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던테이블의 첫 번째 정기공연 ‘뉴 발란스’(9월 19일, LIG아트홀·강남)에는 2개의 신작이 선보였다.
외부 초청 안무가인 최명현의 <회색인간>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직관을 움직임만으로 유연하게 이끌어 내었고, 이정인의 <팝니다>는 성소수자의 인권유린에 대한 현실을 처연한 춤으로 담아내었다.
<회색인간>의 첫 장면은 얼윈 니콜라이 <누메논>(1953)을 연상시키는 의상으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의 생명체를 표현한 듯, 춤꾼들은 상체와 얼굴을 하나의 덩어리로 형상화된 채로 공간을 탐색한다.
조심스레 얼굴을 드러낸 춤꾼들은 ‘앎’이전의 상태 즉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인 원초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춤꾼들은 네발 달린 형상에서 직립 보행으로 그리고 온전한 지성체로 발전하는 인류 진화도표를 펼쳐놓는 흐름으로 서전을 장식하였다. 스멀스멀 제 각기 공간을 누비는 시간이 경과한 뒤 무대 한켠에서 ‘앎’이라는 이미지로서 본성에서 이성적 사유로 변화되는 고리이자, ‘앎’을 통해 인간의 가치관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요인을 상징하는 ‘빛’이 밝혀진다.
‘빛’의 등장이후 춤꾼들은 자신과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충돌의 의미로 움직임의 폭을 크게 하였다. 그러나 안무가가 의도한 만큼의 극명한 변화는 춤꾼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강조한 마지막 장면에서야 알아 챌 수 있었다. 이 마지막 한 컷은 고착(固着)된 인간의 생각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반성적 판단으로 해석되었다.
최명현은 플라톤의 「국가론」중 ‘동굴의 비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작품에서 동굴에 갇힌 우리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획득한 사고로만 판단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사실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가득한 왜곡된 현실(현상계)은 아닌지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회색인간>의 장점은 인류사의 궤도로 이미지화하여 ‘인식’ ‘자각’ ‘현상’같은 추상적인 용어를 대담하게 펼쳐놓은 점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듯 하지만 몸의 이미지로 단순하게 맥을 짚어내는 효과적인 선택이라 보인다. 중요한 전환점인 작품 중반부 ‘빛’의 발견 이후의 전개가 전반부와 별다른 차이를 드러내지 않은 면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는 오히려 전체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최명현은 형이상학적인 사유와 몸의 연결고리를 춤으로 구성해내는 감각이 돋보였고, 다음무대에서는 인식의 동굴을 뛰쳐나와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고요하게 마무리된 첫 작품과는 달리 이정인의 <팝니다>는 왁자지껄하게 시작하였다. 한태준의 발랄하고 능청스런 연기는 성을 파는 현장으로 관객을 유도하였다.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가벼운 몸놀림은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2010년 그리스에서 초연되었고, 실내무대극으로 새롭게 연출된 <팝니다>는 기승전결 구조가 탄탄해 내러티브와 주제가 명쾌하게 표현되었기에 관객과 공감하는데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
내용을 되짚어보면, 세 부류의 남성이 등장하여 정도는 다르지만 장난과 욕망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 성을 가지고 노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낸다. 다리를 주저 없이 벌리거나 무기력하게 몸을 맡기는 움직임이 노골적이다. 판소리 <춘향가>중 “자진 사랑가”를 반복하며 세 부류의 성적 놀이는 절도 있는 동작들이 반복, 중첩되어 성피해자의 만성이 된 삶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체리 열매는 터지고 짓밟혀 한태준에 몸에 붉게 뭍어나 이렇게 스며든 붉은 빛은 혈흔으로 비치며 피해자들의 짓밟힌 인권과 그들의 내적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중심에 서있는 한태준의 춤과 연기는 희극적인 요소와 처연한 심연의 정서를 대조적으로 극대화 시킨 주목할 만한 연기였다.
모던테이블의 공연에서 최명현과 이정인은 감각적 몸짓과 명쾌한 주제의식으로 작품을 풀어내었다. 두 사람의 안무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춤으로 조명할 수 있는 정서적 측면과 사회적 시선을 영리하게 조합하여 설득력 있게 부각 시킨 점이다. 이는 모던테이블이 감각적이고 재기발랄한 <다크니스 품바>(2007), 내적 사유와 표현에 집중하고자 방향성을 바꾼 <웃음>(2014)이후 주변으로 시선을 옮겨 인성에 대한 가치를 ‘뉴 발란스’(새로운 균형)를 통해 보이고자 하는 시도로, 첫 단추는 잘 꿰어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