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혁파(革罷)라는 말. 변화에 나태하지 않음의 혁파는 노경(老境)을 노경답도록 한다. 알 사람은 알듯이 유동(流動)하는 모양으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는 미나 유, 이 안무가가 이번에는 자화상을 들고 나섰다. 이번 공연작 〈Self-Portrait in Public Corner〉(‘자화상을 한 꺼풀 들추다’ 정도로 옮겨진다)에는 무대 장치 없이 무선마이크와 약간의 디지털 이미지가 등장하고 출연 무용수도 단 셋이다(서강대메리홀 대극장, 12월 5~6일). 미나 유의 공연작 가운데서도 이모저모 가장 단출해서, 안무자가 그 자신의 나이에 비추어 어느덧 노경 같은 경지로 접어드는 것인가 하는 짐작을 자극한다. 노경의 경지에서는 평담(平淡)과 간소(簡素)를 으레 높이 치지 않았던가.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김채현 |
자화상(自畵像) 하면 화가들의 자기 얼굴 그림을 연상하기 마련.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한다는 다소 상투적일망정 대개는 수긍되는 풀이들을 유도하는 자화상들... 〈자화상 들추다〉에서 그려지는 자화상은 그와는 좀 유다르다. 안무자 자신과는 연결 고리가 부재하고 젠더 구분을 따르지도 않으며 정작 그 신원마저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인간들의 이 자화상, 전적으로 익명적이다. 우리 주변에서 처세하는 인간들의 속마음, 아니 그 연연하는 속셈을 짚어낸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되겠다. 안무자가 〈자화상〉에다 들이대는 메스는 아주 완강하며, 공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사는 돌직구로서 마냥 직설적이다. 이 익명의 자화상은 어쩌면 모두의 자화상일 터이므로, 여기서 안무자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 각자에게 공통으로 숨겨진 자화상을 툭툭 내던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한편, 〈자화상〉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뿐 과연 미나 유의 자화상과는 무관할까?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미나유 |
공연에 등장하는 출연자는 셋이다. 공연 도입부에서 슈트 차림의 남자(김성훈 역)가 홀로 바닥에 주저앉아 체념 내지 궁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일어나서 서성대거나 비틀대며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광경을 한참 지속한다. 이어 그는 활달한 움직임을 이어가는데, 자기도취에 젖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다음에 치마 차림에다 운동화를 신은 여자(정한별)가 무대 여기저기를 화가 나서 마구 날뛰는 투로 배회하는 등의 움직임을 내지르며 마이크로 말을 토해낸다. “니가 원했던 것... 니가 해낸 건, 넌 뭐가 다르니? 그 말도 안 되는 정의감은 대체 누굴 위한 거니?... 마지막 경고야...” 식의 말들이 숨가쁘게 쉼없이 이어진다. 그러던 중 망토 스타일의 가벼운 천을 뒤집어 쓰고 하얀 부츠를 신고 나타난 그 남자에게 여자는 계속 그런 투의 말들을 힐난조로 퍼부으며, 그 지경에서 남자는 저대로 배회하며 묵묵부답으로 응대한다. 좀 길게 진행되는 이 광경에서 남자는 그 망토 같은 것을 폭넓게 내지르며 자기 방어의 자세를 수시로 내보이며, 그럴 동안 세상의 평판을 은유하는 붉은 입술 도형의 디지털 이미지들이 망토 천 위에 자주 투사된다.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김채현 |
두 사람이 퇴장한 후 등장한 다른 남자(임종경)가 웃통을 탈의하고 제자리에서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느리게 뒤트는 동작을 중심으로, 해석컨대, 조바심을 내는 심사를 드러낸다. 앞서의 그 남자가 접근해서 두 남자는 듀엣을 이루면서 각자 몸 비틀기와 서로 살피기로 응수하면서 말들을 내뱉는다. 누구의 말이랄 것도 없이 “니 뜻대로 이뤄질 거라는 착각은 하지마... 왜 그렇게 목이 마르냐고?...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그 이름 말고 진짜 니 이름은 뭐냐고?...” 식의 빈축들에서부터 둘 간의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되는데, 후속하는 움직임들에서 긴장의 정도는 짙어진다. 이윽고 한 자리에 모인 세 남녀는 후회가 서린 분위기 속에서 서로 엉거주춤 응수하는 광경을 이어간다. 그리고 처음에 등장했던 남자가 홀로 무대 벽을 더듬으며 헤매는 순간에 벽에는 떨어지는 유성의 빛(아마도 희망을 시사하는 빛일 것이다) 같은 레이저광선이 몇 줄기 투사되고 또 레이저광선의 문자들(그를 향한 세상의 평판들일 것이다)이 남자를 뒤덮으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남자의 마지막 이미지는 멍하니 우두커니 선 자세였다.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김채현 |
3년 전 공연에서 미나 유는 대중음악과 랩, 음유시를 사운드로 활용한 바 있다(〈바디록〉). 〈자화상〉의 선곡에서는 펑크와 랩 류의 곡들이 눈에 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힙합씬이 미나 유에게서는 이미 일상이라는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스트릿댄스 계열의 발상이 일찌감치 미나 유의 춤을 관통해왔고 〈자화상〉에서도 아연 기세등등하게 작품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는 점을 상기할 만하다. 그것은 미나 유의 개성으로 굳혀온 감이 드는데, 이즈음에 이르러 다시 새기자면 고목(古木)에 파릇파릇한 잎새가 돋는 격이 되었다.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김채현 |
공연작 〈자화상〉은 타인을 향한 태도를 탐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단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세태가 도마에 올랐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해도, 그러나 안무자는 그런 타인을 힐난(詰難)하는 행태 또한 도마에 올려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즉, 타인을 향해 분출되는 울분 섞인 일방적 성토는 과연 얼마나 합당할까. 〈자화상〉이 던지는 물음의 화살은 두 지점을 향한다. 〈자화상은〉은 타인(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 그리고 그런 자를 성토하는 자를 겨냥한다. 상대를 성토할지언정 성토를 능가하는 배려가 요망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자화상〉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주변 각자의 자화상들이 발가벗겨지는 역설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마치 〈자화상〉에 만인의 자화상이 담겨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자화상〉에서 자화상의 폭은 아주 확장된다. 〈자화상〉은 우리 시대 갑과 을의 입장을 막론하고 일상의 위선 속에서 자신보다는 타인을 의식하는 데 골몰하는 모두를 향한 경고성 메시지로 수용됨 직하다.
미나 유 〈자화상 들추다〉 ⓒ김채현 |
미나 유의 공연작들은 출연진 면에서 자신이 오래전부터 조련한 춤꾼들과 호흡을 맞추어 안출된 것이고 안정감을 갖는다. 그런 흐름 속에서〈자화상 들추다〉의 구성은, 묘사 소개된 대로, 간박(簡朴)하다. 간박한 만큼 과감하다. 간박함 속에서 출연자들의 움직임과 말의 돌직구는 한층 기세가 돋는다. 미나 유의 노경이 다가선 경지는 이럴 듯하다. 관련하여 상당히 흥미롭게도 미나 유 그 자신의 자화상이 익명적인 〈자화상 들추다〉 거기에 투영(投影)돼 있다. 솔직담백한 돌직구로 요약될 개성 같은 자회상이라 할까. 〈자화상 들추다〉에서 자화상을 우리들 저마다의 자화상이라 칭하다 보면 미진한 감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인의 꿍꿍이 자화상을 그려내는 〈자화상 들추다〉에서 우리는 미나 유의 자화상이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말하자면 〈자화상 들추다〉에는 안무자 자신의 안팎이 두루 스며 있다. 춤계에서 미나 유 연배로서 창작 일선에 나서는 경우가 눈에 띌지 모르겠다. 100세 시대라는 인식에 어울리는 행보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삶을 일관해온 줄기찬 문제의식이 미나 유를 견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게다가 가식을 배제하는(!) 구성으로써 청년 세대의 춤들에서보다 훨씬 거센 메시지를 발굴하고 들이미는 박력은 노경을 배경으로 더 도드라진다. 청년 세대 아닌 청년 세대의 미나 유가 올린 〈자화상 들추다〉는 안무자의 시들지 않은 잎새로 다가온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2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아르코예술기록원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