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을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신진 안무가들을 발굴하여 본선 수상자들에게 해외 안무가들과의 커넥션, 협업을 지원해 온 서울댄스컬렉션이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부대행사로 열리고 있는 올해 경연 무대에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9개 작품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0월 16일에는 박재영의 <살아있는 (生)>, 심주영의 <초롱불>, 김환희의 <몬스터>가 무대에 올랐다. 매일 매일의 살아있는 느낌을 다루고 싶었다는 박재영의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청진기처럼 몸에 전선을 부착하여 움직임을 소리로 변환하는 기법이 사용되어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악기 대신 일상의 물체를 통해 효과음을 내는 것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는 방식도 흔해진 만큼 재미와 효과를 느낄 수 없었다. 대신 남성무용수 두 명이 유도나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동작으로 업어 메치고, 서로를 잡아끄는 움직임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심주영의 <초롱불>은 무용수 세 명이 한 덩어리로 결합된 조형의 아름다움, 몸을 칠 때 튕기는 소리가 반주로 사용된 장구의 텅그르르한 메아리와 맞아 떨어지도록 배치한 운율 감각, 간결하게 톡 떨어뜨린 승무의 향기 등이 돋보였다. 하지만 안무가가 현대의 허상이나 표상을 다루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넥타이나 선글라스 등은 위에서 열거한 가치들과 그 대척점에 놓이기엔 상징성이 빈약해 보였다.
김환희가 안무한 <몬스터>는 모처럼 자기주장과 색깔이 확실하게 똘똘 뭉친 강렬한 작품이었다. 콩쥐팥쥐, 개구리 왕자, 신데렐라 등의 옛날얘기를 엉뚱하게 조합해 시사적인 이슈에 묶어 ‘악’에 대한 사유로 전개해나가는데 한 사람은 대사와 함께 소품(책상)을 굴려 연극으로, 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안무로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조직적으로 설계된 동작들이 어색함 없이 매끈하게 연결되는 것이 장점이었다. 시원스럽고 개성 있는 스타일에 주제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가미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10월 17일엔 김지욱의 〈Shock〉, 김동민의 <어른에게>, 전흥렬의 <지미와 잭>이 공연되었다. 김지욱의 〈Shock〉은 새(올빼미나 닭?)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흰 탈을 뒤집어 쓴 세 명 여성 무용수의 고된 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짐작하기 어려운 불친절한 공연이었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는 충격의 순간, 전후의 변화가 눈에 뜨일 정도로 보였어야 하는데 안무는 탈의 존재감과 무게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 듯 했다.
김동민의 <어른에게>는 현대 사회 속 겉치장에만 신경 쓴 나머지 내면이 황폐해진 어른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 다른 안무가들이 예사롭게 보아 넘긴 극장 뒤편의 벽과 기둥을 안무의 중요 요소로 끌어들인 점이 칭찬할 만하다. 남성 댄서의 등에 올라 누운 채 다리로 벽을 거슬러 오르는 동작 등 초반의 연출은 경쟁 사회의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안무가가 진정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서정적인 안무는 흡족할 만큼 제시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전흥렬의 <지미와 잭>은 무거운 주제 의식으로 흐르는 서울댄스컬렉션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덤 앤 더머 류의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복고풍 가발, 화려하게 촌스러운 레깅스 차림의 두 남자가 나와 벌이는 유쾌하고 유연한 춤과 소동은 관객에게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나 바지를 벗어 엉덩이를 그대로 노출한다던지, 서로의 성기를 툭툭 건드리는 동작이 반복된 것은 그저 웃어넘기기엔 당혹스럽고 과하게 느껴졌다. 관객에게 인물들의 ‘도가 지나친 행동’들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지 관용을 시험하려 든 것이 아니라면, 표현의 수위에 대해서는 고민을 거듭하면 좋겠다.
10월 18일에는 김봉수의 〈Consequence〉, 안지형의 <해(咍)탈>, 김병규의 <의견 대립>이 무대에 올랐다.
김봉수의 작품은 ‘필연, 인과 관계’라는 거대한 주제를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변환하려 했으나, 두 춤꾼이 두르고 있던 노란 전선이 배배 꼬인 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욕심이 컸다. 세월호 사고에서 시작한 생각의 실마리를 스스로 정돈하지 못한 채 자꾸만 연극적인 퍼포먼스로 가져간 탓에 춤다운 춤은 구경하지도 못한 채 공연이 끝났다.
음향 담당자가 굳이 무대에 나와 있을 필요도 없었는데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있고 두 춤꾼이 무의미하게 서 있는 장면도 종종 발견되어 경연 무대를 대하는 기본적인 생각을 되묻고 싶어졌다. 차라리 초반에 노란 전선을 위아래로 흔들어 심장박동 그래프, 생명선에 대한 이미지를 끌고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동작을 개발하고 구성하는데 주력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안지형의 <해(咍)탈>은 하회탈이 가진 정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을 발전시켜 모처럼 춤 자체에 집중한 노력이 돋보이는 성실한 작품이었다. 탈놀이뿐만 아니라 지신밟기, 사자놀음 등을 연상시키는 전통연희의 요소들이 현대적인 안무 속에 녹아든 것을 꼽아보는 재미도 있었으며 특히 안지형과 짝을 이룬 김혜진의 야무지고 맵시 있는 춤집이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눌려 있는 역할이었던 안지형의 춤이 좀 더 터져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만하면 춤이, 질긴 이승살이를 너끈히 견뎌낼 만한 무엇이 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댄스컬렉션 전체를 통틀어 한 편의 작품으로서 가장 독립적이고 완결미를 갖추었다고 보았다.
김병규의 <의견 대립>은 남녀 두 사람씩 매치시켜 주로 ‘취향의 차이’를 시각화하면서 주제를 제시했다. 이를테면 두 커플의 옷차림이나 춤은 사람들이 예전부터 농담 삼아 강북 스타일/ 강남 스타일로 구별했던 것들을 연상케 했다.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부딪힘을 몇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관객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했지만, 역시 웃음 포인트를 만드느라 주의가 산만해진 부분이 있고 그만큼 춤의 구성은 약했던 것이 단점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올해 서울댄스컬렉션 출품작들은 본선에 오르기까지의 경합이 과연 치열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드물었다.
20분 전후 길이로 안무된 작품들은 주로 삶과 사회, 인간관계에 대해 젊은 안무가들이 느끼는 문제의식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런 관심과 접근은 젊은 안무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경향이지만 한편으로 포커스를 조밀하게 좁히고 줌 인 하여 자신에게 가까운 대상과 이야기로 풀어내었더라면 훨씬 생동감 있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를 자극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진득하게 탐구하여 무대 위에, 특히 소품을 통해 형상화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리플렛에 소개된 제목과 안무 의도를 추적하여 매치하기 어려울 만큼 심히 변형된 작품도 있었고, 거창한 도입에 비해 전개하다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추상적인 주제를 작품으로 다루기엔 뒷심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 작품도 다수였다.
한편으론 신진 안무가들의 경연인 만큼 신선한, 허를 찌르는 음악 선곡 감성도 기대하였으나 그런 면에서도 답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