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취재_ 함부르크국제여름축제
현대사회의 이슈, 그리고 진보적 시선
김윤정_재독 안무가

 유럽의 여름 해는 길고도 길다. 아침 대여섯 시면 해가 떠 밤 열 시가 되어서야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앉으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유럽의 여름에는 긴긴 저녁을 채우는 문화예술축제들로 가득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축제들은 매일같이 선선한 여름공기를 달구며 여름밤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국제여름축제(Internationales Sommer Festival)가 열렸다. 8월 10일부터 28일까지 약 3주간 이어지는 이 축제는 무용부터 연극, 음악,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축제는 그 장르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축제의 목적을 전 세계의 새로운 공연예술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데에 두는 덕분에 함부르크국제여름축제에서는 현대사회의 이슈들과 예술에 대한 진보적인 시선들이 다원예술의 형식과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구현되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올해에는 만36세의 안드라스 지볼트(András Siebold)가 페스티벌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며 페스티벌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많은 관심과 기대가 모아졌다. 취리히 출생의 지볼트는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는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경력은 그의 나이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베를린, 뉴욕 등을 거치며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예술가들의 어시스턴트로서,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로서 다양한 경험과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볼트는 2007년부터 캄프나겔의 디렉터인 아메리에 도이프하트 (Amelie Deuflhard)의 드라마트루기로서 함부르크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제가 이제까지 경험해 온 모든 것들을 집결시키는 느낌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문화, 예술계의 사람들이 늘 그들만의 작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죠. 미술가들은 극장에 가지 않고, 연출가와 연극배우는 미술관에 가질 않으니까요. 너무 폐쇄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함부르크에서 변화가 시작되었죠”라고 말하며 자신이 해온 경험들을 백분활용하기 위하여 다원적인 공연예술을 추구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다른 매체들 간의 접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죠. 아티스트들이 늘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니까요”라며 캄프나겔에서 공연되는 많은 크로스오버 장르의 작품들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여름축제를 이끌었던 마티아스 폰 하트츠(Matthias von Hartz)와의 비교도 서슴지 않았다. “제가 올해 축제를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은 마티아스의 그것과는 매우 다를 거예요. 우리 둘은 엄연히 서로 다른 타입이거든요. 그가 냉소적인 타입이라면 저는 아이러니한 타입입니다”라며 어떤 형식으로든 페스티벌이 모두가 생각하는 대로 마냥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그 덕분인지 올해 함부르크국제여름축제에서는 많은 세계 초연작과 독일 초연작이 프로그래밍 되어 현지인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많은 초연작이 몰려있던 첫 주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4명의 아티스트들이 꾸민 서커스 〈지상 최대의 쇼〉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라니,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를 부풀게 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맥 스튜어트, 안토니아 베아, 발레리 카스탄, 제레미 웨이드, 필리페 퀴스네, 플로렌티나 홀징어 등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주목을 받는 14명의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 세계 초연을 비롯한 8회 가량의 공연 중 절반이 솔드 아웃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미 성공한 작품이었다.
 금빛 커튼을 젖히고 공연장에 들어서자 화려하게 빛을 내뿜는 서커스장의 축소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반짝거리는 무대장치에 휩싸인 원형무대와 관객석이 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14명의 아티스트들은 110분가량의 공연에서 솔로 혹은 듀오와 그룹으로 나뉘어 약 10분여의 짧은 작품을 안무하였고, 입장과 피날레를 포함하면 총 12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원형무대와 작품구성은 물론이고 입장과 피날레, 주제까지 모든 것을 서커스와 같이 연출하여 무용공연이 아닌 서커스로 분리한 점도 독특했다.
 14명의 아티스트들이 준비한 서커스 〈지상 최대의 쇼〉에서 관객들은 말(馬) 대신 의자를 조련하는 말 조련사를 만나고, 개와 고양이의 속마음을 통역하는 조련사들을 만난다. 공중에 매달린 후프 위에서 섹스를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똥 모양의 소품을 몸에 두르고 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일본의 퍼포먼스 그룹 콘탁트 곤조는 커다란 새총처럼 생긴 데쓰 머신 (Death Machine)을 가지고 나와 토마토와 오렌지를 몸으로 받아내거나 서로의 뺨을 때리고 싸우며 가학적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인다.

 

 



 공연 내내 〈지상 최대의 쇼〉는 끊임없이 시각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설 때 부풀었던 기대와는 반대로 12개의 소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져 간다. 서커스라는 포맷을 이용한 작품구성의 아이디어는 반짝였으나 그 틀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보여준 작품 하나하나는 어느 것 하나 눈길을 붙들어 맬 만큼 번뜩이지 않았고, 서커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 이외에는 각 작품의 연계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12개의 작은 작품이 모여 하나의 큰 작품을 구성하게 될 때, 드라마트루기의 역할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클라이막스가 없는 12번의 시작과 12번의 끝만을 마주하게 되는 관객들은 공연 중간에 지쳐버리거나 몰입도가 떨어져 버렸는데 이는 어쩌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파리, 브뤼셀, 베를린, 마닐라, 암스테르담, 오사카 등등 다양한 예술의 중심지에서 모인 예술가들의 협업은 국제여름축제의 목적에는 잘 부합하였으나, 세계초연이라는 타이틀과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이름들 뒤로 따라온 결과에는 보통의 서커스에서 흔하게 터져 나오는 탄성조차 불러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22명 무용수들의 달리기 〈아구리〉

 하지만 프랑스 무용단 Ballet du Nord의 디렉터이자 안무가인 올리비아 두보이스는 관객의 집중을 끝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국제여름축제에서 세계초연으로 공연된 작품 〈아구리(AUGURI)〉에서는 22명의 무용수가 65분의 러닝타임 동안 끝없이 무대를 내달리고 또 내달렸다.
 무대 위에 올려진 4개의 커다란 큐브 사이로 조그만 틈새가 보인다. 그곳을 비집고 나온 무용수는 무대 위를 반원 형태로 가볍게 달린다. 무대를 달리는 사람들은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나고 머지않아 무대 위는 셀 수 없이 많은 무용수들로 가득 찬다. 특정한 규칙은 없으나 서로의 길을 방해하지 않으며 달리는 무용수들의 집중력 덕분인지 꽤나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달리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긴장의 무게는 더해진다.
 무질서하던 움직임들은 점차 점프라던가 누군가를 쫓아가는 행위 또는 급작스럽게 무대를 가로지르는 움직임 등으로 번져나간다. 몇 가지 움직임이 추가되는 와중에도 무용수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무대 위의 모습은 예상외로 매우 인상적이다. 관객은 무용수의 얼굴이나 인상으로 그들의 개인 캐릭터를 특정 짓기 보다는 온 힘을 다해 내달리는 몸과 근육의 형태를 통해 캐릭터를 읽어내게 된다.
 또한 모두가 제각각 달리는 와중에 발생하는 무질서 속의 질서와 특정한 패턴 역시 흥미로운 이미지를 제공한다.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패턴은 새 점의 그것을 모방하고 있는 듯 다가온다. 에너제틱하고 조화로우며 규칙적이다가도 때때로 무언가 불안한 미래를 감지하고 경고를 보내는 새들의 이미지가 달리기를 통해 전달된다.
 안무가 두보이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 즉 신의 의지라던가 새들의 비행 형태를 관찰하여 미래를 예견하던 인류, 그 인류의 오라클을 무대 위에 펼쳤다. 안무가의 의도이든 그렇지 않든 그가 그려낸 평화롭지만 두렵기도 한 자연 속의 이미지들은 그대로 무용수들에게 흡수되어 있었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인간존재의 나약함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와 패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 그리고 이따금 발생한 속이 시원한 실수들은 예를 들어 달리다 서로에게 돌진하고 마는- 한 시간이 넘도록 달리기만 하는 작품이 자극적인 서커스보다 오히려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핑크 포 걸스, 블루 포 보이즈(Pink for girls, Blues for Boys)〉

 타베아 마틴의 〈핑크 포 걸스, 블루 포 보이즈〉는 어른은 물론 6세 이상의 아이라면 누구든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위스 출신의 여성안무가는 작품을 통해 여자아이 혹은 남자아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색상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자신과 다른 성별에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명의 여자무용수와 두 명의 남자무용수가 무대 위로 갖가지 소품을 느리게 하나하나씩 들여온다. 소파, 팝콘, 화분, 다리미, 수건 등등. 그리고는 코미디에 등장할법한 쫄쫄이 타이즈를 꺼내 입는데 이 의상의 목적은 마치 성별을 숨기기 위함인 듯도 하고, 성별을 더 부각시키기 위함인 듯도 하다. 의상으로 인해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특징의 구별은 가능하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작품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에 대한 –그렇지만 여자 그리고 여자아이에 관한 쪽으로 상당히 치우쳐있다- 온갖 클리셰와 편견, 제한된 가능성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예를 들어 여성무용수들은 목청을 높여 “ 난 여자아이야. 하지만 이 세상에 여자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여자아이는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무거운 것을 혼자 들 수도 없지. 여자아이는 수학도 못하고 계산도 못하지. 그런데 여자아이가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목청을 놓아 엉엉 우는 거야.” 라고 어린 관객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런 식으로 〈핑크 포 걸즈, 블루 포 보이즈〉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미처 소리 내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누군가는 뒤에서 수군거릴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던져진다. 안무가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선생님들의 인터뷰로부터 만들었다는 대부분의 텍스트와 마테리얼, 공연자들의 아이 연기가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반면 오히려 ‘춤’으로 분리될 수 있는 움직임들이 무용공연이기 때문에 억지스럽게 끼워 맞추어졌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여자아이(여성)와 남자아이(남성)에 대한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안무가는, “어른도 아이도 모두 매일같이 성별과 관련 있는 경계선들을 마주하게 되죠.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같다고 말하고자 한 건 아니에요. 당연히 각 성별에는 다른 점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저 이런 차이점이나 성별의 경계에 대한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설명하고 싶었어요. 제 작품은 문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지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제안이에요.” 라고 말했다.
 타베아 마틴의 〈핑크 포 걸즈, 블루 포 보이즈〉는 기본적이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를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어른들도 한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유치하지 않게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또 꼬마 관객들이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작품을 관람하게 유도하여 어른 관객과 어린이 관객 모두 영민하게 끌어들임으로써 페스티벌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공연이었다.

 

 



 이외에도 국제여름축제의 무대에는 수많은 공연들이 올랐고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볼거리의 다채로움이 여름밤을 물들였다. 특히 이번 국제여름축제의 마케팅 방식이 주목되었는데, 도시 안팎을 채운 홍보물이나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눈에 띄는 포스터는 물론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와 선택의 폭이 넓은 작품 스타일이 많은 관객들을 여름 공연장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많은 작품과 다양한 스타일 중 하나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힘들 테니 말이다.
 신임감독의 영특한 프로그래밍은 물론 3주라는 긴 기간 동안 페스티벌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함부르크 시와 극장, 예술가들과 관객들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2016.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