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자유남성춤작가회 대화모임 지상 중계
춤 전업작가, 위기 시대 자화상을 말하다

“춤계를 떠나련다, 솔직히 밝히자면..” 춤이 아니라도 심신이 이처럼 곤피할지, 춤이 좋아 이왕 들어선 길, 춤을 떨치지 못해 눌러 앉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과장된 소치일까. 지난 늦여름 ‘자유남성춤작가회 대화모임’의 분위기는 그러하였다. “춤계를 떠나련다, 솔직히 말해서...”는 이심전심으로 와닿았고 그 파괴력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우려했던 춤의 위기가 그만큼 가까이서 가시화하고 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대화 모임

 

2008년 초여름 결성된 자유남성춤작가회가 오랜만에 대화 모임을 가졌다. 작가회의 한상근 대표(전 대전시립무용단장)는 이번 모임에서 작가회의 결성 취지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상부상조 정신을 견지하면서 무용인들이 춤에 대해 갈증을 풀어갈 기틀을 마련할 목적으로 작가회를 결성하였다.” 이에 대해 평론가 김태원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무용인들의 상부상조 정신이 참으로 필요한 중에서도 남성 무용인들의 애로가 크다는 호소를 접하고 자유남성춤작가회를 제안한 바 있다.” 


8월 27일 오후 있은 작가회 대화모임은 춤계에 널리 공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렸음에도 다수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반영하였다. 대화모임 현장에 내걸린 현수막은 이런 제목으로 묻고 있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숙재, 한상근, 김태원, 이만주 씨를 비롯 손인영, 이광석, 이해준, 정석순, 장은정, 최경실, 김채원, 이지현, 류석훈, 이영일, 조재혁, 한용훈, 김종석, 성아름, 박희진, 고경희 씨 등이 참석하였다. 

그날 현장 발언부터 들어본다.

정리 김채현_본 협회 공동대표, 무용원 교수
2011. 8. 27. 오후 3시 30분~ 엠극장
자유남성춤작가회 대화모임


이해준(사회ㆍ한양대 교수): 작가는 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업도 해야 하므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 현장 남성 무용인들의 말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자료를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은 현장의 체험을 진솔하게 접수하려는 의도 때문이고 진행도 무순으로 하겠다. 개인적 생활상을 돌이키다 보면 외부에서 해주기를 원하는 것부터 떠올리는 것이 상례이긴 하지만, 자유남성춤작가회가 해야 할 일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사석에서 ‘예술 개나 줘라!’하는 말도 들었다. 아마 그것이 일부 젊은 무용인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닌가 한다. 춤계뿐 아니라 우리 예술계 전반에 어떤 피로감이 쌓이는 징후로 보인다. 이럴수록 상호 소통이 더 귀중해 보이는데, 참석자들의 나름 진단을 듣고 싶다.

한상근(자유남성춤작가회 대표): 작가회 대표로서 참석자들께 감사의 말씀부터 드리겠다. 춤 사회에 상부상조하는 풍토 조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 풍토가 부재한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고, 다만 서로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더불어 나누는 협력적 분위기를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 나이가 좀 있다 보니 주변에서 춤으로만 살기는 힘들다고 하소연들을 자주 듣는다. 어떡하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가. 설령 지원금을 받아도 어려워 심적으로 방황하는 실정이 아닌가. 특히 남성들 입장에서 그렇다고 봐야 한다. 엠극장에서 젊은이들을 매우 자주 접촉하고 지켜봐온 이숙재 대표의 제안을 받고 이번 대화 모임을 열게 되었다. 직업 무용단에 30년 재직한 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작가라면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가 주관심사이겠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다른 문제들과 뒤섞인다. 작가로서 물질 만능 시대를 살아날 길은 무엇인가, 그리고 남성 여성을 구분한다면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래서 나로선 성별 구분 없이 자유춤작가회라 할까 명칭을 바꿔 이런 모임체로 서로 단합할 것을 더 절실히 느낀다. 작가로서 자유 정신을 견지하려면 현실이 어느 정도는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현실을 해결하는 데 서로 힘을 모으자는 뜻이다. 오늘 이야기되는 것이 이심전심으로 새로운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영일(프리랜서 춤 작가): 개인적으로 콩쿨 상위 입상도 하고 군 면제도 받는 등 혜택도 많이 받았다. 무용수로서 많은 활동을 해왔고 또 동료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입장이다. 지원이 조금만 더 따르면 나아질 좋은 무용단이 많다. 그런데, 이 무용단들에게 외람되지만 무용단을 해서 끝이 있는가 묻고 싶다. 법인도 만들고 사회 환원도 하고 창작도 하는 이런 모습들은 지금도 더러 시도되지만 우리들의 미래 보편적 자화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런 활동의 끝은 무엇일까 하는 내 개인적 의문은 있고, 아니 솔직한 현장 체험의 물음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본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어도 사람을 대할 때 벽이 쳐지는 것이 편치는 않은 경우가 있고, 이럴 때 내가,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게 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까 자유롭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프리랜서로서 많이 공연해왔지만 금전 관계가 명쾌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번 출연에 가령 2백만원을 받아도 경비 제하면 여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내가 그런 개런티를 주장함으로써, 한때 개인적으로 손가락질 받는다는 부담도 들었지만, 춤계에서 그만한 액수 이상으로 출연료가 관행으로 정착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 회당 2백만원도 사람에 따라서는 적다. 왜냐면 단발적 활동이 창조적으로 재생산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활동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묻는 것이 현장의 일상적 체험이 아닌가 한다. 3분법이 무너진 상황에서 아직도 3분법에 집착하는 이도 있고... 무용인의 자유로움을 위해선 춤계에서 자기 본분을 지키며 자제하는 분위기도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이광석(춤 작가ㆍ댄스 그룹 대표): 올해 40대 중반인데... 직장인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에게서 나이 50이 되기 전에 기반을 잡지 않으면 힘들어지니 대비하라는 충고를 듣곤 한다. 이전에 개인적으로 1억원을 지원받았어도 3개월에 27회 공연하고 나자 나 한테 남는 것은 1, 2백만원에 불과하더라. 지원금 1천만원을 받아도 후원을 얻기 어렵고, 다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깜깜할 것이다. 춤을 그만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고민들은 일상적일 것이다.


류석훈(춤 작가ㆍ바디무용단 대표): 나 역시 고민이 없지 않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위치와 자유를 생각한다. 내가 주저앉으면 후배들에게서 꿈이 사라지는 것 같아 춤 작업을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스럽다. 물론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일 것이다. 아직도 그 열정은 있으나 보험금 내고 월세 내고 뭐 하고 나면 어렵다는 것이 주변의 하소연이다. 우리는 낀 세대이다. 이런 세대의 특수성을 잘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특히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고, 그런 면에서 갈등이 많다. 물론 자기 책임도 있을 것이다. 무용수들 간의 자긍심, 자기 자긍심이 사라져가는 것은 특히 안타까운 일이다.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너무 이끌리는 무대를 떠날 수도 없다. 아무튼 자긍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좋은 것을 따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영일: 영악한 사람은 30살 되면 춤을 딱 그만 두고 무용학원을 운영하는 길을 택한다. 학교에서도 춤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학원을 선호한다. 춤추는 여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남자가 춤추는 남자라는 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김태원(비평가ㆍ공연과리뷰 편집인): 춤계는 전례없는 불황이자 위기를 맞고 있다. 엠극장에서 지난 4, 5년 사이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며, 평론가 입장에서 작품 생산을 우선 양적으로 평론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도 있다. 오늘 모임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몇 가지 차원에서 언급해볼 바가 있다. 먼저 제도적 차원에서 작가들에게 실제 지원되는 기금이나 보조금이 오히려 삭감되지 않았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나로선 공공 기금 삭감 원인으로 공연 관련 공공 기관 같은 중간 기구와 기획 행사들이 많이 신설되어 예산이 그쪽으로 빠져나간 점을 꼽겠다. 이전에 비해 예술 현장에 대한 직접 지원이 줄었으되 언론이나 평론에서는 대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현재 제도가 탈바꿈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할 사람들에게 지원을 유보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그리고 춤의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예술에 비해 몸 관리의 비중이 높은 춤의 제약으로 인해 무용인들 간의 인간 관계 및 여타 활동이 협소해지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작가들이 서로 결집해서 활동할 여유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솔직히 우리는 춤을 낭만적으로 하는 시대에 머물러 있는데,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갑자기 뒤바뀌고 있다. 언제까지 낭만주의가 통할지 의문이다. 나는 자유춤작가회로 명칭을 변경하는 데 찬동한다.

김채현(비평가ㆍ무용원 교수): 지금 정책이 편향되게 흐르므로 지원 제도가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이다. 현정부의 문화정책 기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난 몇 해 춤 시책들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춤뿐만 아니라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을 정책 유관 기관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작은 정책이나 인물 선정에서마저 춤계의 공론이 제대로 조성되지도 반영되지도 않고 있다. 이 말을 정책 집행이 그만큼 가려져 있다는 지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금의 지원제도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지원 목표부터 불투명하다. 아주 부분적이겠지만, 듣건대는 지원 예산을 수십명 신청자들의 수대로 균등 배분해버린 해괴망측한 일도 있지 않았는가. 이런 무책임한 일은 응당 밝혀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런 일들이 작가들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예술의 위기를 가중시킨다고 생각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개인의 물리적 경제력에 치우쳐 판단하기 일쑤인데, 신자유주의의 맹점을 가급적 줄여야 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그리고 예술 지원을 복지 차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크고, 이를 타개하는 움직임에서 자유춤작가회와 같은 명칭으로 쾌히 변신해서 적극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현장에서 춤을 붙잡고 애쓰는 무용인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해준: 그렇다, 좋은 일은 나누고 힘든 일은 나누어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상호 소통 절실해지고 현실적 문제를 힘모아 풀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삶과 제도와 인식이 상생하는 길을 찾으면서 여성들도 동참하는 방안 고려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성별 구분 없이 상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춤추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고 싶다. 후배들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소모품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자탄이 많은 줄로 안다. 뼈아픈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그들은 아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의 모습을 다시 그리면서, 몇 분의 속내를 더 듣고 싶다. 

김종덕(춤 작가ㆍ목무용단 대표): 이유가 어디 있든 과연 춤계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그런 시점이 벌써 왔었다. 과거에는 지원금 의존도가 낮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바람직스런 반면에 인재 육성이나 인큐베이팅 측면에서 우려스런 점도 있다. 그래도 관객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다시 채비해야 할 것이다.

손인영(춤 작가ㆍ나우무용단 대표): 제 나이 50이다. 걱정이 되는 한편으로 끝이 안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몸에 축적되는 자산은 있으나 어떤 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나에게 남는 것이 뭘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없지 않다. 우리 세대가 몸이 변하는 나이라는 것은 무용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시기일 것이고, 남성들은 가장이라 그 불안감은 오죽 하겠는가. 나조차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전업작가의 생활이 가능한 사회여야 하고, 어떤 돌파구가 열려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상근: 무용인들이 서로 배려하며 윈윈하는 풍토를 스스로 조성하는 주체적 활동이 한 가지 해결책일 듯하다. 바깥을 향해 주장하는 동시에 내부에서 결속하는 노력도 그만큼 필요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럴 수 있는 마음들을 확인한 것 같아 자유남성춤작가회의 향방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태원: 신설된 어떤 기관이 제대로 하려면 10년이 걸리겠는데, 그런데도 지난 몇 해 한창 활동한 무용인들은 중년을 내다보며 나이가 들고 있다. 향후 4, 5년간 좋은 콘텐츠 생산하기가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싶은데, 일테면 춤 창작계의 노령화 현상에 정책 기구들이 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 왕성하게 활동할 사람들에게 지원을 줄이거나 유보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공연을 활성화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춤계 생존 및 창작의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중심으로 제도적으로 큰 탈바꿈을 할 때이다. 이런 점을 중심으로 춤꾼들이 결집해서 사회적 개선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대화 모임에서 주목할 것은 춤계의 솔직한 현장 발언이다. 그런데 앞에서 번연히 벌어지는 위기를 두 손으로 가린다고 위기가 없어질까. 대학권 춤 학과들의 정원 미달은 흔한 소식이 되었고, 심지어 수도권 예술계 고교마저 정원 미달이라 들린다. 듣기 싫은 소식에 귀 막을 수는 있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춤의 힘이 비록 마법에 비견될지라도 현실은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는 일이겠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이날 대화 모임에서 이구동성으로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춤 예술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상부상조 정신은 그 과정으로서 매우 소중해 보인다. 상부상조의 정신을 지원 기구는 공개주의 정신에 바탕으을 두고 민주적․합리적 배분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고, 춤작가들의 조직체는 무용인들의 단합을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실토되었듯 춤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감은 많은 것을 함축하는 말로 들린다. 무용인들이 바라는 끝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유에 다다르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춤계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현재의 위기가 쓰나미가 될지 일과성 태풍이 될지 여부는 무엇보다 위기에 대응하는 내부 역량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대화 모임은 분명 춤계 위기를 직시하고 현장 무용인들의 속내를 솔직히 공론화한 드문 행사로 기억될 것이다. 다수 무용인들이 자유남성춤작가회가 그간의 잠행(潛行)을 기반으로 적극 행보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11. 11.
사진제공_한용훈ㆍ김종석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