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현지취재_ Jerome Bel의 신작 〈갈라(Gala)〉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춤
이선아_재불 안무가

 제롬 벨(Jerôme Bel)이 신작 〈갈라(Gala)〉 공연을 지난해 12월 1일, 파리 떼아뜨르 드 라 빌에서 가졌다.
 내게는 '제롬 벨'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 서서 각자 CD플레이어를 들고 헤드폰에서 들리는 음악에 취해 흥얼거리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제롬 벨의 대표작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의 한 장면이다. 이후 2012년에 발표된 〈장애 극장(Disabled Theater)〉에는 스위스 호라(Hora) 극단의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번 신작 〈갈라〉 역시 출연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녀노소 인종을 불문하고, 장애인, 유명한 사람, 무대에 처음 서 보는 사람,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작품은 포토 슬라이드 쇼로 시작된다. 오페라 극장 부터 노천극장까지 “저런 형태도 극장이라 할 수 있나?” 싶을 만큼의 다양한 극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제롬 벨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스크린이 올라가고 한 사람이 무대로 나와 달력 넘기듯 종이 한 장을 넘긴다. '발레(Ballet)' 라고 쓰여 있다. 첫 번째 미션은 "삐루엣(pirouette)"이다. 무대 위로 한 사람씩 나와 중앙에서 턴을 돌고 들어가면 또 다른 사람이 나와 턴을 돈다. 2-3바퀴를 거뜬히 도는 전문 무용수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이 준비자세만 그럴싸할 뿐 한 바퀴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넘어질듯 겨우 돌았어도 쑥스러워 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턴을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렇게 그랑 쥬떼(grand jeté), 왈츠,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moonwalk)가 이어졌다.
 역시 마찬가지로 20명이 넘는 출연자들이 한 사람씩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보여주고 들어간다. 여기서 삐루엣, 그랑 쥬떼, 왈츠,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무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뽑아낸 것이다.

 

 



 공연을 보고 있다 보니 출연자들이 대충 몇 명이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누가 전문 무용수인지 아닌지, 누가 재미있는 캐릭터인지 또는 수줍어하는지 출연자에 대한 성격이 조금씩 파악됐다.
 그런데 전문 무용수가 나올 때보다 평범한 사람이 나와 준비 자세를 취할 때가 더 시선이 가고 흥미로웠다. 미션 중 “솔로”는 미리 준비해 온 춤을 음악에 맞춰 춘다. 프리 스타일로 자기 개성이 제대로 발휘되는 시간이다. 출연자중 몇 명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춤을 춰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지금 떠올려 봐도 미소가 지어진다.

 

 



 작품 〈갈라〉에서 완벽함이란 중요치 않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판단의 기준도 없다. 의상 역시 아름답거나 추한 기준이 없다. 안무가 제롬 벨은 출연자들에게 새로 옷을 사지 말고, 집에 있는 옷 중 가장 크레이지(crazy)한 옷을 준비해오게 했다.
 마지막 순서는 출연자들이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나온다. 한명이 리더가 되어 앞에서 춤을 추고, 다른 출연자들은 그 춤을 따라한다. 다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다. 어떤 기준으로 누가 리더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절 반 정도만 리더가 된다. 리더는 같은 춤을 2번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뒤에서 따라하는 사람들이 잘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확실한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
 <갈라>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마지막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솔로를 보여준 출연자는 뮤지컬 배우인 듯 표현력이 풍부했다. 뮤지컬 “뉴욕~ 뉴욕~” 음악에 맞춰 능청스런 표정과 몸짓으로 공연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데 여기서 관객을 더 제대로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음악에서 “뉴욕~ 뉴욕~” 부분이 나올 때마다 음악 볼륨을 낮춰 출연자들이 “파리~ 파리~”를 외쳤는데, 몇 번 그 흐름이 반복되자 볼륨이 줄어들을 때쯤 관객들은 알아서 “파리~ 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즐거움 이상의 뜨거운 단결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출연자들의 엔딩 포즈가 나오자 관객들 전원이 기립박수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그때 당시 파리는 아직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파리, 파리”를 따라 불렀는데, 다함께 기립박수를 치고 있을 때는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외국인인 나도 가슴이 찡할 만큼.

 

 



 공연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관객 전원 기립박수가 나올 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날 관객 전원을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위에 언급한 것처럼 테러에 대한 아픔과 연대의식이 그날 발휘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 같고 조카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가장 큰 이유였음을 의심치 않는다.
 제롬 벨은 벌써 또 다른 신작을 준비 중에 있다. 3명의 파리 오페라 무용수와 무용수가 아닌 사람이 함께 듀엣을 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예술 감독 벵자멩 밀피에(Benjamin Millepied)의 신작과 함께 2월 5일,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초연될 예정이다. 

2016.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