다르게 느껴졌는데, 무대 왼쪽 뒤편에 배치된 군무와 오른쪽 전면에 앉은 여성 무용수 한 사람이 마치 양팔 저울처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생성했다가 한데 섞여들면서 에너지의 축적과 발산을 극대화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초대 예술감독으로 많은 공헌을 한 故 로이 토비아스의 작품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를 기리는 제임스 전의 〈R.O.Y(Remembering Of You)〉를 접붙여 시작되었다. 세 쌍의 남녀 듀엣이 순백의 우아한 의상을 입고 잔잔하고 순진하게, 사랑이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을 섬세한 춤사위로 그려내었다. 이렇게 1부 갈라에서는 강렬하고 모던한 작품과 고전적인 색채의 작품을 고루 번갈아 등장시키며 서울발레시어터가 소화해낼 수 있는 작품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2부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창단과 함께 태어난 록 발레 〈현존 BEING〉에서 베스트 장면들을 선별하여 70분짜리로 재구성한 무대였다. 〈BEING〉은 4년에 걸쳐 3막을 순차적으로 완성하여 결합시킨 만큼 서울발레시어터의 역사를 한 몸에 담고 있으면서 서울발레시어터만이 구현할 수 있는 젊고 폭발적인 힘과 개성을 드러내는 대표 레퍼토리이다.
1막 〈존재의 의미〉, 2막 〈혼란 속의 삶〉, 3막 〈여정과 구원〉이라는 부제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한 젊은이가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을 구하기 위해 던지는 치열한 질문과 고단한 여정들이 다양한 형태의 현대 춤으로 표현된다.
막이 열리고 무대를 종횡하며 등장한 할리 데이비슨 두 대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와 배기통 소음은 관객을 단박에 이 작품이 초연된 90년대 중후반의 감성으로 끌고 들어갔다.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허영만의 만화 〈비트〉가 1995년에 나왔는데, 소용돌이처럼 밀려드는 청춘의 불안과 아픔을 떨치고 돌파해낼 수단으로 스피드를 결합시킨 컨셉트가 폭발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냈던 기억이 난다.
1막 장면에서는 거대한 환풍기가 돌아가는 고층 빌딩 옥상 위를 그대로 가져온 듯 현실감 있는 무대에 트렌치를 걸친 정운식이 어두운 세계를 지휘하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군림한 솔로춤과 실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 김인희 단장이 연기한 구원을 상징하는 천사의 춤이 교차되면서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갈등이 시각화되었다. 특히 김인희 단장이 보여준 상체와 팔의 움직임은 그녀의 현역시절 명성을 새삼 재확인시켜주면서, 연륜의 깊이를 더한 원숙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2막에서 특기할 점은 보통 고전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에서 민속무용에서 비롯된 캐릭터 댄스들을 구성하여 춤의 볼거리를 다채롭게 하는 형식을 가져오되, 내용물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와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7,80년대 영·미권 뮤지컬, 댄스무비, 뮤직비디오 등에서 배경으로 즐겨 사용한 낡고 허름한, 그러나 달빛이 스미는 듯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창고를 꾸며두고 세 명의 비보이와 청바지를 입은 군무진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춤은 상당한 볼거리가 되었다.
마이클 잭슨, 퀸 등 한 시대를 선도했던 아이콘들의 음악과 영상은 그 자체가 워낙 강렬한 개성으로 완성되어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전위적인데, 〈BEINGⅡ〉는 그런 스타일들을 한데 모아 솜씨 좋게 버무려낸 종합선물세트 같다. 한편 중간에 포주로 여장을 한 제임스 전의 깜짝 등장은 유쾌한 웃음을 남기기도 했다.
스케일 크게 행성의 움직임을 투사하여 처리한 3막 장면에서는 김인희 단장과 정운식이 과감하고도 숙련된 와이어 공중연기를 선보였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선악이 화해하는 대단원을 이끌어내기까지 다소 오버하며 늘어지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작품이 표방하는 색깔과 2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뜻있는 개인들이 모여 결성한 민간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현실적인 난관이 수도 없이 많았겠으나, 그것을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만의 창작 레퍼토리를 보유하고자 하는 꿈과 열망, 부단한 노력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 20주년 기념공연이었다. 한 단체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연은 흔하게 열리고 또 그 어느 것이라도 축하받아야 마땅할 일이기는 하지만, 관성에 젖은 모습으로 집안끼리 자축하는데 지나지 않아 이후의 발전을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단체들도 허다한 점을 생각하면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마침내 꽃피워낸 듯한 서울발레시어터의 저력은 찬사 받을 만했다.
(2)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민간 예술단체의 운영 성과와 향후 과제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10월 15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컨퍼런스홀에서는 ‘민간예술단체의 운영성과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한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서울발레시어터가 주최하고 한국예술경영학회 후원으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는 <서울발레시어터 20년의 성과 및 향후과제>(장광열 춤비평가), <민간예술단체 운영성과 및 발전과제>(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민간예술단체 지원정책 현황과 개선과제> (이용진 서울예술단 이사장)를 제목으로 한 발제를 통해 사례, 성과, 향후 과제 등 다각적 방면에서 민간예술단체가 직면한 현안을 논의했으며, 김성규 한미회계법인 대표, 이정우 문화예술관광부 예술정책과 과장,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개회사에서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은 “민간예술단체의 운영성과와 향후 과제라는 주제 하에 서울발레시어터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숙제들을 고민하면서 우리 민간무용단체, 전문민간예술단체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되었다. 우리 같은 민간예술단체가 어떻게 예술창작활동과 생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오늘 나온 좋은 의견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는 “척박한 대한민국 예술시장에서 서울발레시어터의 20년 역사는 엄청난 것이다. 창작발레를 수출해서 로열티를 받는 일,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발레대중화를 선도하는 일, 또 노숙자와 장애아동, 멀리 콜롬비아까지 가서 소외계층을 교육하는 등 계층과 지역을 초월하는 사회공헌 활동, 그리고 적지 않은 단원들에게 고정급여와 4대 보험을 지급해주면서 지속적으로 고용창출을 해오고 있는 것 등 이야말로 우리 문화예술계의 자랑이자, 자산이다”라며 축하의 말과 함께 “사실 국가나 기업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민간예술단체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 심포지엄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서울발레시어터 20년의 성과와 과제'를 발표한 춤비평가 장광열은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가 출범할 당시 한국 발레계의 상황은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과 같은 공공무용단과 민간 직업무용단인 유니버설발레단, 그리고 대학 동문무용단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전부였다. 따라서 창작 발레 생산 & 발레 대중화를 표방한 서울발레시어터의 출범은 무엇보다 전문무용단 체제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고정 단원들이 매일 클래스와 연습을 정기적으로 반복하고 단장, 안무가, 트레이너, 무용수, 행정의 역할이 구분된 발레단의 운영 체제는 이후 다른 민간단체 운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서울발레시어터 20년의 성과로는 창작발레 작품 확충, 발레 교육프로그램 확대 및 교육사업 시행, 고정 레퍼토리 유통을 통한 발레 관람 기회 확대, 기업 메세나를 통한 재원조성, 공공 기관 •공공 지원제도와 연계한 단체 운영, 작품 안무가 무용수를 통한 국제교류로 요약된다. 100여 개의 작품을 만들었고 토탈 1천회를 공연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고정 레퍼토리 유통을 통한 관림기회 확대 노력으로 총 111개 지역에서 455회 지방공연을 했다. 전막발레
발레특강, 발레아카데미, 오픈리허설, 쇼케이스, 백스테이지 투어, 홈리스발레교육, 콜롬비아 뚤루아시 지역에서 시행한 빈곤, 고아, 장애 등 사각지대 아동청소년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소외지역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PIP 20+ 등 발레 교육프로그램 확충도 빼놓을 수 없다"고 정리했다.
이밖에 창단 20년, 서울발레시어터의 향후과제로
● 질 높은 공연과 레퍼토리의 예술적 완성도 배가
● 20년 전문 직업 예술단체로서의 사업 다변화
● 커뮤니티 ‘예술’ 프로그램 개발 (무용예술의 사회적 역할 확대)
● 협업, 연계작업을 통한 해외무대 진출과 국제교류 확대
● 재원확보 채널 다변화 등을 제안했다.
<민간예술단체 운영성과 및 발전과제>를 주제로 발제한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연 기획이나 마케팅을 담당한다고 하면은 특정한 프로그램을 사와서 홍보해서 팔고 하는 협의회를 가지고 있는데, 민간단체의 경우는 단체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건지, 그런 의미의 마케팅은 어떻게 할 건지를 병렬적으로 봐야 된다. 개별 프로그램이 축적되어서 단체 브랜드가 만들어 지는 것도 많지만 처음부터 경영을 하는 관점에서 단체브랜드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단체간 네트워크 강화 및 공동 협력사업 추진 확대도 중요하다. 장광열 선생님은 기업이라던가, 재원을 맡고 있는 단체와의 협업을 말씀해주셨고, 정부가 이러한 것들을 지원해줘라 라는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덧붙여 나는 정부지원이 아니라 단체들끼리 수평적으로 하는 교류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객원 안무가를 모셔 와서 3개월 지내고, 서울발레시어터 안무가가 3개월 가서 지내고, 사업 자체를 민간 안에서 네트워킹하고 협업하고 교류하는 그런 것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공적 재원을 끌어내는 방법과 관련해 “예술 지원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힘드니깐 도와달라는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가고 있는지, 대한민국 무용계를 이렇게 가게 하고자 하는 것을 관계자들에게 설득하고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민간예술단체 지원정책 현황과 개선과제>를 발표한 이용진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예술계 현장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 문예회관, 국립단체, 방방곡곡, 소외계층 문화나눔 등등 을 따져보면 민간단체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별로 없다. 대부분이 국공립단체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실질적인 민간단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예산은 적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단체들이 피부로 와 닿는 지원사업들은 별로 없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단체들이나 각 기관들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 사업들이 현장 속에서 민간예술단체가 필요로 하는 것들과 잘 연계가 안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원단체간에 중복사업을 줄이고, 좀 더 기관간의 교류를 통해서 사업패턴을 차별하는 쪽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