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컴퍼니 더바디 〈The Body Variations〉 (6월 19-20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와 김영희 MUTDANCE 〈2015 살풀이_돌아서서〉 (6월 25-27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는 모두 서울문화재단(이하 재단)의 다년간 지원사업 수혜단체의 신작 정기공연 작품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2013년부터 상주단체 지원사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견단체의 예술적 역량 제고를 지원하기 위해 지원기간 확대(조건부 3년 연속)를 골자로 하는 단체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현장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준비하였다고 한다. 연극과 무용 두 분야 공연단체들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한 동시에, 신진단체와 중견단체에 대한 섬세한 차별 지원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읽힌다.
그 결과 무용에서는 창단 21년차인 무트(지원금 8천 만원)와 11년차인 더바디(지원금 9천 만원)가 선정되어 2014년부터 16년까지 연간 상기 액수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더바디는 세부사업계획으로 2개의 신작공연을 준비하고 5월과 6월에 모두 공연하였으며, 무트는 2개의 공연 외에 홍보영상제작과 전문행정인력 양성계획 등 조직운영계획까지 세우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다년간 지원사업’은 차별성 문제에서 5년차를 넘어가고 있는 상주단체사업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인데, 공연단체와 하드웨어를 결합시켜 극장상주 시스템으로 단체의 안정적 예술환경을 만들려는 사업과 비교해서, 오히려 이 사업은 상주단체사업에서 극장만을 제외한 것으로 단체들은 예술 창작에 대한 여타의 부담을 덜고 조금 넉넉한 지원금을 안정적으로 받게 되는 장점을 제외하고는 지원 액수에서나 지원여건에서 별 특기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런 조건 때문인지 두 단체의 공연에서도 역시 별 다른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었고 이는 실망과 우려로 이어졌다.
댄스컴퍼니 더바디 〈The Body Variations〉
더바디의 정기공연은 이윤경 솔로 <꽃바라보기>, 류석훈 솔로 <조용한 파동>, 류석훈 안무, 이윤경 연출 <사막의 선인장> 3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윤경의 솔로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애순의 안무로 작년에 공연된 작품이고, 류석훈의 솔로는 <조용한 외침>에 이어 ‘조용한’ 시리즈로 보이는 솔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신작에 대한 욕구는 <사막의 선인장>으로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두 솔로의 무대는 간결하다. DJ 안태석의 라이브 DJ-ing과 노트북의 위치와 영상이 투사되는 호리존트의 영사막뿐인 무대. 절제된 조명 속에서 현장감은 생생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솔로에 대한 집중도는 꽤 높게 진행되었다. 이전 공연과의 가장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이 작품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윤경의 솔로가 자신의 춤인생 50년을 돌아보며 다른 안무가로부터 안무를 받아 자신을 좀 더 객관화 하는 동시에 50년간의 춤의 역사를 아카이빙 방식으로 기록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형식을 택한 것에서 그 의지는 분명히 읽힌다.
이전까지의 더바디의 형식은 자타공인 이화여대 육완순류 현대무용의 嫡子로서 이 부부 댄서의 뿌리는 상당히 명확한 편이었다. 모던댄스 방식으로 깔끔하게 숙련된 기교는 장인의 반열에 들만큼 다듬어져 그들 춤의 중심이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뚜렷한 욕구와 징후가 보인다. 그러나 이윤경 솔로의 경우 우리나라 대표 여성무용수의 명예에는 약간 실망스러울 정도로 안무 받은 새로운 움직임이나 작품 전체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해석은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무대에 처음 오르는 아이처럼 허약하고 불편하다.
류석훈의 솔로는 하체의 이동을 자제한 채 한자리에서 시종일관 한 손목과 한 발목을 끈으로 묶은 채 전율과 진동으로 많은 시간을 메우는 모습에서 움직임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을 읽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추구에의 의지는 솔로 두 작품에서 소진되었는지 단원으로만 공연된 <사막의 선인장>은 제작비가 꽤 들었을 거 같은 무대장치와 그 위에 투사된 영상이 역동성을 만들어 낸 것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짠 작품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안무적으로 유약(幼弱)했다.
지난 5월 모다페에 하루 공연의 일부로 공연되었던 개작 공연인 <조용한 외침>과 더불어 고려하더라도 더바디의 2개의 공연은 1차년도 사업이라는 이해를 포함하더라도 스타일 변형에 대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보여진 것은 자기중심이 약한 불안정하고 소심한 작은 시도 정도였고, 곳곳에서 보이는 자기복제의 흔적에서 다년간 지원을 기회로 어디로 가야할지 아직은 창작의 중심을 못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희 MUTDANCE 〈2015 살풀이_돌아서서〉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인 김영희 무트댄스는 한동안 주목받는 신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단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워크샵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번 신작공연을 통해 오랫동안의 답보 상태를 벗어나려는 강한 의욕으로 무대를 꾸며 보여주었다.
‘살풀이’ 그것도 안무자 김영희가 오랫동안 수학해온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을 선택하여 전통과 현대, 삶과 춤의 연결고리를 생성하고자 하는 이 공연의 창작의 중심과 뿌리는 꽤 확고하다. 무대의 왼편 2층 단위에 타악(정재효), 구음(황혜리, 변수리), Millind Date가 라이브 연주를 하고, 오른편에는 그랜드 피아노(박창수/ 음악감독)가 놓여 있다.
1장 길 위에 서서, 2장 돌아서 오는 그 길, 3장 돌아서서로 구성된 작품은 법칙에서 벗어난 듯한 시간과 호흡의 무한한 확장과 그것을 어느 틈엔가 낚아 채 클라이막스로 몰아가는 미묘한 시간의 힘을 보여주었다. 마치 겨울 숲을 연상시키는 듯한 벌거벗은 메마른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과 어슴프레 한 조명, 그리고 강력하게 작품을 끌고 하는 호흡의 앞에 혹은 뒤에 숨은 듯 드러나는 음악, 그것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안에 던져진 여자들의 육신, 머리카락 그리고 그들이 공기 중에 던지는 육중한 팔 사위는 작품의 2/3 선까지 어느 누구의 지루함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꿋꿋하게 흘러간다.
얇은 쇠줄을 당기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쌀의 폭포가 점층적으로 확대되고 구음과 타악과 관악기 그리고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규정을 벗어난’ 음악은 광활한 카오스의 바다를 충분하게 요동시키며 무대 저 멀리에서 관객을 향해 폭발적인 힘으로 덮쳐온다.
심연과도 같은 또는 깊은 검은 숲과도 같은 신비한 원근감은 조명과 장치의 힘이 크고, 그것을 에워싸는 가장 큰 스케일은 역시 음악이다. 즉흥으로도, 시나위로도 불려지기에 성에 차지 않는 현대적인 음악적 힘은 그 깊이와 폭에서 가히 국내 무대에서 아직까지 견줄만한 힘을 본적이 없는 연주였다. 춤을 절제하고 핵심 동작으로만 시간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아이디어와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무용수들로부터 드러나는 춤은 아직은 어색하고 설익었다. 거의 클라이막스 후반에서 붉은 색 의상을 입고 나오는 김영희의 솔로에서 보여준 춤 맛으로 그 의도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비록 안정적으로 대학을 근거로 활동해 온 무트였지만 오히려 그 조건이 공연과 관객으로부터는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작용해왔으며 그 거리감만큼 자기 객관화에는 서툴었던 시간들로 보인다.
이번 다년간 지원이 이 단체에게는 창작적 심지를 잃지 않고 다시 꺼내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창작춤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구축이라는 긍정적 입지는 응원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이렇게 드러내면서 확인된 ─초월로의 무한한 확장을 방해하는 신파조와 안무가의 솔로 지점에서 생기는 구태의연함 등─ 것들은 꼼꼼히 되짚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화의 지점에서 이외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지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기반 구조’에서 ‘공공지원-기반의 구조’로
다년간 지원을 받은 두 단체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 중견 단체들이 넘어야 할 지점이 명확하게 보였다. 중견 단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술적인 자기변형, 자기혁신을 해낼 수 있는 창작 방법론의 막힌 부분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의 창작방법과 자연스럽게 획득된 스타일을 20년 이상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 완성적이지 않은 경과적인 것이며, 자연성장하고 있는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견단체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막혀 있다.
지난 4월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신춘 포럼에서 〈2015년 공공직업무용단 어디로 갈 것인가?- 공공성의 나침반 꺼내기〉라는 제호로 발제를 한 적이 있다. 발제에서 필자는 우리를 둘러싼 무용계가 처한 상황은 ‘대학-기반 구조’에서 ‘공공지원-기반의 구조’로 물적 기반의 큰 변화로 용트름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번에 지원을 받은 두 단체 역시 과거까지의 ‘대학-기반’에서 탄생한 단체이고 현실의 변화에 따라 ‘공공지원-기반’을 체험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렇듯이 그들의 의식 역시 대학-기반이었을 때의 소극적이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물적 기반의 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 생존과 성장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으로 훌쩍 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 변화를, 그 변화에 어떻게 응대할 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약간 넉넉해진 지원금으로 그간 해보지 못한 시도를 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대학-기반’의 구조는 많은 좋은 무용수를 양산했으나 안무가는 성장시키지 못했고, 무용인을 대학 졸업자로 만들어 사회적 위상은 격상시켰으나 실기 중심의 교수들이 학문과 이론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하였다.
춤 예술에 무용실과 학생이라는 자원은 주었지만 실험과 창작, 사회와 관객에 대한 감각은 거세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거기서 성장한 무용가들의 끝은 입시부정과 비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발아래의 땅이 변하고 있다. 무용인들의 의식이, 이제는 한참 변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