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일본 현장 리포트_ 2016 요코하마댄스콜렉션 & TPAM
동시대 춤에 대한 진지한 실천
이지현_춤비평가

 한국 안무가들의 약진, 요코하마댄스컬렉션 2016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요코하마댄스컬렉션 (Yokohama Dance Collection, 이하 YDC)에 한국의 젊은 안무가들이 왕성하게 참가하여 좋은 실적을 내는 흐름이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SPAF의 신인 안무가 발굴 무대인 ‘서울댄스컬렉션’의 수상자를 서로 교류하는 프로그램의 축적과 SCF, SIDance, 그리고 이런 교류에 새롭게 합류한 Simpro(서울국제즉흥춤 페스티벌), CODance(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 2인무 페스티벌 등이 각각의 성격에 맞는 작품들을 요코하마에서 셀렉션을 해오면서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올해의 요코하마댄스컬렉션 (1월 23일 - 2월 14일, Yokohama Red Brick Warehouse)이 이런 흐름에서 한층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YDC의 핵심이 되는 ‘경연 1’ (2월 6-7일)에 지구댄스씨어터의 훌륭한 무용수 정철인이 자신의 첫 작품 〈Free fall – Discovery of Sisyphus〉로 참가한 것 외에도 ‘오프닝 프로그램’ (1월 23-24일)에 정영두(안무, 연출, 출연)와 준코 마루야마(미술감독)의 협업으로 〈Silent flower〉를 필두로 하여, ‘아시안 셀랙션 – 싱가폴’ (2월 10-11일)에 상임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재덕이 퀵쉬분 × T.H.E. company와 작업한 〈Organized Chaos〉, ‘아시안 셀렉션 – 한국’에 김지욱, 리에 타쉬로 공동안무, 출연으로 〈Growling〉 (2월 10-11일)을 각각 공연하면서 YDC의 오프닝부터 굵직한 무대를 우리의 안무가들이 채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우리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보다는 이질성을 갖고 있기에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는 춤에서도 YDC와 한국의 여러 축제의 교류로 인하여 형성된 잦은 접촉에서 서로에 대한 야릇한 거리감과 왕성한 호기심을 현실 접촉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 초청된 젊은 안무가 중심의 일본 소품들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우리나라 작품들 속에서 비교적으로 느꼈던 내밀하고 섬세하게 현실과 사물을 대하고 응하는 조용한 방식은 맥락을 달리하여 이번 YDC의 대부분을 차지한 일본 작품들 속에서 보면서 일본 컨템포러리의 고민과 지점 등 그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었다.
 경연 1과 2를 통해 본 바로, 부토 스타일은 이제는 안정적으로 정돈이 된 듯 많지는 않지만 몇몇 안무가들이 아주 뚜렷하게 계승하여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아이코 오바나, 하루카 마지모토), 정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거나(하루카 와쿠타)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형상화(준페이 하마다)는 분명 부토가 획득한 일본 컨템포러리의 중요한 자산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힙합 베이스의 무용수들과 작품 역시 하나의 스타일로 입지를 갖고 있었다. 단순하게 힙합의 그루브한 맛을 내는 것에 심취한 춤(시아키 구리하라)에서부터, 힙합적 저항성을 현실적 일탈 감성과 연결하여 동물적 야수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게 사용하거나(고이치로 타무라), 무대 위에 오브제(인형, 작은 흙더미, 물뿌리개)를 단선적으로 배치시키는 것으로 새로운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실존의 무게를 힙합으로 살짝 비껴나가는 솜씨를 보여주거나(모토 다타하시), 힙합의 동작언어를 기교와 춤의 활기에서 빼내어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연결시켜 장난스럽게 사용하는 등 다양한 언어와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또한 모던댄스에서 발달한 기교와 감성을 보여주는 무용수들(나나토 시바타, 가오리 이토, 하루카 와타나베)은 무대 위에서 안정성은 있으나 감각이나 감성에서는 그다지 발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일본 컨템포러리 작품들은 실존적 고뇌에 진지한 모습과 동시에 그 안에서 아이같이 되거나 비현실적인 모습으로라도 그들의 꿈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집을 꿋꿋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감정적으로 과격하지 않도록 잘 절제되어 있어 보는 사람 입장에서 활력은 떨어졌으나 차분하게 집중하고 느낄 수 있는 묵직한 분위기를 선물 받았다.
 그 속에서 유일한 한국인 참가자 정철인의 〈Free fall – Discovery of Sisyphus〉은 류지수와 듀엣으로 시지프스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노동의 절망스러운 상황을 움직임으로, 놀이로 즐기는 해석과 사고의 전환을 보여준 작품이다. 정교한 동작의 연결, 두 무용수간의 완벽한 호흡, 잘 훈련된 몸 등은 다른 참가작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었다. 동작 개발을 통하여 서로의 체중을 감당하거나 공중에서 몸을 그대로 편 채로 균형을 잡는 등 체조 같으나 체조보다 훨씬 아름답고 체조에서도 본적이 없는 동작을 만들어 낸 것은 동작에 대한 노력의 증표였다. 후반부에 무게감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수동식 곤충인형의 태엽소리와 움직임은 재치 있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느낄 느림과 휴식이 부족하여 관객이 여백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TPAM 2016, 아시아 예술가들의 당대적 문제와의 접합실험

 YDC와 약간의 시차를 갖고 이어진 TPAM (Performing Art Meeting in Yokohama) (2월 6-14일)은 전체적으로 관람할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요코하마에 가서야 굵직한 한국 작품들이 참가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행사 전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축제들의 마켓화되는 흐름에서 꼿꼿하게 ‘공연예술들의 만남’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동시대 사회와 이슈에 대한 공연예술과의 공유가능성에 대한 모색과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장려로 정체성을 가져가고 있는 이 축제는 3, 4명의 감독들에게 프로그램을 맡기는 시스템인 ‘TPAM Direction’ 부문을 만들고 거기에 일본 유학파이면서 한국에서도 자신만의 색깔로 기획 제작을 하고 있는 고주영 감독이 초대되었다.
 고 감독은 이번에 한국에서 초연된 바 있는 두 작품, 김민정 × 무브먼트 당당의 〈공장의 불빛-극장집회〉 (2월 13-14일/ 2014 서울변방연극제 초연)와 윤한솔 × 그린피그의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데모 버전〉 (2월 10-14일/ 봄페스티벌 2014 초연)을 선택하였다. 일본초연이라는 강조가 붙은 이 작품들은 이 축제의 의도에 잘 부합되는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었는데 국내의 공연계 상황에서 검열과 견제의 대상이 되거나 비평적 무관심속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 예술가의 사회와 예술에 접촉실험이 다른 맥락에서 관점을 분명히 하여 바라보는 것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점점 더 경색되어가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이즈음 상황 속에서 이웃에 이런 축제가 있고, 그것에 출품할 수 있는 감독이 있으며, 그 감독이 극장집회 또는 데모버전이라는 신선한 형식의 작품을 들고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공연예술의 자부심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 동시대 연극 10편’안에 이 두 작품의 작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우리의 관객과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우리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 줄 때 동시대와 공연예술의 공유지점에 대한 모색과 고민이 이어질 것이며, 결국 그것이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쯤에야 동시대 예술이 오락에 머무는 유혹을 떨치고, 제도화의 눈치를 보고 적절한 흉내내기를 멈출 것인가? 언제야 예술이 지금 내 삶의 다급한 주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자기검열하거나 검열 당하지 않고 신선한 시선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인가?




 TPAM Showcase 〈Possible path to Isonomia〉

 또 하나 내가 주목했던 작품은 홍콩 Movement Artist Greenmay의 〈Possible path to Isonomia〉였다. 그가 2012년 만든 Body lab for Priori Tropism(선험적 지향성을 위한 몸연구소)의 제작품으로 co-curator와 다큐멘터리의 Jesse Clockwork와 soundscape의 Paul Lip 등이 함께 만든 이 작품은 2월 6, 7일 양일간 하루에 7회 공연을 하였고, 1회에 4명의 관객만을 예약으로 받았다. 공연자는 그린메이 한명이었는데, 전시회 공간 안에 방마다 텐트(다큐멘터리 영상을 틀고 있는), 홍콩 시위현장의 사진전, 무용가의 일상 물건들의 나열, 무용가가 읽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공간 전체 사운드 스케이프를 위해 다양한 음색을 내는 물건들과 그것에서 소리를 잡아내는 기계들이 한켠에 설치되어 있었다.

 

 



 소수의 관객은 우선 텐트 안에 들어가 아이패드로 제공되는 다큐 영상을 보도록 유도되고, 텐트 밖을 나오면 그린메이가 수첩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영어로 춤이란 무엇인지, 몸이란 무엇인지, 춤에 대한 관객의 생각은 어떤지 꽤나 무게 있고, 주관적인 영역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 부분은 관객에 대한 본인의 느낌과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변하는 설정이라고 하는데 그는 결국 관객과 다양한 소통을 꾀하면서 자신의 생각, 자신의 물건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춤을 그런 언어적 진술을 통해 관객을 자신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isonomy는 법적인 평등성, 평등권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는 이전 작품에서부터 춤자체나 공연자체에 대한 우상을 좋아하지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사회가 몸에 가하는 폭력적 상황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왔다. 자그마하지만 상당히 단련되고 가벼운 그의 몸은 바람처럼 전시공간을 미끄러지거나 흘러 다닌다. 그는 사회속의 몸은 “제도화되고 억압되는 몸”이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는 물질로서의 몸(corporeal)은 절대 순수하지 않으며 이미 “사회화되어 있다”고 본다. 그가 그런 몸에서 순수성을 회복하고 주체성을 살려내는 방식은 몸에 밀착되어 있는 관습적 공간을 떼어내서 몸과 그것을 분리시켜 공장, 공공장소, 시위현장, 다른 사람, 다른 목적의 공간 등에 자신의 몸을 갖다 놓는다. 그리고 물론 같은 동작으로 무대라는 공연상황 속에도 몸을 갖다 놓는다.
 이번 공연전시에서는 그렇게 하기 보다는 자신이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관객에게 설명하고 가까이서 내밀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이 작품은 제일 마지막 전시공간 바닥에 그가 읽은 책들(철학책, 현상학 책, 문학책 등)이 놓여있고, 관객에게 무엇을 느꼈는지,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지를 설문하는 것으로 전시공연의 코스가 끝이 난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현상학적인 관점 속에서 고정되거나 대상화되지 않은 몸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지금, 여기서 관객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한 켜의 경험을 만들려는 치밀한 시도를 하였다. 공연에 대한 다른 정보 없이, 준비 없이 만난 공연은 아주 낯설게 느껴졌고, 각각의 매체들이 아직은 융합적으로 잘 맞물려 있지는 않았지만 그린메이의 몸과 날렵하게 흐르거나 멈추는 동작들을 통해 전시되거나 보여주기 위한 몸과 춤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접촉하고 만나기를 원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 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몸은 얼마나 제도화에 침해당하여 자신의 것이 아니며, 자신만의 경험에 대해 소홀하게 등한시하는지에 대한 그의 깨달음은 고민의 체계와 깊이가 꽤나 가지런했으며, 실천에서 그야말로 몸을 사리지 않는 실험적 자세를 충만하게 유지하였다. 아직은 거칠게 드러나지만 사회와 공연예술의 접합에 대한 실험 장소로 그린메이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면서 그의 몸 안에 무엇인가가 축적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의 몸과 춤에서 관습적인 것들이 얼마나 사라지고 새로운 날개가 얼마나 자랐는지 그 실험의 결과는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2016.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