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현지취재_ 파리여름축제 안은미 〈1분59초 프로젝트〉 외
“우리는 한국인이잖아, 자기야”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프랑스 파리는 유럽 공연예술의 중심지다. 하지만 여름철엔 대부분의 공연장이 문을 닫기 때문에 볼거리가 없는 편이었다.
 파리여름축제는 1990년 밀라노의 프랑스 문화원장과 파리 아테네극장장 등을 역임한 파트리스 마티네가 자크 랑 당시 문화부 장관에게 시민과 관광객을 위해 여름철에도 파리를 공연예술의 중심지로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문화부와 파리시의 후원을 받는 파리여름축제는 7-8월 사이 한달 가까이 파리시와 인근 도시의 실내외 무대에서 다양한 장르의 20여개 작품을 100여회 공연해 왔다. 기존 공연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리 시내의 공원이나 성당, 박물관, 강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선보이는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전체 공연 가운데 비중이 높은 야외 공연은 모두 무료다. 축제 설립 이후 마티네가 예술감독을 맡아왔으며 2010년부터는 무용 기획자 출신의 캐롤 피에르츠가 공동 예술감독을 했다.

 

 



 27회째인 올해는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7일 동안 20여개 공연 및 부대행사가 펼쳐졌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의 전반적인 예산 삭감으로 파리여름축제 역시 공연 기간과 횟수가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알찬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탈리아 커뮤니티 퍼포먼스 작가인 안나 리스폴리가 파리 크노 지역 레지던스 거주자들과 함께 선보인 〈집에 돌아가고 싶어〉, 프랑스의 대표적 안무가 가운데 한 명인 조셉 나주와 피나 바우시 사후 부퍼탈무용단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도미니크 메르시의 2인무 〈아침의 작은 시편〉, 퍼포먼스와 저글링을 합한 작품을 선보이는 영국 단체 간디니 저글링의 〈으깨지다〉, 무용수 브리겔 교카와 라일리 와츠가 선보이는 〈윌리엄 포사이스의 듀오 2015〉 등은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올해에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한국 공연 특집 ‘우리는 한국인이잖아, 자기야(We are korean, honey)'가 기획돼 큰 호응을 얻었다. 7월 20-24일(현지시간) 안은미의 〈1분59초 프로젝트〉,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을 필두로 이태원이 이끄는 국악밴드 고물,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정은혜 등의 판소리 콘서트가 잇따라 펼쳐졌다. 소위 공연계의 안은미 사단이 총출동한 셈이다. 이외에 안은미 의상 경매 및 토크쇼, 한국 무용영상 상영, 한국음식 판매 이벤트 등이 곁들여졌다. 파리 중심부 마레지구의 복합문화공간 ‘꺄호듀텅플’(400석)은 공연 기간 내내 꽉 찼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7월 20-21일 파리 중심부 마레지구의 복합문화공간 ‘꺄호듀텅플’에서 선보인 안무가 안은미의 〈1분59초 프로젝트〉다. 한국발 커뮤니티 댄스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첫날인 20일 프랑스 아마추어 예술가 38개팀, 21일엔 37개 팀이 이름을 올렸다.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1분59초 동안 공연을 펼쳤다. 솔로, 듀엣, 트리오, 단체 등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구는 춤을 췄다. 이외에 악기 연주, 콩트, 영상 등도 다채롭게 선보였다.
 안은미는 이 작품에서 특별한 테크닉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충고를 했을 뿐이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진솔하고 독특한 공연이 나오게 됐다.
 이 공연은 원래 안은미가 지난 2013년 대중을 상대로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예술정신을 실현하고자 처음 기획한 것이다. 이듬해부터 지금과 같은 〈1분59초 프로젝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국내를 벗어나 파리여름축제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파리여름축제가 지난해 9월 참가자 신청접수를 시작한지 2주만에 정원 100명을 넘겨 130명이 신청할 정도였다. 올해 4월부터 워크숍을 시작해 매주 주말마다 참가자를 대상으로 음악, 무용, 영상, 즉흥 등의 수업이 이뤄졌다. 안은미는 한달에 한번은 직접 파리에 가서 참가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2인무를 보여준 클로드 레즈닉(76)과 미슐린 모졸(68)은 “어렸을 때 춤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면서 “나이 들었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춤을 선보일 수 있게 돼 놀라우면서도 기쁘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깜짝 놀랬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지난 9월초 파리여름축제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받고 각각 신청했지만 워크숍 기간 동안 친밀한 관계가 되면서 듀엣으로 무대를 꾸미게 됐다.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지난해 안은미가 파리가을축제 등에서 선보인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등 ‘땐스’ 3부작을 보고 신청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젊은 시절 배우 지망생이었다는 새라 마틀론(52)은 “할머니들이 춤추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안 선생님은 누구보다 관객과 소통할 줄 아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안 선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 덕분에 나도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또 젊은 시절 모델을 거쳐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까티 르텔리에(73)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것이라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참가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서로 자주 만나면서 가족같은 유대감이 생겼다. 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은미는 “한국이나 프랑스 등 국적과 관계없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삶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에너지를 발휘한다”면서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좌표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 참가자들이 내년 서울에 와서 한국 참가자들과 함께 〈1분59초 프로젝트〉를 공연하는 것을 계획중”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피가로 신문은 25일자 기사에서 ‘한국의 생명력’이란 제목으로 “이 아마추어 프로젝트에서 춤은 테러와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 인간이 새로운 삶의 힘을 얻으려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무대”라고 이 작품에 호평을 보냈다. 또 이번 파리 공연을 본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Q시어터가 안은미에게 같은 프로젝트를 내년에 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파리여름축제는 아무래도 안은미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안은미는 지난 2013년 파리여름축제에서 〈심포카 프린세스 바리〉를 공연하며 프랑스에 자신을 알린 이후 이듬해 〈조상님께 바치는 때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안은미는 지난해 파리가을축제에 ‘땐스 3부작’이 초청된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로 프랑스 전역을 돌며 공연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안은미를 프랑스에 알린 주역인 캐롤 피에르츠 예술감독이 아쉽지만 올해 페스티벌을 끝으로 물러난다. 이번 축제에서 한국 공연 특집 ‘우리는 한국인이잖아, 자기야(We are korean, honey)'의 제목은 안은미가 피에르츠에게 자주 했던 말이라고 한다. 피에르츠 감독은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2년 처음 만난 이후 친구가 됐다. 

2016.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