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표지인물 인터뷰_ 2014 춤비평가상 작품상 수상 안무가 김보람
춤출 때 내면의 나와 가장 비슷한 존재를 만난다

애매모호한무용단이 10월 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 김보람 안무의 <인간의 리듬>이 2014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춤비평가상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김보람은 2월 요코하마댄스콜렉션에서 입상한데 이어 8월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전통의 재발명전”에서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한 <어긋난 숭배>를 이은경과 공동안무로 발표했고, 국내 초청공연 외에도 수 차례의 해외공연으로 분주한 한해를 보냈다. (편집자 주)






권옥희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
김보람 몇 년 전에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가상 연기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작품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얼떨떨하다. 감사하다.

<인간의 리듬>은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안무했는가?
현대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시스템에 맞추어 생활한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경쟁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결정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폭이 좁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술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복적이지만 집중해서 살면 예술적일 수 있다. 회사원이 본다면 자신의 삶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의 자부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올해 이 작품은 짧은 버전이 ‘부산국제무용제’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때 공연되었고, 완판 작품은 서울공연예술마켓 기간 중 ‘팜스 초이스’ 공연 때 훨씬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처음 공연 때보다 환경이 달라졌다. 작년(2013년 10월) 초연 때는 잘하려고 긴장하고, 준비도 오래하고, 무대에서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 때에 비해 올해는 그냥 즐기고 편안하게 작업한 것 같다. ‘부산국제무용제’ 때는 클래식(음악) 장만 올렸었다. 덜 익은 상태에서 보다 재공연을 해가면서 보완을 해가니까 좋은 작품이 되는... 그런 시점이었던 것 같다. 방콕에서는 무대 환경 때문에 작품을 바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무용수들이 잘 적응했다.

<인간의 리듬>에서 읽힌 것인데. 위트와 휴먼이 동작에 내재되어있는가 하면, 폭력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는 어떤 부분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의도는?
먼저 음악을 이해하고 만든다. 표현방법을 찾을 때 직설적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직설적으로 안보이게끔 안무한다. 그게 타이밍인 것 같다. 폭력성을, 때로 관객들은 춤으로 안보고 행위로 보기도 한다.

작품에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는 데 더 침잠한 듯 보였다. 말하자면 남자들의 모든 세계, 욕망, 질시와 배척(이유는 제시되지 않았다), 폭력, 동성애 코드까지 있다. 작품에 맞게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춤의 유행을 따른 것인가.
신입사원 장면인데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미생을 예를 들면 된다. 그 작은 집단에 다 있지 않은가. 가끔은 치사하고...그런 것. 멀리서 보면 부질없는 것인데. 그리고 동성애 코드는 <11분>을 할 때 동성애를 다뤘었다. 그 영향이 남아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트랜스 젠더 표현이 작년<11분>에서, 솔로로. 거기서 발전한 것이 올해 작품이다.

 



성의 세속화에 대한 사유를 시종일관 위트와 재기어린 춤으로 풀어낸 <11분>도 그렇고, <어긋난 숭배>에서의 마지막 씬, <인간의 리듬>에서 허리춤에 손을 대고 골반을 튕기는 동작, ‘애매모호한 무용단’이란 이름도 그렇고, 작품 속에 김보람 만의 독특한 위트가 있다. ‘위트’는 김보람을 이루는 주요 코드인 듯. 맞나? 춤에 대한 사유? 혹은 철학이 있다면.

(위트)맞다. 하지만 내 성격자체는 진지한 편이다. 사는 것도 진지하다. 하지만 예술자체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긋난 숭배>는 내년에 큰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내마음속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무대라는 공간은 순수한 것 같다. 계산도 없고, 그 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춤을 출 때 내면의 나와 가장 비슷한 존재를 만난다. 무대는(예술) 자유로운 공간이다.

‘애매모호한무용단’은 일종의 프로젝트무용단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컴퍼니들 보다 국내외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2014년 국내외에서 얼마나 많은 공연을 했는가?
한 20회?, 30회 정도 되는 것 같다.

공연료만으로 단원들의 출연료 지급 등 컴퍼니 운영이 가능한가?
힘들다. 그동안 돈이 안 되는 공연이어도 의도나 뜻이 좋으면 공연을 해왔었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들에게 제대로 출연료 지급을 못할 때가 많다. 무용수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올해 방콕을 갔다 와서 무용수들과 약속을 했다. 내년부터 출연료 지급을 못할 정도면 공연을 잡지 않겠다고.

춤을 잘 춘다. 춤의 어법이 아주 독특하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춤의 선이 아니라 뭐랄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매력이 있다. 왜 무용수가 되었는가?
춤을 좋아했다. 10여 년간 방송댄스, 스트릿댄스를 춰왔고, 현대무용은 안성수선생님과의 작업이 시작이다. 이를 계기로 선생님의 발레 클래스에 참여했다. 이후 김지영 발레리나, 김용걸 선생님과 (안무)작업을 하기도 했다. 춤판에 들어와서의 작업은 6,7년쯤 된다. 모든 춤에 관심이 있다.

 



올해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에서 입상하는 등 해외에서의 활동이 무척 많았다. 어디 어디서 공연했는가?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과 방콕 국제무용페스티벌, 그리고 도쿄 세션하우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요코하마에서는 ‘심사위원 장려상’과 ‘터치 포인트 파운데이션’(Touch point fondation) 이렇게 두 개를 받았다. 원래 심사위원 장려상은 없는 부분이었는데 심사위원들이 의논, 새로 만들어 준 상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터치 포인트 파운데이션’은 내년에 부다페스트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상이다.

내년 공연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는가?
6월에 핀란드 초청공연과 9월에 부다페스트 초청공연은 확정이고, 미국 투어를 할 계획인데, 확정은 아니고 기획자와 진행 중이다.

올해는 안무가로서 김보람이란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 같다. 댄서로서 공연에 출연했을 때와 안무가로서 출연했을 때, 어떤 점에서 다른가?
댄서생활은 지금도 하고 있는데... 댄서로서의 공연이 훨씬 부담스럽다. 안무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안무자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연은 안무자에게 누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무자겸 무용수로의 출연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나 자신이 무용수 생활을 거쳤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다.
생계로 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기 싫은데. 그래서 무용수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적어도 작업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많아질수록 무용수들에게 집중한다.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을 뽑아내고 그것이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인간의 리듬>에서 무용수들의 캐릭터들을 많이 뽑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도움도 받고, 순간순간 생각들이 중요하다. 나 자신, 거기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11분>과 <어긋난 숭배> 그리고 <인간의 리듬> 세 작품, 모두 볼 때마다 신선했다.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준 데 비해 식상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작업을 할 때 창작의 고통이 있는가, 아니면?

음악을 많이 듣는다. 평소에 장르 구분 없이 듣는다. 작업의 첫 번째가 음악이다. 음악선정에만 몇 개월 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음악 없이 춤출 수 있는가(있어야 하지 않나)?
당연하다. 모든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면 음악 없이 춤을 춰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들릴 것이다). 창작의 고통은 많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은 많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냥 진행했다. 지금은 컴다운(come down). 일이 들어와도 되도록 안하려고 한다. 올해는 작업을 안 하려고 했다. ‘부산국제무용제’는 부산이(바다 때문이라 짐작) 좋아서 했다. 의도해서 하려고 했던 작품이 아니었다. 힘을 뺐는데...(결과가 좋았다).

작품마다 수염에 선글라스, 흰색의 드레스셔츠, 검정색 바지에 양말을 신는다. 고집하는 이유? 반복된다면 식상할 수도.
(선글라스로)거의 눈을 가리고 나온다. 처음 의도는, 예전 ‘CJ 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는데, 같이 하는 친구들이 아마추어였다. 눈이 보이는 상태가 되니까. 어설픈 티와 긴장감이 그대로 보였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쓴 것인데 막상 작업을 해보니 감정기복이 배제되어 작품표현에 주효했다. 올해 요코하마 댄스페스티벌에서는 머리에 봉다리(봉지를 “봉다리‘라고. 단어가 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쓴다)를 쓰고 했다. 펜싱마스크. 군인 마스크 등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무대에서 어떤 통속성이 예술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김보람의 춤과 짝을 이룬다고 해야 할까. 북적거림과 고독, 유쾌함과 슬픔, 재미와 실망 등으로. 그리고 성적인 코드는 도발적인 듯, 전혀 도발적이지 않다. 작품에서의 성적 코드에 대한 철학은?
보이는 것을 보지 말고, 보이는 것이 의도하는 것을 봐야 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이루어지는 현실을 보지 말고, 그것이 왜 이루어졌는지를 보는 것. 해서 작품으로 야한 것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보라고, 나 자신과 또 관객에게 주문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두 마음이 있다. 관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작업과 내가 하고 싶은 작업. 내년에는 관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인간의 리듬>으로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더불어 안무를 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찾고 싶다. 앞으로 이 직업을 평생 한다면 좋은 작품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할 것도 같고. 결국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할 듯하다. 작업 이전에 나의 춤에 대한 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당분간 신작은 안하고 싶다.

자신을 믿는가?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한 확신 같은 거.
낯가림이 있다. 사람들이랑 있을 때의 나는, 아직 못 믿겠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의 나 자신은 절대적으로 믿는다. 방송 쪽(방송댄스와 스트릿댄스) 일이 에너지를 뿜어냈다면 (순수)무용 쪽 일은 에너지를 안으로 응축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부터 하던 일이 아니다 보니까, 조심스러웠다. 혼자 춤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무용계에 있지만, 지금 나는 (사회의)시스템에 맞춘 삶과 자유로운 삶, 그 중간에 있다.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한다. 아니라고 생각되면 하지 않는다.

 



끝으로, 학교(제도권 교육)에서 배운 것이 많은가? 춤판에서 출신학교 배경,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잠깐 생각) 많이 배웠다. 김기인 선생님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 춤의 기술보다 춤 자체에 대해 많이 배웠다. 예컨대 본질적으로 춤은 같다는 것 등. 출신학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가)세뇌시키는 것 같다. 주변에 좋은 학벌을 가진 이들이 많다. 해서 잠깐 공부를 더 할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 마음을 돌렸다. 학벌과는 상관없는, 한 명 정도는 선두로 나서서 활동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제는 같이 작업하고 춤추는 친구들에 포커스가 많이 맞춰져 있어서 주변에 신경 안 쓴다. 오로지 무용수들 생활에만 신경 쓴다.

대전까지 내려 와줘서 고마웠다. 진지한 답, 또 감사하다.


 춤의 재능과 아름다운 춤의 몸,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이 춤을 잘 추는 것 그럴 만도 한 일이겠지만, 어눌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간혹 입을 다무는 사람도 좋은 춤을 춘다는 사실.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춤으로 어딘가에 가 닿기 위해 정진하는 춤의 훈련과 용기는, 상상만 하던 것이 김보람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힘들어도 춤을 포기하지 않음의 믿음이고 그것은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5.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