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슈투트가르트 현지취재_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한국 안무가들
미래의 안무가를 지원하는 슈투트가르트의 전통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덕분에 한국에도 친숙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홈그라운드인 이곳에서 한국 국립발레단, 체코 국립발레단,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발레단, 독일 레비어발레단, 독일 고티에댄스컴퍼니 등 5개 발레단의 갈라공연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펼쳐졌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5개 발레단은 각각 2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흔히 발레단 갈라공연은 〈백조의 호수〉 등 유명 발레작품에 나오는 솔로나 파드되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모두 최근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2007년에 초연된 두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2011년 이후 만들어진 것이었다.

 

 



 국립발레단은 김용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안무한 〈여행자들〉과 강효형(국립발레단 드미솔리스트)이 안무한 〈요동치다〉를 가지고 나갔다.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국내 발레 안무가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김용걸에게 안무를 의뢰한 〈여행자들〉은 수석무용수 이영철과 박슬기의 2인무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이 작품은 발레의 기본적인 테크닉을 보여주되 감각적인 조명 아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그리고 〈요동치다〉는 국립발레단이 차세대 발레안무가 육성을 위해 지난해 시작한 ‘KNB 무브먼트’ 프로젝트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흑백으로 대비되는 강렬한 조명 속에 여성 발레 무용수 7명이 국악 타악에 맞춰 전통춤의 몸짓을 선보인다.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를 비롯해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열린 국립발레단의 갈라공연 레퍼토리로 포함돼 호평을 받았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도 국악에 전통춤의 몸짓과 호흡법을 가미한 안무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강수진 단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 한국 발레무용수들과 비교해 안무가는 아직 그 위상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처럼 좋은 작품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강효형씨나 김용걸교수가 해외 발레단으로부터 안무 러브콜을 받는 것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이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의 작품을 선보인 것과 달리 나머지 발레단들은 하나같이 유머러스하면서도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을 들고 나왔다. 특히 스페인 출신으로 최근 세계 주요 발레단 및 무용단에서 안무를 의뢰받고 있는 카예타노 소토의 작품 2개가 눈길을 끌었다. 고티에댄스컴퍼니의 〈콘라존코라존(CONRAZONCORAZON)〉, 아우구스부르크 발레단의 〈푸가즈(FUGAZ)〉는 흥미로운 음악선곡과 유머러스한 동작, 치밀한 구성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참가한 5개 발레단의 공통점은 예술감독이 모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출신이라는 점이다. 1400석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강수진, 필립 바란키위츠, 로버트 콘, 브리짓 브라이너, 에릭 고티에 등 예술감독들을 박수로 환영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종신무용수로 은퇴공연을 앞뒀던 강수진 단장의 이름이 불리자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갈라공연에 이어 이튿날인 17일엔 이들 5개 발레단 예술감독들을 비롯해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의 크리스티안 스퍼크, 캐나다 그랑발레단의 이반 카발라리까지 7명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 및 타마스 디트리히 부감독과 함께 후진 양성을 주제로 포럼을 열고 의견을 나눴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올해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의 취임 20주년을 기념해 7월 15-24일 개최한 페스티벌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토대를 놓은 존 크랑코(1927~1973)의 대표 3부작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오네긴〉과 갈라공연,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부속 존크랑코발레학교의 갈라공연 등이 페스티벌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 〈오네긴〉은 강수진 단장의 은퇴를 겸한 것이었다.
 캐나다 출신으로 영국로열발레학교를 졸업한 앤더슨 감독은 로열발레단을 거쳐 1967년 존 크랑코가 이끌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입단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발레마스터를 거친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발레단과 캐나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뒤 1996년 마르시아 하이데의 뒤를 이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돌아왔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그는 2018년을 끝으로 예술감독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그는 지난 2013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슈투트가르트 시 그리고 자동차회사 포르쉐의 후원을 얻어 공사비 5,000만 유로(약 630억원)가 투입된 존크랑코발레학교 신축을 이끌어냈다. 현재 공사 중인 존크랑코발레학교는 2018년 문을 열 예정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발레마스터로 오랫동안 일해 온 타마스 디트리히가 지난해 그의 후임 감독으로 선정됐다.

 

 



 이번 그의 취임 20주년 페스티벌에서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넥스트 제너레이션’ 공연&포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오랫동안 지켜온 철학과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존 크랑코가 남긴 걸작들과 함께 케네스 맥밀란, 이리 킬리안, 존 노이마이어, 우베 숄츠, 윌리엄 포사이스 등 거장 안무가들을 잇달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데미스 볼피 등 최근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신진안무가들 중에서도 이곳 출신이 많다. 또 세계 발레단 예술감독 중에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출신이 유독 많은데,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앤더슨 감독 시절 배출한 이들 감독들과 이들이 이끄는 발레단을 초청한 것이다.
 앤더슨 감독은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를 키우고 지원하는 것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전통”이라며 “내가 이곳에 있는 20년 동안에만 95개의 세계초연작이 올라갔다.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철학이 이어졌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출신으로 세계 각지에서 무용단을 이끄는 내 다음 세대의 예술감독들이 모이고, 각 예술감독들의 다음 세대에 속하는 무용수들이 공연을 펼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올해 처음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개최했지만 앞으로 또 개최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후원자인 노베르협회와 함께 안무가를 희망하는 무용수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신인안무가 프로그램을 60년째 해오고 있다. 덕분에 이리 킬리안, 윌리엄 포사이스, 우베 숄츠 등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첫 번째 작품이 대부분 이곳에서 나왔다. 사실 국립발레단의 KNB 무브먼트 프로젝트 역시 강 단장이 친정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신인안무가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앤더슨 감독은 “수진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단원들을 이끌어나가는 존재였다”면서 “수진이 발레리나로서 은퇴한 것은 아쉽지만 리더로서 한국의 국립발레단을 잘 이끌어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2016.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