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소멸과 생성의 극점(極點)으로 은유된 몸
김영순과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의 <히어 나우 소우 롱>, <숯>
김혜라

 

 

 

 뉴욕 현대춤 축제인 덤보 페스티벌(Dumbo Dance Festival)의 기획자로 더욱 알려진 안무가 김영순이 서울 아르코 예술극장, 광주 빛고을 페스티발 공연에 이어 2012년 6월 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히어 나우 소우 롱, HERE NOW SO LONG>과 <숯, SSOOT>이란 작품을 선보였다. 장르간 협업과 퍼포먼스가 강조된 두 작품은 자연스레 흘러가는 감정과 찰나적 시간이 무대에서 의미 있는 형상으로 각인되기에 충분하였다. 김영순은 삶을 꾸려가는 자기성찰의 모습을 작품에서 진솔하게 선보였다.

 


 

무형(無形)적인 시간의 존재감,  <히어 나우 소우 롱, HERE NOW SO LONG>


 



 미학자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분명한 의미는 단순히 지금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종잡을 수 없는 현대예술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어떻게 보면 현대 예술의 의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엇에 대한 생성적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철학적 물음을 유도하는 김영순의 첫 번째 작품 은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춤 공연에서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지 명확한 무엇으로 인지되지 않는데, 에서는 인간 내면의 갈등, 스쳐지나가는 감정의 흔적이 영상에 연속적으로 투사되면서 관객들에게 무심하게 지나온 일상적인 시간의 생성적 의미를 발견하기를 열어 놓고 있다는 생각이다.


 

 

 본 작품에서 시간을 각인시키는 몇 가지 요소로는 영상 편집, 오브제의 활용 그리고 라이브 연주 행위의 협업을 통해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지나온 시간에 중점을 둔 영상 편집으로, 관객은 무대에서 실연되고 있는 춤과 동시에 바로 전에 실연된 춤이 한 컷씩 순차적으로 영상에 투사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장면이 무대에서 반복될수록 춤꾼의 감정과 찰나적인 모습이 중첩되어 하나의 파노라마 같은 이미지를 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퍼포먼스적 현장감을 강조하며 현재 시간을 강조한 설정이다. 무대 중앙에 카메라가 설치되고 그 카메라에 투사된 춤꾼의 모습은 마치 엑스레이에 스캔된 그림자 형상을 띄고 있다. 이 연속적인 형상은 춤꾼보다 살아있는 생물체가 움직이는 에너지만을 인지하게 되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무형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시간이 무대에서는 변화하는 삶의 실체로서 생동적인 유형(有形)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안무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이 늘 과거의 일과 미래의 올 일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신문지와 화분 두 오브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처음 등장부터 춤꾼들은 일렬로 서서 신문을 읽다 갑자기 구겨 버리는 일상적 행위를 반복한다. 점점 무대는 춤보다는 신문지 구기는 소리, 악보 보면대를 두드리는 비일상적 연주가 두드러진다. 춤꾼들의 행위는 구겨진 신문지 더미에 둘러쌓인 무질서한 무대에서 무감한 일상과 쓰레기 같은 혼란스러운 현실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화분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보이는 좋은 촉매제로서, 혼란스럽게 춤추던 춤꾼들은 하나 둘 화분에 얼굴을 파뭍으며 작품이 마무리 된다. 이로 인해 무미건조했던 전체 분위기는 초록색 화초를 통해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 즉, 숨과 쉼을 희망하는 모습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었다. 요약하면, 에서 김영순은 무감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형상화하여 의미있는 무엇을 발견해가는 일상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도의 긴장감이 품고 있는 내적 고요, <숲, SSOOT>

 뒤이은 두 번째 작품 은 2007년 뉴욕 DTW(Dance Theater Workshop)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숯의 질긴 생명력을 제재로 하고 있다. 무대 천장에서 내려뜨려진 천은 생명의 줄이며 동시에 생명을 소생시키는 길을 묘사하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춤꾼의 몸과 천이 감기고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몸의 표현 의지가 천까지 전이되는 효과를 준다. 작품 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천에 매달려 있는 춤꾼들의 몸인데, 어떤 동작보다 근육의 힘에 기대어 안간힘을 쓰는 몸쓰임이 그렇다. 마치 서커스를 보듯 관객은 공중 줄에 매달린 춤꾼 몸의 긴장이 더해질수록 생명의 극점(極點)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를 감지하게 된다. 

 줄에 매달린 춤꾼들의 몸짓은 절박해 보이나 반면 서정적인 군무진의 분위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발버둥치는 오리의 수면 위아래의 모습인양 이중적인 미감이 안무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동작구성이나 기법적 한계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을 관망하는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무대에서 안무자의 내면적인 색깔이 뭍어나 내적 평온함은 느낄 수 있다. 특히 안무가의 솔로 춤을 통해서 서정성은 더욱 짙어지는데, 안무가 자신의 삶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을 숯에 투영시켜 승화하려는 예술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안무가는 숯의 속성에 은유적 해석을 보태 춤으로 풀어낸 것이다. 숯이라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동양의 순환론(循環論)적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나아가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이 영원 회귀되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관을 긍정적으로 투영시켜 작품을 풀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노에마(noema)와 도식적 움직임의 조합

 반면 김영순의 작품에서 움직임 조합과 전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들어 2인무, 3인무 다음 군무의 조합으로 예측되는 형태변화는 전체 춤이 품고 있는 의미 읽기에 방해가 되었다. 마치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방식 아니면 제한적인 동작기법의 빈곤한 느낌이랄까... 이런점 때문인지 및 에서는 안무가의 춤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는 달리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고 세련미가 없는 원인이 제공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춤에서 의미 없는 테크닉과 도식적 전개는 전체작품의 생성적 의미와 춤만의 독특한 힘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됨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현대 춤은 끊임없이 새로운 춤언어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해야하는 생태적 속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때론 지나치게 주관적거나 난해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불편한 꺼리를 그려내기도 한다. 더불어 빈번한 타장르와 협업에서 보이는 춤무대는 시공간 확장의 효과에 힘입어 더욱 몸의 한계를 능가하는 춤어휘를 보여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오히려 창작적 기폭제가 되어 춤 표현영역을 넓히는데 많은 성과도 내고 있으나 철학적 사유가 부재한 춤과 예술이 과연 관객에게 어떠한 화두를 건낼 수 있을 것인가? 한 시간 남짓 동안 삶을 반추하는 무게감은 아니지만 덜 세련된 무대일지라도 잠재된 시간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김영순의 무대도 나쁘진 않을 듯 싶다. 결론적으로 김영순의 두 작품은 생산적인 생명성에 대한 형이상적 노에마(noema 사유작용)가 전체적으로 잘 투영되었다.

2012. 10.
사진제공_연합뉴스, 김영순댄스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