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리 현지 인터뷰_ 부토 무용수 양종예
부토는 내 의식의 축을 잡아 주는 존재

도쿄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메이저 부토 무용단인 다이라쿠다칸이 6월 11-20일 파리 일본문화원에서 <벌레의 별>을 공연했다. 20명이 넘는 단원들 중에서 유독 한국인 무용수가 눈에 띄었다. 안무가 이선아가 공연 후 그녀를 만나 부토 전문 컴퍼니에서 활동하게 된 사연과 왜 부토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이선아
한국의 많은 분들이 일본의 부토 무용단에 한국인 무용수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본인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양종예 저는 경성대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적 무용이 좋아 찾아간 곳이 마침 한국무용 전문 학원이었죠. 한국무용 전공으로 부산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에 가서는 전공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현대무용 남정호 교수님이 계셨거든요. 교수님께 전과를 상의하기도 했습니다만 행정상의 문제로 전과는 힘들었어요. 결국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것이 한국춤 인가, 한국춤이 아닌가 하는 장르를 구속하는 창작 작업과 머리를 싸매는 나날이 연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하던 나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저는 치마저고리와 버선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한국무용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님께 타박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사도라 던컨을 따라 하려고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웃음). 그때는 왜 그리 버선이 신기 싫었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올해 나이 마흔이 되고 외국에서 지내고 있다 보니 한국춤의 맛과 멋을 이제야 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도쿄에서 가끔 춤 출 기회도 있거든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용뿐만이 아닌 다른 장르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는(98년) 지금처럼 다원예술이라 불리는 장르는 없었어요. 마음 맞는 동료 5명이 모여 “퍼포먼스 파크(park)” 라는 행위예술단체를 만들었고 몇 년 간 활동 했습니다. 멤버로는 <구름빵>으로 잘 알려진 연출가 허승민씨가 리더를 맡았고 저를 포함한 미술가, 연출가, 음악가,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관객들과의 소통을 시도했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을 장르를 타파한 퍼포먼스로 표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제 개인 안무 활동을 해나갔죠. 그러나 그때마다 장르에 대한 벽이 늘 기다리고 있었죠. 한번은 부산무용제에 나갔다가 “장르를 알 수 없다”는 평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어떤 장르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작품 활동에도 늘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부토는 언제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부토는 대학교 때 무용이론을 통해 처음 배웠습니다. 실제로 부토 공연을 본 것은 1999년 제5회 죽산예술제에 초대된 카즈오 오노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후 2005년 <한일 우정의 해 춤 교류전-부토 페스티벌>에 다이라쿠다칸의 작품 <카인노우마>를 봤습니다. 공연을 보는 순간, 첫 장면부터 압도당했다고 할까요?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한 묘한 인연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안됐지만, 장르에 대한 벽에 부딪히며 슬럼프를 겪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고, 그래서 무작정 일본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무용단으로 찾아 갔을 때, 무용단에서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일본에 도착해 마로 아카지(Maro Akaji)의 부토 워크숍에 참가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워크숍에 나갔고, 시간이 지나고 단원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무용단에서는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멤버를 찾고 있었는데,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비자 문제도 있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워크숍에 참가했고, 객원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단체에는 외국인(정식) 단원이 없었고, 신인 단원이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기도 했지만 늘 잘 웃는다고,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예술감독인 마로 아카지가 입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게 2009년이네요.

오디션 절차 없이 들어간 경우네요.
특별한 오디션 절차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과 마음가짐을 봅니다. 다이라쿠다칸 마로 아카지는 부토창시자 히지카타 타츠미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 영향으로부터 새로운 장르 ‘텐푸텐시키’(Tempu-tenshiki)를 만들었습니다. 텐푸텐시키는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재능이다"라는 의미로 “한 인간의 탄생은 세상 속으로의 유입이다”라는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장르 ‘텐푸텐시키’는 예술을 하나의 장르로 묶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장르도 될 수 있는 유동적인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부토와의 인연, 종예씨가 생각하는 부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대학시절 가끔씩 “너는 일본색이 강하다” 또는 “부토 같다”는 등 일본과 관련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 저는 부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밌습니다(웃음). 저는 부토가 어떤 춤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토는 저에게 삶의 방식입니다. 제 의식의 축을 잡아주는 존재라고나 할까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부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부토는 본연의 형태가 없어졌다고 할 만큼 다양한 부토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부토인가?”에 대한 질문은 늘 화두가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부토는 각 개인, 즉 “나와 부토” 그리고 “너와 부토”라는 성립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흐름 곧 인간에 의해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토는 눈에 보이는 형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입니다. 그래서 어떤 춤, 어떤 삶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 그리고 춤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에 있는 행위라고나 할까요? 무의식적으로 행해왔던 모든 행위들을 관찰하고 재인식하는 것이죠.


유럽에서는 부토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부토는 한국에서 접할 기회가 많이 없지만, 일본에서도 부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토를 '앙그라부토'라고도 하는데요. 앙그라는 언더 그라운드라는 뜻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장르입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꼭 무용분야에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부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토가 일본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더 많은 각광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1세대 부토 무용가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마로 아카지의 다이라쿠다칸은 창단부터 40주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동경을 지키며 동경의 젊은이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점. 어쩐지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1세대 부토무용가들 중 한국에 잘 알려진 산카이주쿠 아마가츠 유시오씨, 파리에서 활동하던 무로부시 코씨도 다이라쿠다칸의 창단멤버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분은 아마 별로 없으실 겁니다. 저도 깜짝 놀랐거든요.

마로 아카지는 어떤 분인가요? 그리고 무용단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마로 아카지는 원래 연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텐트연극으로 유명한 카라주로라는 유명한 연출가의 극단 배우로 활동 하다가 우연히 히치카타 타츠미(부토 창시자)을 만나게 됐죠. 그 이후 자신의 컴퍼니 <다이라쿠다칸>를 설립했습니다.
올해로 저희 다이라쿠다칸 단체가 4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72세의 노장인 마로아카지는 부토 1세대로 부토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도 늘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추구하며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 나아가는 진행형 예술가입니다. 평소에는 늘 위트가 넘치고 무엇이든 궁금해 하고 궁금하면 꼭 찾아서 알아내는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 같다 할까요. 지금까지 만난 스승 중에 가장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장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단체는 남자 11명, 여자 10명 총 21명의 단원이 있습니다. 큰 단체이고 조직이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 것 같지만,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라쿠다칸의 무용수들은 저처럼 전문 무용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처음엔 그것이 무척 놀라웠지만, 그들의 거짓 없는 움직임과 비어있는 순수한 몸을 보는 순간 텐부텐시키의 힘을 느꼈습니다. 처음 몇 년간 저는 몸을 비우는 작업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죠.
다이라쿠다칸에는 마로 아카지의 독자적인 메소드가 있습니다. 언젠가 이 메소드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다이라쿠다칸의 부토는 이 메소드를 기본으로 움직임을 만들어 갑니다.


마로 아카지 메소드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빈 몸(空っぽ, Empty body)’, ‘공간의 몸(宙体, Space body)’, ‘유동의 몸과 주형의 몸(鋳体と鋳型, Mold body&Freeze body)’, ‘움직임의 수집(身振りの採集, Movement collect)’입니다.
우선 몸을 순수하게 비우고, 내가 아닌, 어떤 의미도 주어지지 않은 순수한 물체의 상태가 된다(빈 몸). 나는 공간이 있기에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공간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그 공간에는 공기와 바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존재들이 있다. 마로 아카지는 그 공간의 사이를 ‘마(間)’, 또는 ‘마(魔)’ 라고 합니다. 이 ‘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성질, 성분과의 접촉,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와의 접촉을 형성시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로 아카지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접촉해 그들을 내 몸 속에서 길들인다.
내가 춤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몸과 움직임의 관계를 인식하고 접근하는 면에서 어떤 차이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지는 상태’가 공간의 몸이다(공간의 몸)라고 보는 거지요. 그 몸은 녹아있는 금속과 같이 유동적이며 틀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창조해냅니다. 이것은 새로운 움직임의 형태를 만드는 것과 직결되는데, 금속을 뜨거운 열에 녹여 어떤 틀에 부으면 그 틀의 형태가 된다. 이처럼 공간의 몸은 어떠한 형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녹아있는 금속과 같은 유동적인 몸의 상태가 되는 거죠. 이렇게 유동적인 상태가 된 몸은 주형의 몸으로써 거대한 몸의 틀에 녹아들어 거인의 형상이 되기도 하고, 짐승의 틀에 녹아들어 배고픈 들짐승의 형상이 되기도 합니다(유동의 몸과 주형의 몸).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행위를 멈추는 것으로 인해 몸은 일상의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움직임의 수집이 시작됩니다. 찰나라고 하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있던 컵이 떨어지는 사건, 그 사건의 순간을 찰나라고 하고, 컵이 떨어지는 찰나에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행위. 그 찰나에 행위를 멈추는 시점에서 몸은 일상의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유로워진 몸으로부터 새로운 움직임의 수집이 시작된다는 것이 마로 아카지의 생각입니다(움직임의 수집).

 



이번 6월 11일-20일 일본문화원에서 올려진 <벌레의 별 (La Planete des insects)> 작품 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주세요.

다이라쿠다칸의 예술감독이며 안무 연출을 하고 있는 마로 아카지의 작품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가진 자는 인간뿐이라고 믿고 미지의 우주에 대한 동경을 품고 다양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실은 수억 년 전부터 다른 별로부터 인간에게 위험 신호를 발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신호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이미 쓸모가 없게 되고, 사람보다 그 존재로 긴 역사를 거듭나고 있는 "벌레들"이야말로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향후 계획 및 한국에서의 공연 계획은 없으신지요?
마로 아카지가 히지카타 다쓰미의 암흑부토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처럼 저 또한 마로 아카지의 텐푸텐시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나아가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육감이 듭니다. 부토가를 지향하기보다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더욱 자유롭고 부드럽게 가지며 활동해 나가고 싶어요.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마로 아카지의 메소드를 한국에 알리고 싶습니다.

2015.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