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두혁(계명대 교수)의 〈psalms-시편〉(10월 21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분류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현실의 모습을 춤의 이미지로 풀어낸 작품. 원래 ‘psalms’ 은 성경의 시편에 나타나는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그 중심 주제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와 경배의 시. 최두혁은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란 뜻에 중점을 두고 푼다.
비닐로 만든 대형 막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무대.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로만셰이드 커튼처럼 접혀있던 대형 비닐막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2명의 무용수가 현악기의 음색에 맞춰 움직인다. 무대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마치 악의 세계처럼.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군무진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뛰어다니기를 거듭. 대형군무진의 일사불란한 춤과 이동.
빌딩과 타워크레인이 서있는 어두운 도시 배경. 가로로 엉겨있는 군무진의 움직임이 서서히 한 줄 세로로 정렬되는 춤의 구조. 무용수들이 도시 속으로 스윽 스며든다. 이렇게 도시에 스며든다는 것은 도시와 닮아있거나 닮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말일 수도. 닮아 있는 그곳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은, 부당하게 이해받지 못한 삶의 완강한 저항으로 읽힌다. 삶의 깊이를 춤으로 잘 그려냈다.
이어지는 군무진의 춤이 사회의 구조와 삶의 고통, 고단함을 그려내는 군무와 솔로의 느린 춤이 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한 무대, 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춤. 개인은 집단에서 일어나는 죽음, 고통과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있다. 그 자신이 이미 벼랑에 서 있는지도 모를 일. 공간을 명확하게 경계 짓는 조명과 음악. 붉은 색 드레스, 붉은 색 조명에 나타나는 타워크레인과 도시의 이미지는 전쟁터, 무대는 이미 지옥. 흰색 의상의 남녀의 춤과 음울한 현악기의 연주, 군무, 그리고 솔로의 춤이 한 무대에서 물결처럼 구른다.
가로로 높이가 다르게 나누어지는 무대, 크고 깊게 내쉬는 숨소리. 3단으로 천천히 나누어지는 공간에 흰색의상의 남녀와 검정색 긴 코트를 입은 남자, 그리고 춤 (몸)선이 깨끗하고 단정한 김가영의 솔로와 김민준의 춤이 돋보이는 무대. (절대로)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선명하게 그려낸 주목할 만한 연출이다. ufo가 연상되는(닮은) 조명판이 무대 위로 훅하고 떨어지면서 다른 공간이 생기고, 남자무용수의 어깨위에 올라선 여자무용수가 아래로 몸을 던지면 여럿이서 여자를 받아내는 춤의 반복이 이어진다. 최두혁은 몸이 깨어지고 마음이 부서진 다음에도 인간이 어떻게 온전하게 남는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psalms-시편〉은 안무자의 의도대로 ‘다양한 무대장치와 조명의 시각적 효과의 극대화’로 보는 재미에 충실한 무대였다. 하지만 방향 없이 중첩되는 물량적 춤의 공세와 일부 무대 연출이 이미 익숙한 그림이라는 것, 진부하다. 단지 낯선 것이 없다는 것만으로 최두혁의 무대를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안무자만의 춤의 언어라는 것과 늘 해오던 것의 반복은 다른 말이다.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춤으로 옮겨놓는, 안무자만의 철학에 따른 적절한 춤의 언어가 필요한 시기인 듯. 예술가가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다음날 관람한 대구시립무용단(예술감독 홍승엽)의 <아Q>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에 초연되었으니, 9년 전 작품. 2015년, 무대에 오른 <아Q>, 조금도 낡지 않았다. 현실 속에 하나의 얼굴로 나타나는 삶의 불투명과 그 삶이 어떤 압제, 어떤 수모 속에서 영위되더라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을 가진 것임을 춤으로 절묘하게 묘사해냈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그 흔한 영상 조각 하나 없이 오로지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으로 담백하게 그려낸, 철학적이면서 더 할 수 없이 세련된 작품이었다.
최두혁은 춤의 이미지화로 현실을 현실 밖에서 보여준다. 작업을 통해 불투명한 현실 중 한 둘의 정체는 밝히고 있다. 다르게 홍승엽은 문학을 통해 춤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분명한 춤의 언어로 보여준다. 이들이 무대에 어떻게 시간을 바쳤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들의 춤의 실천이 세상살이의 실제적 성장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것은 분명하다는 것,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