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현지취재_ 한-불 상호교류의 해, 국립샤요극장 ‘포커스 코레’
샤요 극장의 공공성, 지속적 교류 그리고 ‘안무가’
이지현_춤비평가

 공식명칭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1)는 한불수교 130주년(1886년 6월 4일 수교)을 맞아 전 분야에 걸친 폭넓은 교류를, 양국의 수도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서,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관계 형성을 위한 것으로 양국 정상이 합의하였다.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2016년 1월부터 연말까지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로 지정하여 총 400여개에 육박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그 중 140여개에 달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행사2)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행사를 위해 2년 전인 2014년 3월 전문위원회(이후 조직위원회로 전환)가 구성되었는데 전문위원회 구성 이전부터도 각 기관 차원에서 2015년이 되기를 기다리며 사업을 준비해오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관주도 행사로는 보기 드물게 현장으로부터의 자발성이 높은 특성을 보이며 진행되었다.
 한국 측 예술감독인 최준호 한예종 교수에 의하면,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이전까지의 교류방식이었던 장소대관 수준의 일회성 방식을 지양하고, 프랑스와 한국의 기관, 극장, 축제가 주관하여 교류(전체 교류 중 95%)하도록 하여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행사의 진행과 교류의 내용을 담아내는 ‘백서’3)제작 작업에도 반영되어 앞으로 다른 국제교류는 물론이고 프랑스와 이뤄질 지속적 교류에 백서가 전시용이나 실적과시용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는 등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으며, 노력만큼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진행된 국립 샤요극장의 ‘포커스 코레(Focus Corée)’(2016년 6월 8-24일)는 교류의 추진방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데, 극장의 프로그래머인 야르모(Jarmo Penttila)는 2013년 PAMS 때부터 내한하여 한국의 작품을 샤오극장 프로그램에 맞추어 눈여겨 보았으며, 2014년에 두 차례 방한하여 이인수의 〈모던 필링〉을 결정하고, 안성수의 신작과 더불어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과 〈이미아직〉을 물망에 올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2014년 말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판선의 〈Own MHz〉를 포함하여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 새로 제작될 안성수의 〈Immixture〉를 포함 4개 작품의 초청을 확정하였다.
 다른 한편 2014년 여름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프랑스를 방문하여 샤요 극장장 디디에(Didier Deschamps)와 만나 교류 방안을 의논했고, 디디에가 상주안무가인 조세 몽탈보(Jose Montalvo)에게 국립무용단과의 공동제작을 강하게 권유해 2014년 11월 안무가가 입국하여 1주일 체류한 뒤에 공동작업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로 이듬해인 2015년 10월부터 〈시간의 나이〉 안무작업이 시작되었고, 2016년 3월 한국초연(5회)과 6월 샤요극장에서 한국특집주간(2주 동안 7회)의 공연을 하도록 프로그래밍이 확정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 두 단체를 포함하여 한-불 교류의 국가 간 대표적 규모를 갖추는 외형이 드러나게 된 것이 약 2년 전부터인 것을 보면 서울-파리간의 거리와 시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연들이 매우 높은 완성도와 안정감으로 몰입력을 높인 것은 바로 이 충분하고 신중한 준비과정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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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주최측은 외교부, 해외문화홍보원, 한-불상호교류의 해 사무국 내 문화예술분야 :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일반분야 : 이화여자대학교 공공외교센터 이상 4개의 기관이 공동주최. 그 외에 문화체육관광부, 재한 프랑스 문화원, 재불 한국 문화원 등이 지원하였다. 그 외 자세한 내용은 한불상호교류의해 홈페이지(http://www.anneefrancecoree.kr/) 참조.
2) 한-불 상호교류의 해 포커스 코레를 포함하여 한국측 무용부문 참가작은 행사에 포함된 공연이 있는 관계로 대략 20개로 정도로 추정한다.
3) 한-불 상호교류의 해 백서는 2017년 1월 발간 예정이며, 본인은 무용분야 필자로 프랑스 내 한국공연 관람을 위해 지난 6월 9일부터 20일까지 파리를 방문하였다.

 


 




 무용중심극장의 공공성을 담은 프로그래밍

 이인수의 〈모던 필링〉과 김판선의 〈Own MHz〉가 샤요 소극장(모리스 베자르 홀)에서 ‘포커스 코레’ 주간의 시작을 알렸다. 3일간 지속된 공연은 100석 정도의 극장을 현지인으로 가득 채웠다. 야르모는 샤요극장이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담아내는 극장의 이념을 갖고 있으며, 2007년부터 무용중심극장으로 성격을 가져간 이후에도 “People’s National Theater”가 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방향임을 강조하였는데, 그가 오랜 시간동안 신중하고 예민하게 프로그래밍 하는 기저에는 극장운영의 정신이 깊이 고려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08년 창작된 이래 수많은 해외초청공연(약 150회)을 한 〈모던 필링〉은 야르모의 눈에 선뜻 선택된 작품이다. 그는 “인간 사이의 내밀한 교류에 강한 휴머니즘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테러와 홍수에 지친 파리지만 그럴수록 더욱 샤요 극장에서는 그 모든 걸 위로할 인간적인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에 이 작품이 적합했기 때문이란다. 2인무로 아주 예민한 관계의 주고받음이 표현되어야 하는 이 작품은 류진욱이라는 파트너를 잃은 후 예전의 그 묘미는 느낄 수 없었지만, 어린 제자 이강현과 많은 연습으로 공을 들인 이인수는 칼로 공기를 가르는 듯한 동작의 타이밍과 조화를 통해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의 맛을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공연이 끝난 후 모두를 아쉬움으로 몰아넣은 소식은 이 샤요의 무대가 〈모던 필링〉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의 여운은 마음속에서 한참 가시지 않았다.

 

 



 김판선의 〈Own MHz〉는 얼마 전 LDP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12MHz〉의 솔로 버전으로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주제로 현실의 공간을 일그러뜨리거나 변형시킨 흰색 톤의 영상과 김판선의 노련한 동작으로 테라민(Theremin)이라는 진공관 악기와 공간속에서의 대화를 통해 독특한 음향과 분위기를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맨몸으로 바닥에 모로 누운 채 등장하여 고독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옷을 걸치면서 중앙 천정에서 내려온 테라민은 김판선의 몸이 거리와 강도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파열음(극장 입장시 관객에게 귀마개를 나눠주는 샤요의 관객배려)에서부터 무르익을수록 묘한 아름다움의 소리가 마치 대화할 수 없는 것과 성사되지 못했던 대화가 점차 살아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음향적으로는 고래가 우는 듯한 음파성 소리가 깊은 바다 속 어둠과 무게감을 연상시키는 소리로 외로움을 더욱 증폭된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데 성공하였다. 길이와 구성을 조금 가볍게 한다면 자신의 존재 〈Own MHz〉에 대한 깊은 탐색과 특이하게 음파를 발생하는 반은 ‘살아있는 악기와의 2인무’라는 독특한 장면이 주제로 흡입해내는 힘을 가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커스 코레’에 김판선이 초대된 것은 현재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엠마뉴엘 갓 무용단) 무용수를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로서는 자부심을, 프랑스인들에게는 한국무용가를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직접 안무하고 춤추는 두 젊은 안무가가 꾸민 공연은 한국의 젊은 안무가에 대한 소개와 이해,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다음 주에 이어진 소극장 모리스 베자르 홀 공연은 안성수의 〈Immixture〉와 더불어 연령별로 다양한 세대를 아울러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한국의 현대춤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균형감을 잘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안성수의 〈Immixture〉(혼합)은 4명의 여자 무용수(이주희, 김지연, 김현, 김민지)와 1명의 남자 무용수(장경민)를 출연시켜 전통춤과 힙합춤의 이질성을 대조시키거나 그것을 점차로 혼합시키는 과정의 재미를 느끼도록 해준 작품이다. 첫 장면에서 조명으로 만든 스퀘어 공간 안에서 ‘춘앵무’가 원형에 가깝게 일부가 재연된다. 안성수가 과거까지 한국춤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전형적인 움직임을 가져와 거기서 현대적인 감성으로 걸러서 현대화된 동작으로 뽑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Immixture〉에서 하려는 실험은 시간상으로는 과거와 현재가 동등하게 서로에게 다가가 만나는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Immixture〉는 균등함을 전제로 하는데 이 방식이 그가 한국안무가들이 빠져 있던 현대화의 관성에서 최초로 탈출한 쾌거로 보여 매우 흥미로웠다.
 춘앵무와 칼춤(신무용)은 그가 과거로부터 불러낸 춤들이고, 자신 스타일의 움직임과 힙합춤이 현재에서 가져간 춤들이다. 이 두 춤은 시간대와 태생이 다른 이질적인 춤이다. 헤드폰을 쓴 장경민은 혼자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점차 격렬하게 흥이 오른다. 그걸 보는 관객은 음악없이 보이는 그의 춤과 흥을 공감하지 못한 채 웃음이 나온다. 관객의 귀에 지배적으로 들리는 것은 산조와 장고의 타악 음악들이고 한국춤 동작 사이에 힙합의 춤이 에워싸거나 일렬로 추어지며 섞인다. 두 춤은 묘하게 박자가 맞고 공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춤은 점차 변형되어 자연스럽게 현대춤화 되어 가고 어느새 두 춤은 하나로 섞여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사이에 장구와 징 반주의 구성진 구음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절정에서 이주희가 홀로 남아 객석을 향해 의미 있는 얼굴표정으로 농축된 슬픔 혹은 비장한 눈물 그렁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정면을 응시하는 등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를 형성해 어떤 감정의 결정체 같은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춘앵무를 췄던 무용수 김지연이 등장하여 두 손을 입까지 들어 올려 맞잡은 채 입을 가린 채로 하는 ‘창사’(궁중무에서 춤의 시작과 끝, 내용을 알리는 노래)를 행하면서 작품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사실 나는 작품을 보는 동안 이 작품에 대한 프랑스 관객 반응이 참 궁금했다. 나는 안성수의 한국춤 현대화에 대한 안무의 이력을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의 새로운 시도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본인이 시도하려는 것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작품으로 성공적이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낯선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는데 내가 판단컨대 무용수들이 퇴장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스피드와 힘 조절, 솔로와 군무로의 자유로운 전이를 통해 한 치의 실수도 없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 준 것에 대한 것과 안무자의 새롭고 흥미로운 혼합 시도에 대한 박수였다고 본다. 안무의 새로운 초점을 정하고 그 원칙을 풀어나가는 창의성과 그것을 더욱 빛나게 받혀주는 인내심은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어떤 성스러움마저 느끼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프랑스 관객 역시 안무의 함량에 예민하고 무용수의 땀과 성의에 박수를 보낼 줄 아는 관객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용전공자인 노숙한 프랑스 관객의 구체적인 소감은 “안무구성은 평면적이었지만 칼이 상당히 인상적인 소재였고, 마지막에 노래(창사)가 매우 매혹적이어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과 더불어 한국적인 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고 느낌을 전했다(통역도움 재불무용가 박화경).




 난장으로 풀어낸 한국적 생사관의 미학 〈이미아직〉

 1,200석의 샤이오 대극장(장 비라흐 홀)에서는 첫 주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의 〈Already Not Yet〉(이미아직)이, 2~3주차에는 국립무용단의 〈SHIGANÈ NAÏ〉(시간의 나이)가 공연되었다. 우리의 국립단체가 1시간 15분이 넘는 창작품으로 프랑스 국립극장 초청으로 프랑스 관객을 만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간 프랑스와의 교류도 사실상 많지 않았는데, 최근 기록된 것으로는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 2002년 홍승엽의 〈달 보는 개〉, 〈데자 뷔〉가, 김매자의 〈하늘의 눈〉, 〈춤 그 신명〉, 강미리의 〈활〉이 초청되었으며 그 후 2006년 한불 120주년 교류사업으로 카롤린 칼송과 창무회가 〈Full Moon/ 느린 달〉을 공동제작한 정도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은 초연 때 프로그래머를 초청하여 보여준 후 원래 초청 계획이었던 〈불쌍〉 대신 이 작품이 선택되었는데, 극장으로 돌아가 의논한 결과 이 작품이 죽음을 금기시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을 새롭게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있는 작품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술감독 안애순은 바뇰레 콩쿨을 통해 프랑스와 인연이 깊다. 1992년 〈씻김〉, 1994년 〈Empty Space〉 (최고무용수상), 1998년 〈11번째 그림자〉 (대상수상) 으로 비록 경연이긴 하지만 프랑스 무대에 대한 경험이 있으며,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진출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미’이며 ‘아직’이라는 반어적인 단어의 충돌로 순차적이고 이성적인 합리의 시공간을 벗어나는 것으로 죽음의 세계를 암시하는 이 작품은 한국 전통악기로 연주되는 현대음악의 라이브 연주와 실시간 호흡을 맞추고, 정가 가수가 무대에서 무용수와 함께 보이스와 더불어 퍼포먼스에도 적극적 개입을 하는 등 이전까지의 규정된 틀을 벗어나 비정형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한국적 죽음해석의 중심으로 세우고 있다. 꼭두인형을 삶과 죽음의 매개적 존재로 두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들이 강을 건너 죽음의 여행을 시작하는 영상이 배경에 깔리고, 정가의 톤으로 보이스를 통해 죽은 영혼들의 인격을 영상판을 앞에 놓고 더빙하는 장면 속에서 무대는 점차 난장으로 현실세계를 해체해 나간다.
 무용수들이 죽음으로 와해된 몸의 세계를 동작으로 구현하여 현대적 병신춤과 같은 익살스러움이 있는가하면 등짝 때리는 장면이나 서로 개가 되어 기어 다니는 개놀이로 살아생전의 것들에 대해 거칠게 풍자해낸다. 각 장면이 독립적일 만큼 긴 것, 그 장면들이 동등하게 기승전결을 갖추려하는 것이 작품 전체를 오히려 분해시켜 연결을 저해하고 차원을 단순화시켜 지루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음에도 이 작품은 공연을 더해갈수록 무용수들과 악사들에 의해 한국적 시나위라는, 서로 각각 별개로 연행하면서 풀고 조이고를 생성해 내면서, 어떤 종합과 총체를 이뤄내는 놀라운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넋전을 무대에서 만드는 장면부터는 객석에 이완과 놀이를 선사하는 급진적 전환이 관객이 놀이성에 쏙 빠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마치 상여가 나가는 날은 오히려 잔칫날 분위기가 나는 이 황당하면서도 통 큰 인생관에서 나오는 전환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접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겠으나 이 작품은 바로 이 지점을 후반에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종이로 만든 각양각색의 넋전과 지게, 신문과 종이 잡동사니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떠나야 할 영혼은 그 잡동사니들 속에 신문을 보고 있다. 그러다 홀연 무대 뒤의 병풍이 쓰러져 종이들을 객석 쪽으로 날리는 풍파가 일어나면 어느새 무대 중앙에 강한 빛의 블랙홀이 등장하고 그 속으로 존재들은 빨려 들어가고 그의 혼은 신문지와 더불어 하늘로 확 사라진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후반장면들이 의외의 속도와 통쾌함으로 역동을 만들어내어 죽음에 대한 아쌀한 마감이 깔끔하다. 자잘한 우리문화의 코드는 자세히 읽어내지 못하여 객석은 상당히 고심하는 듯하다. 그러다 마지막에 보여주는 객석까지 눈부신 조명빛과 전쟁터와 같은 포그, 속에 엎어지는 병풍 세 쪽, 종이로 난장판이 된 무대가 이제는 여기가 두고 떠나할 곳, 한판 잘 논 곳이라는 감각적 암시로 응축되면서 객석은 박수를 치는 일에 인색할 수 없다.




 티켓 매진, 몽탈보의 한국전통에 대한 해석을 기대하는 파리의 관객

 조세 몽탈보가 안무한 국립무용단의 〈SHIGANÈ NAÏ〉(시간의 나이)는 한-불 교류사업의 중심이 된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이 이미 한국 내에서 제작된 작품을 프랑스 현지에 맞는 작품으로 선정하여 초청하는 방식이라면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대로 한-불 교류의 진정한 교류방식에 대한 고민이 응축되어 양국 국립극장간의 공동제작으로 성사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먼 거리와 언어 차이, 동서의 문화적 차이 등 수많은 장벽을 넘어 춤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30년 관록의 프랑스 안무가와 한국춤으로 훈련된 국립무용단원이 만난 것이다.
 조세 몽탈보는 샤요 극장의 상임 안무가로 16년째인 파리가 사랑하는 대표적 안무가이다. 발레, 플라멩고, 힙합, 아프리카 춤 등 다양한 문화권의 춤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베테랑 안무가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초연은 국가간 공동제작 작업으로서의 작품 위상에 비추어 〈시간의 나이〉가 프랑스와 한국이 문화교류용 작업으로 안무가가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의 관점과 안무로 얼마만큼 해내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게 하였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가장 큰 문제였고, 우리의 의상, 춤동작이 파편화되고, 무용수들의 소리지르기, 샤머니즘을 활용한 장면 등이 정확한 느낌을 찾지 못한 채 뒤죽박죽 보기 불편하게 엉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6월에 샤요에서 2주간의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 작품이 수정, 숙성을 거쳐 변신을 한 모습과 두 문화가 섞여있는 것을 프랑스 관객은 어떻게 볼지 상당한 관심을 유보해 놓았기 때문이다.

 

 



 6월초 안무자는 6일간 한국에 들어가 수정작업을 거쳤고, 무용단이 파리에 와서는 극장 기술인력의 파업 예고와 협상으로 준비시간이 넉넉하진 않았다고 한다. 샤요에서의 공연은 시간대를 약간 달리하긴 하지만 대극장과 소극장 공연이 겹쳐있었는데, 3월부터 시작된 언론홍보로 사전예매율 매진에 육박하는 위력은 샤요가 자랑하는 지하 3, 4층 깊이의 계단으로 내려가 에펠이 창으로 가깝게 보이는 그 넒은 극장 로비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객석은 그야말로 환호와 탄성, 흥분과 발구르기 박수로 터져나갈 듯 했다.

 

 



 작품은 많이 다듬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바뀐 부분은 없어도 각 동작이나 장면의 길이가 적절하게 다듬어져 보기에 훨씬 수월하고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2장 여행의 추억에서 쓰레기더미 속 난민 아기의 영상과 장현수의 울부짖는 듯한 솔로 연기는 다듬어져 영상의 감정을 무대로 잘 연결하여 한국적 연민의 감정이 잘 이해되도록 했다. 특히 볼레로 장면의 장현수 솔로가 너무 튀지 않게 조절되어 군무 속으로 자연스럽게 오가며 스며들어 조화의 힘으로 신명을 돋우었다. 그러나 안무자의 다른 작품에 비해 영상 속에 너무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동물과 무대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 점, 볼레로 이전에도 음악이 대규모 체육행사 때의 음악처럼 행진과 매스게임을 생각나게 하면서 집요하게 사용된 것은 피로감을 증폭시켰다. 볼레로까지 점층적으로 상승되는 흐름이다보니 약간은 인위적인 흥분상태를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이 불편함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몽탈보는 자신의 미학적 틀을 완성적으로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안무가였다. 어떤 소재라도 자신의 틀 안에 담아낼 수 있는 그의 포용력은 현대안무가로서 유심히 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동물, 아이들을 사용하여 관객을 동심의 세계로 끌어들여 마음을 열게 하고, 어떤 춤에도 있는 춤의 즐거움을 한껏 끌어내어 추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신나게 만들며, 아이 같은 시선으로 단순하고 천진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무대화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춤을 즐기기 쉽도록 만든 춤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도 앞서간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런 장점이 우리 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그는 역시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었다. 한의 정서를 인류에 연민하고 공감하는 장면으로 만들어 2장의 중심을 삼고, 3장 포옹에서 볼레로를 사용해서 한국과 프랑스의 양국 모두에게 감정적 신명을 느끼도록 하는데 샤먼의 추임새를 사용하였다. 그러면서 포옹이라는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담아낸 것은 그만의 안무가 갖는 균형감이라고 볼 수 있다.

 ‘포커스 코레’를 보면서 관객의 측면에서 한국이든 프랑스든 다르지 않은 부분은 춤 작품을 볼 때 소재나 재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의 창의성, 기법의 참신함, 구조적 완성도, 그리고 인류애에 기반한 주제를 다루는 솜씨에서 보는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쩜 프랑스 관객은 더 또렷하게 그것을 파악하는 안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프랑스 공연 경험에서 이 기준으로 우리 작품을 다시 돌아보고 우리문화가 다른 나라의 관객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해 한국적 소재에 빠져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주제를 향해 소재를 다루는 솜씨에 있으니 말이다.
 또 몽탈보와 관객의 관계를 보면서 파리 시민들에게 부러움을 느낀 지점은 이 사회는 세계의 다른 문화를 프랑스 관객에게 맞도록 요리해서 상에 올려주는 유능한 안무가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안무가는 한 나라의 문화와 분리될 수 없으며,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되고 그 사회의 관객과 소통하려하는 자이다. 그 관계가 안정되면 샤이오의 관객과 몽탈보의 경우처럼, 다른 여러 문화자원을 가지고 안무해낼 수 있는 안무가를 갖는다는 것은 자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봤을 때 한 명의 유능한 문화통역자를 갖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안무가 세계 곳곳의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번 한-불 교류 공연의 경험은 많은 통찰을 주었다. 

2016.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