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시애틀 현지취재_ 스펙트럼 댄스시어터의 #RACEish
춤을 통해 ‘사회 이슈’와 소통
장수혜_<춤웹진> 미국 통신원

 무용은 태초부터 인종과 국가를 불문한 인간의 본능적인 신체표현이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2015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첫 흑인 여성무용수, 미스티 코프랜드의 소식이 이슈가 된 이유도 워낙 흑인발레리나는 기회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도 많은 해외무용단출신 무용수 및 안무가들이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은 바 있다.
 파키스탄 인으로 런던에서 활동했던 아크람 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배경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창작주제에도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영국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최근 미국사회는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오스카 시상식의 ‘백인잔치’ 논란, 아직도 풀리지 못한 퍼거슨 사태 등으로 흑인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로 지정된 2월이 요란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적절하게 담아낸 대담한 무용단이 있다.

 

 



 1982년에 설립된 스펙트럼댄스시어터(Spectrum Dance Theater, 이하 SDT)는 현재 안무가 도날드 버드(Donald Byrd)가 예술감독으로 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도널드 버드는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앨빈 에일리 댄스컴퍼니(Alvin Ailey Dance Company)를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무용단에서 다양성, 평등주의, 전쟁, 평화 등 사회의 이슈를 논하는 안무를 해왔고 뮤지컬 〈컬러 퍼플(The Color Purple)〉로 토니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그는 SDT가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인 ‘사회적 소통수단으로서의 무용’을 가장 잘 창작해내는 예술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도널드 버드는 지난해 SDT의 2015/16년 시즌 타이틀인 “#RACEish: 미국의 (실패한) 인종평등사회 240년 (#RACEish: An Exploration of America’s 240 Years of (failed) Race Relations)”을 발표하여 미국에서 최초로 모든 시즌을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기획한 예술감독으로 무용단의 본거지인 워싱턴 주 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5년 뉴욕, 워싱턴DC, 텍사스 투어공연에 이어 2016년 2월부터 6월까지 시애틀 시내에서 계속되는 이번시즌 #RACEish에서는 〈Rambunctious 2.0: A Festival of Music and Dance...Continued(2월 18-21일, Cornish Playhouse, Seattle, Washington)〉, 〈Dance Dance Dance(2월 25-28일, The Moore Theater, Seattle, Washington)〉, 〈A Rap on Race(5월 8-22일, Seattle Repertory Theater)〉, 〈The Minstrel Show Revisited(2월 16-19일, Cornish Playhouse, Seattle, Washington)〉 네 작품이 공연된다.
 시즌에 포함된 작품들은 타이틀에서 보여주듯이 인종차별 및 평등주의, 다양성 등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다. 2016년 첫 공연인 〈Rambunctious 2.0: A Festival of Music and Dance... Continued〉는 미국의 역사적인 작곡가들의 음악에 안무를 한 도날드 버드의 가장 최근 작품 중 하나로 2014년에 처음 선보인 〈Rambunctious〉라는 작품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2014년 시애틀에서 프리미어공연을 했을 당시 클래식 작곡가 티 제이 앤더슨(T.J. Anderson), 그래미어워즈 수상 트럼펫 연주가 윈톤 마살리스(Wynton Marsalis), 미디어 아티스트 파멜라 지(Pamela Z)등 예술적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프리칸-어메리칸 아티스트를 포함하여 조지 거쉬윈(George Gershwin),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 존 존(John Zorn) 등 미국의 역사적인 작곡가들의 음악에 도날드 버드가 안무한 6개의 단편작을 선보였다. 미국의 역사적인 작곡가들을 조명하는 만큼, 당시 공연장소 역시 역사적인 곳으로 선택하여 엄숙한 분위를 더한 바 있었다. 또한 작은 규모의 무용단으로서는 드물게 스트링콰르텟의 라이브연주로 무용계 관객 뿐 아니라, 클래식음악계 관객까지 관심을 가지게 한 작품이다. 지난 해 11월에는 이 공연의 단편작품 중 하나인 〈Septet〉이 뉴욕 구겐하임뮤지엄의 Works & Process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초청공연을 했다.
 이 작품을 본 ‘뉴욕타임즈’ 무용비평가인 알라스테어 매컬리(Alastair Macaulay)는 “음악이란 범위가 존재하는가? 또 그런 음악에 맞춰 추는 무용은 한계가 존재할까?” 라며 호평한 바 있다. 본인이 안무한 오리지널 작품을 재구성하기로 유명한 도날드 버드는 이번 시즌에도 오리지널 작품을 재구성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2월 공연에서도 역시 시애틀 챔버뮤직단체인 심플 메슈어스(Simple Measures)와 피아니스트 주디스 코헨(Judith Cohen)과 함께 할 예정이다.

 

 



 이어 흑인역사의 달 특집으로 처음 공연하는 〈Dance Dance Dance〉는 도널드 버드의 새로운 삼인조 안무로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던 아프리칸 예술과 움직임을 도날드 버드의 현대적인 해석으로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SDT의 대표 러스 스트롬버그(Russ Stromberg)는 서양무용에서 많은 움직임과 양식이 아프리카문화에서 파생되었지만 그 동안 무시되어 왔다며 어쩌면 이 주제가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 “SDT는 무용을 통해 사회이슈에 대해 소통하는 무용단입니다. 물론 자극적이거나 예민한 문제일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입을 열어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사회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공연을 관람할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5월에 공연되는 〈A Rap on Race〉는 미국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연극을 하기 위해 한국어와 스페인어까지 배운 미국배우 안나 데비르 스미스(Anna Deavere Smith)와 협업을 하는 작품이다. 또 6월에 공연되는 〈The Minstrel Show Revisited〉는 도널드 버드의 1991년 작품, 〈The Minstrel Show〉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는 18세기 백인들이 검은 분장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쇼를 이른다. 도널드 버드는 1991년에 브루클린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총을 맞아 사망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안무했다. 그는 이번 시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공민권운동(Civil Right Movement)시대 사람입니다. 그 당시 그 운동이 끝난 뒤에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되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또 다시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차별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민스트럴 쇼 같은 공연에서 표현했던 흑인들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결국 저희를 나쁜 사람들로 만든다는 생각에 굉장히 화가 났었죠. 이런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역사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떨치려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보는 수밖에요. 이런 문제는 어느 국가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날 무용계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려면 역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주의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을 통해 흑인 역사 뿐 아니라 모두가 우리가 무시해오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한 이번 시즌의 타이틀에 대해 설명했다. “#RACEish라는 단어는 인종차별자(Racist)를 뜻하는 새로운 말입니다. 흑인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이에요. 욕설이라기보다는 그냥 부정적인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뜻은 조금씩 다 다르게 쓰이지만 무언가 공평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 이 단어를 쓴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쓸 만한 단어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단어를 보고 사람들이 평등주의에 대해 대화를 꺼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시즌의 타이틀인 #RACEish는 또한 SDT의 소셜 미디어 캠페인으로서 사람들이 사회정의와 관련된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를 올릴 때 해시태그(#)를 사용하도록 홍보하여 미국전역의 인식개선에 힘쓰고 있다.

 

 



 SDT는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들과 학생들이 무용을 공부하며 사회이슈에 대한 대화의 장이 되는 곳이다. 지난 1월 18일 마틴 루터 킹의 날에는 스펙트럼에서 훈련받는 학생들이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는 대신 거리로 나가 인권캠페인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도널드 버드는 이번 시즌에 대해 “RACEish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가슴 아픈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희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는 있어도 답을 드릴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보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바로 SDT가 나아가는 방향입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소셜 미디어에서 #RACEish를 태그한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번시즌 캠페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시즌티켓을 구입해버렸다.(@Karen Bystrom)”, “이런 캠페인은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Bard Learmonth)”라며 포스팅을 올렸다. 사회정의를 위한 도널드 버드의 야심찬 시즌을 기대해본다. 

2016. 02.
사진제공_스펙트럼 댄스시어터(Spectrum Dance Theater)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