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발레 뒤 노르 올리비에 뒤부아 〈비극〉
육체적 사유의 아름다움
김혜라_춤비평가

 올리비에 뒤부아 안무의 〈Tragédie_비극〉(4월 10-11일,성남아트센터) 공연은 전라(全裸)로 품어내는 치열하고 숭고한 춤의 향연이었다.
 18명의 무용수들은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육체적 사유의 아름다움을 증명해내었다. 근육이 탄탄한 무용수, 축 처진 살에 큰 몸집을 가진 무용수 그리고 머리카락, 눈동자, 피부 색깔이 각기 다른 무용수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무대는 이기적인 문명의 겉옷을 벗어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의 원칙인 ‘퍼레이드’, ‘에피소드’, ‘카타르시스’ 세 단계를 축으로 구성되었다.




 북소리가 울리면서 전라의 무용수가 등장해서 정확하게 12걸음을 걷다가 멈추고 다시 돌아 12걸음을 걷는다. 고대 시원(始原)을 연상하게 하는 북의 울림과 30여분 동안 질서 정연하게 줄을 지어 걷는 군무는 그리스 시대 코러스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다.
 이어 비장한 ‘퍼레이드’에 균열이 시작되고 변형된 움직임들, 갑작스레 뛰거나 비틀거리거나 발작적인 움직임으로 절제된 걸음에 일렁임이 시작된다. 무용수들의 몸은 무리를 지으며 모였다 흩어지며 이전의 규칙적인 배열이 무너지고 이로서 탈선된 몸의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아폴론적인 질서는 무너지고 디오니소스적인 무질서와 충동이 시작되어 서로가 지층을 이루듯 겹쳐진 몸들은 엉키고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공동체의 형상을 표현하게 된다. 무용수들은 어느새 위로 뛰기 시작하며 극적 몰입을 표현하고 날아오르고자 춤추는 모습이 인간과 자연이 합일된 환희의 상태, ‘카타르시스’의 순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무용수들의 집중력이 뛰어난 이 장면은 니체의 “걷고 말하는 법을 잊고, 춤추는 동안에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하며 인간의 몸짓은 그가 매혹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모습으로 보여졌다.




 이어지는 전자음과 사이키 조명 아래 성적 행위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외설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남녀가 적당한 거리를 두었고, 격자로 대열을 바꿔가며 열을 지어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탈진의 경지까지 지속되는 일련의 동작들은 절제와 충동, 이성과 본능이 충돌되는 상황으로 연출되었다. 작품 출발에서 보인 질서정연한 몸(퍼레이드)이 탈선된 몸(에피소드)으로 변주되어가면서, 완전히 탈주된 몸(카타르시스)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 격정적인 호흡과 움직임은 고조되며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집단적 군무의 광란이다. 가파른 호흡과 땀으로 범벅이 된 무용수들은 하나 둘 씩 바닥에 쓰러지고 겹쳐진 몸들의 지친 군상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쓰러진, 널부러진 무용수들이 깊은 땅속으로 침잠하는 듯하다. 분위기가 잔잔해지면서 무용수들 몸의 기운이 무대전체로 확장되는 듯 하다가 관객을 응시하며 서서히 무리를 지어 사라진다. 이때 몸집이 큰 무용수의 눈빛과 마지막 퇴장이 인상적이었다.
 요약해보면, 다양한 연령과 인종 그리고 성별의 정체성까지 벗어던진 전라의 몸은 관습화된 옷을 벗어던진 몸이며 인간의 원초적인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공연의 특징은 정확하게 계산된 세 단계의 선명한 극적구도, 직설적인 도취·충동·환희를 표현하는 군무 그리고 북소리, 잡음, 전자음, 사이키 조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안무자의 의도가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올리비에 뒤부아의 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읽을 수 있었고, 안무자는 <비극>에서 고통이 가득한 세계에서 잃어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자각을 외치고 있었다. 니체가 삶을 부정하는 모든 의지에 저항하는 힘으로서 예술을 고찰하였듯이 올리비에 뒤부아 역시 역동적인 춤(몸)만이 삶을 저항하며 창조해 나갈 수단임을 표명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임을 망각한 현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인간성’ 밖에는 답이 없음을 몸으로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안무가인 올리비에 뒤부아는 카를린 칼송이 수장이었던 프랑스 국립안무센터-발레 뒤 노르 예술감독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7년 <지상의 금을 위하여>, 2008년 <목신들>, 2011년 <프랑크 시나트라의 음악과 사랑>에서 민감한 성(性)적 문제를 다루며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앞 작품들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비극>이 한국 관객에게 전라로 춤추는 몸의 처절한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고 더불어 이 작품은 자족적인 춤의 정화 기능인 춤의 원초적 생명력을 상기시켜 주었다. 다시 한 번 무용수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2015. 05.
사진제공_성남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