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5년 봄을 맞아 춤전용M극장(강남 소재)에서 공연된 ‘우리 시대 춤과 의식전’(4월 11-12일)의 네 작품 중, 최원준의 <붕어>, 노정식의 <소풍 v2.0>, 최효진의 <상실의 새>는 각기 다른 안무자의 다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옴니버스 영화처럼 연결성을 갖는 것이 흥미로웠다.
세 작품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모든 인간이 맞닥뜨리는 실존이라는 문제와 삶의 고달픔이었다. <붕어>가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번뇌와 실존의 문제를 그렸다면, <소풍>은 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원초적인 고독의 문제를, <상실의 새>는 나이 들어가는 30대 후반 여인의 상실감과 자아 확인을 그렸다.
이 날의 네 작품 중 첫번째로 공연된 최원준의 <붕어, Act on Instinct>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긴장 속에 분주하게 노동해야만 하는 가장을,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붕어에 비유했다. 즉 붕어의 유영과 낚시 바늘에 걸리기가 메타포였다.
따라서 여자 둘, 남자 세 명의 무용수들(안무가 최원준 포함)이 롤러판을 배 밑에 대고 엎드려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동작이 특이함을 보여주었다. 여자 무용수 한 명이 객석에서 등장하다든가 여자 무용수가 최원준을 뒤에서 올라탄다든가, 또 그가 엎드려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든가하는 변화 있는 다양한 안무를 구사하는 가운데 남자 무용수의 높은 도약과 위험스런 넘어짐이 무대에 긴장감을 더했다.
최원준이 독백으로 내뱉는 “빌어먹을 운명”이 암시하듯 가장이 감내해야 하는 절박한 한계상황을 그의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의 연출과 춤으로 그렸다. 이전에 무용수로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그렇고, 그 자신이 안무한 <히키코모리 랩소디>에서 보여준 바도 그렇고, 최원준은 이미 그 나름의 강하고 굵은 선의 개성 있는 남자무용가임을 이번 작품에서도 증명했다.
세 번째 순서로 공연된 노정식의 <소풍>은 안무자가 ‘이 세상에 던져졌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생과 운명’을 한 명의 남자 무용수를 내세워 표현했다. 늘 풍부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노정식의 연극적인 얼개와 연출이 돋보였다.
모질지만 방향성을 갖고 끝없이 진행되는 인생을 어느 겨울 날 어머니에 의해 할머니 집에 맡겨지는 아이의 운명에 대입시켰다. “춥지만 따뜻했던 1990년 12월…” 반복되는 나레이션과 파도소리, 끼륵끼륵 대는 바닷새 울음소리가 관객들에게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처음, 가방 들고 등장하는 연기라든지 작품의 후반에서 보여주는 하염없는 종이비행기 날리기는 극적 효과를 높였다. 홀로 무용수로 출연한 이동하는 크게 입을 벌리고 마구 웃기도 하고 무대 바닥을 구르는 희한한 춤 등, 희화화되고 과장된 동작을 보여 주었다.
본래는 안무자 자신이 출연하려고 했던 것을 그가 부상하는 바람에 이동하를 출연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동하는 안무자의 의도를 소화해 기막힌 합일을 이뤘다. 오히려 안무자의 안무와 연출 의도를 뛰어 넘는 춤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공연된 작품은 최효진의 <상실의 새>. 그녀는 모티프를 이면우의 시,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에서 얻었다고 했다.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 아니다. 새들은 새마음을 위해 운다….”
무대에 불이 켜지면 앞쪽에 사과 궤짝이 놓여 있고 사과들이 널브러져 있다. 안무자이면서 무용수로 나온 최효진이 사과 하나를 닦는다. 사과는 아직 광택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문득 문득 지난 시간에 비해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고 회한을 갖는다. 지나보면 회한을 가졌던 그 시기가 지금에 비하면 광택임에도. 작품 <상실의 새>는 정체성의 위기와 상실감을 갖는 30대 후반 여성의 자기 존재 확인과 생의 의욕을 북돋우려는 노력을 제목의 ‘새’ 대신 풋사과와 익은 사과라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안무자의 춤 언어로 기술했다.
동문수학하며 긴 세월 춤의 길을 함께 걸은 성유진과 박희진이 무용수로 세 자매 같은 앙상블을 이뤘다. 박희진은 사과를 치마에 담아 떨어뜨린다. 성유진은 사과를 으적으적 씹기도 하고 마구 던지기도 한다. 그 둘의 춤에선 풋사과의 싱싱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최효진도 폭넓은 춤 동작을 보이며 익은 사과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작품의 주제음악으로 깔렸다.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최효진은 혼자 누워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춤을 춘다. 작품의 마지막, 그녀는 사과가 모두 쏟아진 빈 궤짝에 손을 얹는다. 애잔하다. 그러면서도 온기가 느껴졌다.
불꽃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작품은 회한 속에서도 아직 청춘도 안무력도 춤도 건재하다는, 열정도 결코 식지 않았다는 생의 중간, 자아확인이었다.
이 작품 역시 마임과 연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사실, 오늘날의 공연예술 작품은 획일적으로 마임이다, 연극이다, 춤이다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종합예술이고 융복합을 지향하기에.
두 번째 순서로 공연된 정은주의 <붉은 나비의 꿈, 테드 숀 리본 안무의 현대적 발취>를 평자의 이 글에서 마지막에 다루는 것은 위의 셋과는 다른 특이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부제 그대로 현대무용이 태동하던 20세기 초 활동했던 테드 숀의 리본 안무를 새롭게 복원한 작품이었다.
조명에 변화를 주며, 붉은 긴 리본을 돌리면서 내면의 의식을 내보이며 추는 정은주의 춤은 단지 발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그 시절의 숀의 춤과 또 달랐다. 현대무용이 긴 역사를 걸어오며 발전했다는 증명이었다. 숀보다도 키가 더 큰 정은주가 혼자 추는 춤에서 힘과 활달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 마리 활기찬 나비였다.
작품은 현대무용사의 효시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서양의 현대무용과 동양의 한국무용으로 조화롭게 섞어 재창작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