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기(공기)는 /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 ”
- 기형도의 시, ‘어느 푸른 저녁’
‘살풀이’라고 하면서 겅중겅중 뛰었다. 그때마다 무용수 등의 맨살이 드러났다. 당혹스러웠다. 소리하는 여자 출연자가 등장해 무릎 꿇고 앉아, 또는 무대 앞에서 무릎으로 걸으며 기형도의 시들을 입타령으로 읊었다. 처음 접해보는 광경이었다.
국립무용단의 부수석무용수를 거친 정소연이 안무하고 박천지가 음악감독으로 국악과 양악의 혼합반주를 이끈 <깊은 문_arari>(12월 17-18일. 문화역서울 284 RTO. 평자 17일 공연 관람)는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창작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었다.
제목에 ‘아라리’가 들어 있는가 하면 ‘붉은 살풀이’라는 부제를 내걸었다. 또 ‘안무의 변’에서 악가무 일체(樂歌舞 一體)를 염두에 둔 듯 ‘춤이 음악이고, 음악이 춤이다’를 내세웠다. 공연을 보며 당황스러웠으나 그만큼 파격적이고 신선한 실험이었다.
인생은 수많은 통로로 향해 난 문을 여는 것이다. 즉 통로로 이어지는 관계의 문을 여는 것이다. 모든 문을 다 열 수는 없는 것이고 문을 연다는 것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선택해 문을 열면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안무자는 어떤 문을 열든, 문의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자조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러기에 인생을 긍정하라는 주문인 것 같기도 했다.
본래의 살풀이춤이 액(厄)을 푸는 것, 즉 나쁜 기운인 살(煞)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이 작품 <깊은 문_arari>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붉은 살풀이’는 현대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안 심리, 인간이면 갖게 되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걷어내고자 하는 시도인 것으로 보였다. 결국 좌절하지 말고, 지치지 않고, 끝까지 즐기며 살아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국창작춤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키보드 이외에 징, 장구, 대금, 아쟁이 생음악 반주에 가세했다(송지훈, 박천지, 손정진, 김선호, 조성재). 여창 가수(김율희) 한 명이 연기를 하며 소리로 기형도의 시들을 읊어 국악적 분위기를 돋았다. 삼현육각의 변형된 형태였으나 우리 악가무일체의 전통을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고 국악 생음악 반주 팀 자체가 무대미술 이상으로 무대를 꾸몄다.
서울역 대합실이었던 ‘문화역서울 284 RTO’의 공간을 십분 활용했다. 주제의 한 부분인 문(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작품의 처음에서 시내 밖으로 난 ‘284 RTO’의 창문을 열었고, 끝나면서 다시 열었다. 흥미로웠다. 효과적인 공간활용(Site-specific Dance)이기도 했다.
본래의 살풀이가 흰 치마, 저고리에 가볍고 부드러운 긴, 흰 수건을 들고 추는 대신 ‘붉은 살풀이’는 특별히 디자인한 검정 치마, 저고리에 붉은 수건을 들고 추었다. 살풀이의 특징인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의 움직임 대신, ‘붉은 살풀이’는 폭이 크고, 빠르고, 역동적인 춤사위를 구사했다.
안무자이자 출연 무용수인 정소연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가슴 속에 불덩이를 지닌 듯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 났다. 붉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춤을 추기도 했고 격정적으로 도약을 구사했다. 춤에 몰입한 다음, 에너지가 분출해 춤으로는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악사의 장구를 빼앗기도 했다.
작품은 ‘01_프롤로그’, ‘02_선택의 문’, ‘03_문의 끝 arari: 붉은 살풀이’, ‘04_관계의 이면: 불안’, ‘05_에필로그: 다시 선택의 문 앞에서’의 다섯 장으로 이루어졌다. 정소연과 또 한 명의 무용수인 박지은은 앙상블을 이루며 도발적이고 위험스러운 실험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갔다.
<깊은 문_arari>는 ‘오늘의 한국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면서 한국창작춤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국악의 생음악을 대폭 활용한 점, 아리랑과 아라리의 등장, 작품은 실험이면서도 우리의 전통에 닿아 있었다. <깊은 문_arari>는 한국창작춤의 또다른 확장이었고 작은 규모의 ‘국악 뮤지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