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난히 공연이 넘쳐난 9월 춤계에서 부산에 베이스를 둔 정신혜무용단의 공연(9월 19-20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평자 19일 공연관람)은 이미 초연된 두 개의 작품을 묶어 창작춤 레퍼토리란 이름으로 서울 무대에서 다시 선보인다는 점에서, 서정춤세상(예술감독 이미희)의 공연(9월 25-26일,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평자 26일 공연관람)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공모 선정작으로, 초연 작품을 단체 단독으로 공연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지나치게 넘쳐서 빛바랜 <소나기> & <굿 ‧ Good>
정신혜가 안무한 <소나기>는 황순원의 동명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만남과 헤어짐, 유년시절의 순수한 동심이 담겨진 원작의 내용은 한국적인 서정성과도 자연스럽게 맥이 닿고 이런 점은 전통과 신무용 계통의 춤을 두루 섭렵한 안무자의 춤 이력을 비추어 볼 때 정갈한 한편의 창작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무용수들의 느린 팔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살아난 초반부 군무는 이런 평자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으나 이내 20여 명에 이르는 무용수들이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고, 커다란 장치와 거칠게 바닥으로 투사되는 현란한 조명과 영상 등 전체적으로 너무 빠른 템포로 변환되는 비주얼한 전환이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점점 혼미스러워 졌다.
주인공(한예리)의 독무는 그녀가 갖고 있는 신체의 유연성이나 뛰어난 감정 표현 등이 무대를 장악할 만큼 충분히 흡입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러한 캐릭터는 무대 위에서의 과잉 보여주기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었으나 30여분 내내 거의 무대에서 떠나지 않는 지나친 점유로 인해 오히려 그 열연 자체가 빛이 바래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명은 너무 세분되어 자주 변했고, 전자음악의 과다한 사운드, 극장의 상하 공간을 모두 차지해버린 무대미술 등은 주인공의 소박한 정서가 빚어낼 수 있는 순백미, 여백의 정서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 가버렸다.
안무자에 의해 조율된 군무 무용수들의 춤사위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속도감 있는 앙상블은 그 자체로 즐길만한 것이었으나 그 춤들이 때로는 절제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넘쳐나 조명 음악 의상 무대미술 등과 농밀하게 조화되지 못한 아쉬움은 두 번째 작품 <굿 ‧ Good>에서도 이어졌다.
<소나기>에서 춤의 중심에 여성 솔로춤을 배치한 안무가는 <굿 ‧ Good>에서는 남성무용수들을 한껏 활용했다. 여기에 바이올린 등 현악기와 무당의 주술이 뒤섞인 굿 음악이 매칭되고 파랑 빨강 노랑 등 오방색으로 치장된 사각형의 움직이는 벽(무대미술)이 주는 시각적 강렬함은 현대판 굿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나레이션을 곁들이고 현란한 무대미술과 동서양 음악의 교합을 염두에 둔 제작진들의 컨셉트는 일견 신선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굿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늘 보아왔던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가 무대를 잠식하면서 제작진들이 표방한 현대판 굿이 갖는 놀이성, 즐거운 해탈의 의미는 상실되어 버렸다.
“굿은 아름답다”며 계속 반복되는 나레이션은 오히려 후반부에 가서는 춤의 몰입 자체를 방해했다. 대북과 여러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퍼포머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벤트적인 행위로 비쳐지면서 반전의 효과도 반감되었다.
두 작품 모두 서울무용제나 전국무용제 등 경연무대의 입상 작품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요소들―많은 무용수에 의한 빠른 군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장치, 현란한 조명의 변화, 전체적으로 스펙터클하게 보이게 하는 연출―을 비교적 충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몸 그 자체에 대한 탐구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다채로움에 지나치게 함몰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굿 ‧ Good>은 서울무용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여기에 <소나기>가 함께 더해진 이 공연은 2013 공연예술창작기금 사후 지원작으로 선정된 공연이란 점에서 레퍼토리화를 표방하고 나선 이날 무대의 미진한 예술적 완성도는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두 작품이 갖는 소재의 차별성만으로도 더블 빌로 묶이는 조합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만큼 편집을 통한 덜어내는 작업과 함께 보다 더 세밀한 연출이 더해진다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구호에 비해 빈약한 융합 <달, 천의 얼굴>
서정춤세상이 공연한 <달, 천의 얼굴>(안무 연출 이미희)은 ‘한국의 문학과 음악, 영상, 로봇이 융합된 스마트한 무용 총체극’을 표방하고 있다.
수많은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는 달을 소재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내세운 데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 민요, 한시 등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콘텐츠를 시대에 맞게 재가공한다’는 제작진들의 컨셉트는 지난 수년 동안 전세계에서 행해져 오고 있는 크로스오버나 퓨전의 단계를 넘는 새로운 작업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이 공연은 여러 면에서 제작진들이 내세운 컨셉트가 무대 위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춤 구성의 틀에서 보더라도 안무나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 모두에서 빈약했다. 접목된 홀로그램이나 로봇의 활용 역시 통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공연내내 움직이는 예술과 새로운 기술은 서로 매칭이 되지 못한 채 각각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존 공연예술계나 춤계에서 영상을 이용한 작업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시도에 비한다면, 해외 무용단이 내한 공연을 통해서나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로봇을 활용한 춤 작업이 보여주는 기술적인 수준, 예술적인 수준과 비교하면 더욱 실망스러웠다.
이즈음 로봇을 활용한 춤 공연은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이 발레 <백조의 호수> 의상을 입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추어 단독 공연을 할 정도로 진화되어 있고(물론 공연예술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위해 조명이나 음향 등에 대한 공조가 곁들여진다), 영상을 활용한 춤 공연은 달의 이미지를 시공을 초월하며 부지기수로 변환시킨다.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지 않는 무용극을 표방했지만 그렇더라도 한 시간을 훨씬 넘어가는 공연을 위해서는 중심인물들의 분명한 캐릭터 설정, 조명 의상 등 비주얼한 것들과의 계산된 매칭이 필요하나 안무나 연출 모두에서 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춤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움직임의 창출 역시 부진하다 보니 춤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지도 없었다.
우리나라 공연예술 축제를 대표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공모를 통한 선정작이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그 위상에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제작진들이 내세운 <달, 천의 얼굴>은 소재나 내세운 컨셉트가 충분히 매력적인 만큼 초연의 실패를 거울삼아 강도 높은 보완작업이 계속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