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2012 신춘포럼
환경의 변화와 현금의 지역춤, 무엇이 문제인가
김태원_춤 비평 /「공연과 리뷰」편집인

 

 

 1. 근래 춤환경의 변화의 모습들

 국내 춤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말, 특히 1998년경부터라고 본다. 이른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1998~2002)가 탄생되면서 공공기관이나 문화예술 관련한 지원금의 정책의 변화가 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997년 IMF 영향과 그와 병행된 인구의 점진적인 감소에 의해 대학 무용과 점진적인 위축이 이때부터 진행되었다. 곧 공공기관의 민영화, 노조의 등장, 기술인력의 프리랜서화 등이 그때부터 가시화되면서 춤공연 제작비가 급상승했다. 이 시기 동안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일종의 문화 포퓰리즘적 정책에 의해 지원금의 배본이 중앙/지역으로 이원화(二元化)되면서 다소 풍성해진 것이다(물론 부정적이지만).
 뒤이은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2003~2007) 또한 그런 기조를 유지해가며, 공공 문화기관의 효율적 운영과 함께 특히 지자체(地自體)에 많은 재정적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주목해볼 만한 큰 문화 변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젊은 세대층을 중심으로 컴퓨터, 핸드폰 등 IT 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그것이 매개된 전대미문의 대중문화의 확산이 일어난 것, 더불어 핵가족화가 심화되어 1인 가구(家口)가 우리 사회 속에 넓게 포진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 두 문화적 현상은 필연적으로 순수예술 활동의 위축을 가져오면서, 특히 아날로그적 정서에 크게 호소해오던 춤예술의 위기를 부추기게 되었다.
 현재 정권의 만료일을 거의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2008~2012)의 경우는 앞서 두 정권이 가져왔던 문화 구조의 변동을 잘 헤아려 가늠하지 못해, 구조적 불균형의 모습과 시행착오를 주로 인사(人事) 행정을 통한 외형적 제도의 차원에서만 수정·보강하려다 주어진 시간을 거의 다 소모하고 말았다. 그런 중에 점검을 거치지 않은 부자연스런, 일견 중앙 독점적인 문화예술 행정 조직체(최근의 ‘한팩’)를 탄생시켜 더 일그러진 문화 지형도를 구축케 만들었다.
 그런 중에 더 분명해진 것은 다음과 같은 큰 패턴의 문화의 흐름이다.

1) 컴퓨터, 핸드폰, 스마트폰 등 IT 문명과 텔레비전이 매개가 된 대중·소비문화의 확산은 그 위력(威力)이 점점 더 세지고 있다.
2) 전통적인 인문 고양을 강조하는 정신문화, 그리고 순수예술의 활동의 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고 극히 제한된 수용층과 영향력만 가지고 있다.
3) 4인 이상을 넘지 않는, 달리말해 1~2인 중심의 극히 소수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큰 틀에서 인구의 점진적인 감소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4) 악성 자본주의적 사회질병이랄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굳이 경제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의 모든 차원에서도 동등하게 전개되면서 그 심각성이 전혀 줄어들고 있질 않다.

 이런 가운데 근래 우리 무용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눈에 띄는 여러 변화 현상을 지목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부산·인천·청주·천안 등 지역의 전통적인 종합인문대학에서 무용과의 폐과, 또는 타 학과(연극·체육 등)와의 병합이 진행되면서, 순수 춤예술 전공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② 반면, 힙합, 방송댄스, 신체치유춤, 각종 생활춤의 인구는 늘어나면서 이들 중 일부가 춤 전공으로 새롭게 이입(移入)되고 있다.
③ 지난 80~90년대 열세에 빠졌던 발레와 전통춤 공연이 늘어나면서, 특히 전통춤의 경우 이제 공연·기획·평론 등에서 자족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④ 춤 제작비의 상승, 무용수 확보의 어려움, 극장 공간의 부족 등으로 인해 여러 동인제 및 독립 춤단체들은 매해 문화예술지원금이란 수혈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공연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⑤ 그런 가운데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그 활동이 증폭되었던 독립 춤단체의 활동은 현재 지원금 제도의 잦은 변화, 심사의 문제, 공연 공간의 부족, 대학권 춤과의 균형맞추기 등에 의해 그 활동이 다소 위축되고 있는 편이다.
⑥ 소극장 혹은 창작 스튜디오 중심의 활동은 증가되고는 있으나 지원책의 불명확함, 소극장 춤운동의 철학과, 그 관련한 기획·홍보력의 취약 등으로 인해 그 활동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⑦ 그간 춤 레슨, 작품 안무 등에 의존했던 젊은 무용가들의 수입은 극히 불안정하고 빈약한 실정이다. 공연에 직접 참가나 대학이나 문화센터 강의 등에 의한 수입이 거의 대부분이라 하겠다.
⑧ 큰 구도에서 문화정책이나 극장제도의 개편이 주로 문화행정관료, 정치인, 그리고 정치 성향(감각)을 갖고 있는 연극인 중심으로 행해져서 비정치적이라 할 수 있는 무용예술(인)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⑨ 관립 무용단체, 즉 직업무용단 속의 예술감독의 역할과 활동의 폭, 행정의 지원, 그리고 단원들의 은퇴 등 임기 문제와 오디션 등 아주 기본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아직도 그 가이드라인이나 평가지표가 분명하게 체계화되어 있질 않다.
⑩ 지역 측의 활동은 비평부재와 KTX의 개통 등으로 인해서 더 폐쇄적이 되어가거나 어려워지고 있다. 이중 KTX를 포함한 교통비의 상승은 지역, 서울 간의 교류를 위축시키는 적지 않은 요인이며, 또한 지역 중심의 비평활동의 부재는 지역 춤활동의 몰역사화(沒歷史化)를 낳고 있다.
⑪ 현대적 예술로서 우리 무용의 역사화와 교육, 그리고 그 미학적 체계화를 더 공고히 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있고 창조적인 학문·비평 활동과, 그리고 그 자료 수집과 관리의 체계화가 아직도 크게 미흡하다. 

 



 

2. 지역춤의 문제를 포함, '춤의 위기'에 대한 대응

① 대중, 혹은 생활사회무용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춤 전공인의 다기능화
순수/대중 춤에 대한 폐쇄적이고 고립화된 시각을 벗어나 각 영역에 대한 그것대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일견 상생(相生)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순수 춤 전공자들은 대중춤 전공자들이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보는 특이한 안목과 발상을 수용해야 하고, 대중춤 전공자들은 순수 춤 예술인들의 고투를 깊게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거대한 대중·소비문화의 풍조 속에서 춤 전공인들은 좁은 의미에서의 장르 개념을 벗어나, 역할 변이와 전환을 통해 ‘다기능성(多技能性)’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무용인들의 연극이나 뮤지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참여, 영상이나 방송 등 연예산업에의 진출, 그리고 기타 축제 문화나 문화 콘텐츠 사업 등에 대한 적극적인 참가를 이젠 꾀할 필요가 있다. 달리말해 무용인들이 갖고 있는 유연한 신체와 상상력은 굳이 무용 공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연기자이고, 탤런트일 수도 있으며, 또 기획자이고 영상 제작 감독자일 수도 있다. 더불어 지역에서 여러 축제나 페스티벌의 지도적인 참여자나 기획자일 수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무용 교육도 전공인의 다기능화를 도모할 수 있게끔 커리큘럼이 크게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공 교수·연구교수·겸임교수 등의 채용에 있어서도 무용의 외연적 활동을 도울 수 있는 타 전공의 교수진 영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② 지원금의 심사는 이젠 춤의 중요 발전 전략이다
사회구조가 모든 면에서 복잡화되어가면서 동시에 합리화, 창의화를 도모하는 추세다. 따라서 무용 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그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다익선적 분배’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이미 많은 제안을 했었다. ‘전문심사위원제도’의 도입과 지원 관련 ‘전문 컨설턴트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예술 환경적으로는 어렵지만, 그러나 무용 공연은 여러 장소에서 매우 다채롭고 또 새롭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그 현상들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보는 이가 아니면 각 무용단체의 활동의 특성과 그 발전(변화)의 모습은 예견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제 지원금 심사는 단 두세 번 만에, 또 며칠 만에 끝나는 요식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현장을 눈여겨보고 찾는 이가 아니면 어떤 숨은 저의(底意)나 이익관계로 심사에 참여해서도 안 된다.(이것은 윤리적인 양심의 문제다.)
그러므로 무용의 지도층은 지원금 심사는 춤의 매우 중요한 발전 전략의 장(場)임을 이해하고, 그 전문성을 사주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심사는 각 개인이나 단체의 특성, 그 예술적 지향점의 특징, 타 단체와의 차별성, 공공과의 소통과 봉사, 그리고 큰 시각에서 한국의 문화적 아이덴티티의 구축에 대한 기여도 등을 매우 친밀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또 평가해야만 한다.
동시에 거듭, 지원금의 책정과 배분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나 동정주의적(同情主義的)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③ 소극장/창작 스튜디오 공간의 활성화
제도화된 공간 속에서 춤공연은 거듭 그 제작비의 상승을 억제키 힘들다. 계속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질 않으려면 제도적 장치에 의한 간접지원책의 일환으로 극장 공간이나 인력·설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이것은 예술의 공공성을 높게 사는 문화 민주주의적 시각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예술 활동은 전문적 소극장이나, 전문적인 공연 가능한 스튜디오 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이 그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제작비의 감소는 물론 여러 측면에서 춤예술의 발전을 돕는 유효한 인력(人力)을 그곳에서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 구체적인 제도화를 언급한 적이 있고, 또 나 스스로 서울의 한 소극장을 중심으로 5년 이상 실험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적이고 창조적 소극장에 대해서는 기존 극장 공연에 대한 지원책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수준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생산적인 소극장, 혹은 창작 스튜디오의 활성화는 공연문화의 전문화·선진화를 위한 건강한 ‘효모 작용’이라 볼 수 있다. 이 효모 작용이 없이는 결코 본격적인 극장문화의 형성이 어렵다. 예술 선진국의 전문대학이나 직업 예술단체들도 체계적인 전문 교육의 기능과 함께 그것을 실제 실험해볼 공간과 기회를 늘 제도적으로 마련해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단위마다 최소 두 세 곳의 창의적인 춤 거점(據點) 소극장들이 가동되어야 한다.

④ 비평 및 저널리즘 활동의 활성화
소극장이나 창의적 스튜디오가 실제 공연 활동을 위한 효모 역할을 한다면 비평 및 저널리즘은 하나의 공연이 대중과 사회에 어떻게 인식되고, 그 내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효모 작용’을 한다. 이 활동은 특별한 미적 관점 위에 사회적 관점을 띤 분석적 평가, 그리고 역사적 감각을 갖고 이뤄진다.
현재 지역춤 문화의 고사(枯死) 현상은 사실상 비평 및 저널리즘의 활동을 위한 환경 부재와 그 무관심 탓이라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지역춤에 대한 한 사람의 애정이나 헌신, 혹은 한 신문이나 잡지의 문화적 관심과 기여만 있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나는 본다. 지난 80~90년대에 그런대로 지역춤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도 극히 적은 수이지만 비평가들이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동하기도 경제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질 않다.
무대예술인처럼 비평가도 전문인이다. 따라서 적절한 공적(公的)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예술기관의 자문위원이나 교육자 신분으로 있는 정도다. 그리고 비평 활동에 대한 문화예술적, 혹은 사회적 지원은 현재 거의 전무(全無)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한사람의 춤비평가가 스스로 춤 전문지를 발행·출간하지 않으면 자신 비평의 객관적인 발표지면의 확보도 여의치 않다고 보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생산적인 매개의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는 현 춤문화의 환경은 그 발전이 정체되거나 불구가 될 수밖에 없다.

⑤ 거듭 무용교육의 정상화와 전문화
현재 대다수 무용과의 수업은 실기교육 위주로, 또 편향된 특수 춤의 기술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전공교수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는데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무용교육의 이론서나 자신의 작품 활동이나 교육의 경험을 담은 저술 한권도 채 못 내고 있다. 그러면서 각자 전문 춤 교육자로 자부하고 있다.
사설 학원에서의 춤 교육은 그렇게 해도 된다. 기술의 전수만 목표로 하니까. 그러나 대학에서 춤 교육은 이론과 실기의 균형성 위에 무엇인가 자신의 예술적 철학, 교육관을 거기에 담아야하고, 교육적인 인내심과 탐구의 열정도 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참 춤교육자’를 우리 무용계에서 정말 찾기 힘들다. 대다수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각자만의 길을 허덕이며 가고 있는 것 같다.
교육이란 튼튼한 기반과 끊임없는 재교육이란 피드백이 없이 그저 공연(公演)이란 ‘환영의 누각’만 짓고 있는 것이 우리 춤문화의 현 주소일지 모른다.
 

 

 

 

*1990년대 이후 춤 환경의 변화와 극장공간 등의 지원책에 대해서는 나는 이미 두 차례 발표를 이 같은 세미나에서 했었다. 「어려워진 공연예술 환경과 9가지 지원금 심사의 원칙」(1992),「춤 지원정책,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2009)가 그것으로 그 두 원고는 나의 춤비평집『예술춤의 위기와 전망』(2004),『우리시대의 춤의식과 운동2』(2011)에 각각 재수록 되어있다.

2012.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