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사스무용단 〈로사스 댄스 로사스〉〈드러밍〉
‘규율’과 ‘자유’의 적절한 조화
방희망_춤비평가

 올해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 중 단연 첫 손에 꼽을 만한 벨기에 로사스무용단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로사스무용단은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가 1983년 창단한 단체로, 이번 내한에는 창단과 함께 발표했던 작품 〈Rosas danst Rosas〉(5월 7일), 1998년 발표한 〈Drumming〉(5월 9-10일, 평자 9일 관람)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대표작들을 들고 왔다.




 1시간 4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을 오롯이 네 명의 여성 무용수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으로 떠받쳐야 하는(그래서인지 단 1회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Rosas danst Rosas〉는 마치 ‘이것이 로사스의 정체성이다’라고 스스로 천명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밤- 아침- 오후- 저녁 시간대를 표상하는 네 개의 무브먼트에 네 명의 무용수 구성은 ‘강- 약- 중강- 약’인 음악적인 에너지의 율려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중첩하여 고안한 형태라고 느껴졌다.
 특별히 구체적인 서사를 담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의상과 소품, 안무의 내용은 근대를 통과하여 현대로 건너오는 여성들의 역사를 충분히 연상시키는 바가 있었다. 이를테면 무용수들이 착용한 비둘기색의 저지 셔츠와 경쾌하게 출렁이는 짧은 플레어스커트, 발목까지 가지런히 올라온 흰 양말과 얌전하게 마무리된 끝선을 지닌 구두 등 스쿨걸 룩을 연상시키는 복장 그리고 무대 한쪽 구석에 겹쳐 쌓아놓은 의자들은 이 작품이 펼쳐지는 공간이 어쩌면 수녀원에 딸려 있는 기숙학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유럽에서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집을 떠나와 정숙한 요조숙녀가 되도록 엄격하게 교육받았던 공간, 오랜 세월 외로움과 눈물로 마음의 요새를 쌓아야 버틸 수 있었던 폐쇄적인 공간 말이다. 성숙한 체격을 지닌 무용수들이 앳되어 보이는 의상을 착용한 묘한 부조화 속에서 그 공간 속 갇힌 소녀들이 은밀한 집단행동을 통해 욕망을 가진 여인으로 변신하길 꿈꾼다는 시나리오를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첫 번째 무브먼트에서 마치 점호를 끝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네 명이 몸을 굴리고 뒤집고 일으켜 턱을 괴는 등의 움직임을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것은 몸 안에 전류처럼 흐르는 원초적이고 내밀한 충동이 몸을 달구고 튀어나오려 한다는 그 동기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무브먼트까지 바닥이면 바닥, 의자면 의자에 무용수들의 몸을 붙박이로 고정시킨 채 전개한 안무들은 그런 충동에 강력한 통제력을 부여하여 긴장감 넘치는 길항관계를 만들었고, 후반부까지 점층적으로 에너지의 발산 정도를 확장할 수 있게 배치한 셈이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개 안되는 단순한 동작들을 붙여 만든 동작구들은 중독성 있게 반복되어 뇌리에 박히고, 발끝에서부터 모아올린 시선을 쇄골 언저리에서 한번 방출하고 머리카락을 공중에 튕김으로써 완전히 발산시키는 일련의 동작들은 서양에서 여성들이 육체적 매력을 뽐내기 위해 취한 제스처를 연상시키는 유머가 있다(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친구들과 함께 시전하던 유혹의 포즈를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 무브먼트에서 몸 안의 기운 한 방울까지 쥐어짜듯 몰아가는 격렬한 춤은 얌전한 여성들 내부에 숨겨진 마성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그들만의 작은 제전이 엑스터시에 다다른 그 순간을 그린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품위를 지키며 전개될 수 있었는데, 그 묵묵한 고행을 버텨낸 무용수들의 탁월한 기량 덕분이고 안무 자체가 네 명 사이를 작은 반란의 공모자라는 유대감이 생성되도록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무가의 강력한 개성에 무용수 개개인의 개성은 눌린 채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한국인 단원 윤수연의 고혹적인 표정 연기는 눈에 띄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 위에 세운 작품 〈Drumming〉은 처음부터 열린 공간에서, 에너지의 방출을 보다 이지적으로 그려내는 실험이었다. 앞서 〈Rosas danst Rosas〉가 감정선의 기승전결이 있어 관객이 보다 감성적으로 공명하며 접근할 수 있던 반면에 〈Drumming〉은 감정의 기복을 차단하고 무용수들을 음파(音波)의 위상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요소로서, 어떻게 보면 음악의 하위 개념인 것처럼 사용하였다.
 사람의 목소리나 피콜로 등을 가끔 넣었을 뿐 봉고 드럼, 마림바, 글로켄슈필 등의 타악기를 주재료로 짧은 마디의 리듬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반복하는 단위의 길이를 각기 다르게 하여 겹침으로써 위상 차이가 생겼다가 다시 일치하는 패턴인데, 지극히 건조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이런 음악적인 실험 위에 덧입힌 춤은 건조함을 상쇄하듯 자유분방한 것이었다.
 타악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위에 물을 뿌린다면 그 반동에 따라 작은 물방울들이 여러 방향으로 튕겨지며 움직일 텐데, 무용수들이 마치 물방울 입자가 되어 움직이는 장면을 한 시간 동안 지켜보게 되는 느낌이었다.
 안무가가 스티브 라이히의 수학적으로 계산된 음악의 구조에 안무를 맞추는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방법은 무대 바닥면을 어떻게 분할하여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8개의 서로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을 조합하여 황금분할의 나선을 그려나가거나 별 모양을 기반으로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등의 컨셉트를 가지고 있었다(팜플렛에 안무 도면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가이드라인은 12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누비는 속에 기본 구조로 숨겨진 채 진행될 뿐이다.
 처음 무대 양쪽에 각 5명, 7명으로 나뉘어 서 있던 무용수들은 오렌지색 상의를 입은 여성 무용수의 주도로 섞여 들어가며 공간을 점유해 나간다. 동작의 크기와 발이 닿는 범위가 확장되는 정도는 앞서 언급한 가이드라인에 비례하여 증가하게 된다. 〈Rosas danst Rosas〉 초반에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 자체가 중요한 표현 도구가 되었듯 〈Drumming〉에서는 때때로 터져 나오는 기합 소리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음악 속에 무용수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수단이 된다. 관객들을 등지고 무대 앞쪽에 간격을 달리 하여 배열된 다섯 개의 조명은 순차적으로 켜지거나 꺼지며 점진적인 전개 양상을 암시하기도 했다.




 벨기에 무용예술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힌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두 작품은 그녀의 명성이 ‘규율’과 ‘자유’의 적절한 조화로 얻어진 것임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작품의 바탕이 되는 음악을 택하거나, 장면 전개 구조를 택하거나 어찌되었든 탄탄한 뼈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 거기에 감성의 살을 덧입힐 때 균형 잡힌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Rosas danst Rosas〉가 세련되게 다듬어진 여성적인 춤이란 어떤 것일까 다시 돌아보게 하고, 내밀한 충동을 발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좀 더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이 작품이 현재까지도 유효한 매력을 지녔다고 느껴진 것은 갖가지 실험 속에 길을 잃은 요즘 공연계의 유행 속에 ‘기본’이 그리워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2015. 05.
사진제공_로사스무용단/LG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