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프랑스 현지취재_ 제17회 리옹 비엔날레 드 라 당스
춤추는 초상화 같은 댄서들의 인생
이선아_재불 안무가

 제17회 비엔날레 드 라 당스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리옹(Lyon)에서 개최되었다. 9월 1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이번 축제는 다양한 스타일의 현대무용, 네오 클래식 발레, 서커스 등 프로그램이 매우 다채로웠다.
 비엔날레 드 라 당스는 축제의 시작을 '데필레 (거리 행렬)'로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올해는 테러 방지를 위해 거리가 아닌 경기장에서 열렸고, 그마저 비까지 오는 바람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리옹 만의 문제가 아닌 테러 이후, 프랑스의 많은 (특히 야외)축제가 겪고 있는 고충이다.
 리옹에 일주일 가까이 머물면서 하루에 2-3편의 공연을 챙겨보다 보니 프랑스 무용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지인들과 만날 때면 서로 어떤 작품이 좋았는지 묻는 것이 안부 인사나 되는 듯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흥미롭게도 호불호가 엇갈리는 작품들이 많았다.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프랑스 문화. 그러나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걸까?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 있었는데, 나 역시 축제기간 중 최고라 꼽은 작품들이다. 바로 크리스티아나 모르간디(Cristiana Morganti), 라시드 우람단(RACIHD OURAMDANE), 그룹 탕헤르의 아크로바틱(GROUPE ACROBATIQUE DE TANGER)의 작품이 그것들이다. 많은 작품들 중 왜 이 작품들이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이 작품들에는 무용수들의 인생이 담겨있었다. 마치 춤추는 초상화를 보는 것처럼, 그들은 무대 위에 자신을 내려놓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나 모르간디 <제시카와 나> 솔로
(1시간 10분)
 

 크리스티아나 모르간디(Cristiana Morganti)라는 이름만 듣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피나 바우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름까지는 몰라도 사진을 보면 금방 알아차릴 거라 믿는다. 풍성한 곱슬머리를 가진 그녀는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였다.
 크리스티아나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이탈리아에서 클래식 무용을 그리고 독일에서 현대무용을 배운 뒤 1993년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만 게스트 무용수로 계속 활동 중에 있다.

 



 크리스티아나의 공연전날, 기자회견에서 먼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지금껏 많은 기자회견을 다녀봤지만, 크리스티아나의 기자회견은 뭔가 달랐다.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 모습은 물론, 표정과 제스처가 풍부해 그녀를 보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관객들은 그녀를 통해 피나 바우쉬에 관해 듣고 싶어 했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등 피나와 연관된 질문이 많았다. 그녀는 관객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종종 춤까지 췄다. 유머가 있고 표현력이 풍부했다. 그녀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참 좋은 사람임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나왔던 질문 중 하나가 “제시카가 누구예요?”였다.
 제시카는 크리스티아나 자신이라고 했다. 어릴 적 친구를 어른이 되어 만났을 때 흥미로운 얘기 하나를 전해 듣게 됐는데, 바로 크리스티아나가 어린 시절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고 놀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나는 어릴 적 자신이 놀던 놀이를 모티브로 삼아 공연을 무대 위에 올렸다.

 



 크리스티아나는 무대 위에 카세트테이프를 들고 나와 앉는다. 재생버튼을 누르면 제시카가 질문을 하고, 크리스티나는 대답을 하며 주고받는다. 작품 안에는 크리스티아나가 왜 무용을 시작하게 됐는지, 피나 바우쉬 무용단에서 경험, 예를 들면 담배를 무척 사랑했던 피나 그리고 담배를 싫어하는 크리스티아나. 담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작품은 그녀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인간미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담아내는 작업이다.
 공연 관람 후의 뒷이야기가 있다. 공연을 다 보고 밤에 축제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가 크리스티아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녀 앞에 다가가 “크리스티아나, 당신의 공연을 볼 때 극장의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고마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따라 눈물이 글썽일 뻔 했지만,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사실 불어가 아직 어려운데, 어제 당신의 기자회견은 정말 즐거웠어요. 말이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것 같았어요. 기자회견을 통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지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도 뭉클하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라시드 우람단(RACIHD OURAMDANE) <비틀다>
(1시간)

 라시드 우람단은 2016년 1월부터 요한 부르조아(Yoann Bourgeois)와 함께 그르나블 국립현대무용센터(CCN de Grenoble)에서 공동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작품 〈Tordre〉 는 “비틀다”라는 뜻이다. 라시드 우람단이 안무하고 두 여자 무용수가 출연하는 작품이다.
 라시드 우람단은 자신의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게 하면서 그들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프로그램에는 “이것은 듀엣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무대 위의 두 고독함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팔 한쪽이 없이 의수를 끼고 있는 아니 하나워(Annie Hanauer)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초월적인 스핀을 돌면서 자신을 표출한 라우라 주아드카이트. 이 작품은 이 두 여자의 특별한 이야기다.

 



 빅쇼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웅장한 음악 소리와 박수함성소리에 두 무용수가 등장한다. 자신감 넘치게 등장해 무대 중앙에 포즈를 잡고 퇴장한다. 스타 같은 모습으로 여러 차례 등퇴장을 반복한 뒤, 한명씩 솔로 춘다. 한쪽 팔이 없는 무용수는 뛰어난 유연함과 관절들을 꺾어가며 로봇 같은 질감의 춤을 추었다. 몸을 절제하지 못하는 듯 절제하는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큰 키에 아름다운 몸을 가진 아니 하나워. 의수를 낀 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러나 그 어떤 무용수보다도 아름답고 뛰어난 춤을 춘다.
 그리고 또 다른 무용수 라우라 주아드카이트, 그녀는 무대 위에서 오랜 시간 턴을 돌았다. 그 도는 속도와 움직임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놀라운 턴이었다. 팔 모양을 조금씩 바꿔가며 큰 원형을 그려가며 턴을 돌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턴을 돌기 시작했다… 평범한 것이란 무엇이지?”
 그리고 그녀는 그림자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돌면서 나의 그림자를 봐.” 무대 위에는 바닥과 벽을 통해 그림자가 보였다.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턴을 돌면서 꽤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품은 상처 깊은 두 여인의 고백 같은 작품이다. 어쩌면 평범이라는 기준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두 사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무대 위에 그리고 관객 앞에 내려놓는다. 그들이 가진 연약함이 무대 위에서는 아름답고 빛나 보였다. 그들은 꼭 춤을 춰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진실함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성과 사랑을 받았다.

2016.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