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표지인물 인터뷰_ 신작 공연 갖는 벨기에 니드 컴퍼니 무용수 허성임
한국 사회 속의 여성, 콜라주로 조명한다

 
 



김채현
허성임씨는 좀 저돌적인 공연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것 같고, 나 개인적으로는 2008년 <여자가 남자의 주역일 때>(콴도 우나 도나)를 비롯해서 2014년 <튜닝>까지 세 작품을 국내에서 봤어요. 볼 적마다 호기심이 일었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우선 뒤로 미루고, 오는 8월 21-22일 문래예술공장에서 벨기에 단체와 <님프> 공연을 하게 된 경위부터 궁금하군요.
허성임 이번 공연의 연출자인 스테프 레어누스(극작가)를 2011년도에 벨기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페스티벌에서 한 잔 맥주에 제가 좀 취했었는데 이 친구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어 저의 이면을 좀 알아봤다고 해요. 그렇게 인연이 돼서 그와 함께 작업을 하자고 했고, <몽키>(2011)라는 공연을 함께 했죠. 그는 극작가이면서 비평과 교수 활동을 겸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혹시 <몽키>라는 작품에 젠더 문제가 언급되었나요?
홍보용 영상을 보신 것 같습니다. 스테프 작품에서는 항상 섹슈얼한 것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배우와 제가 몸으로만 표현하는 무언극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도 제가 국내의 한팩(한국공연예술센터) 솔로이스트 공연에서 <엔트런스, 인-트랜스>를 공연했을 때 같이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었고 안무에 관심은 있지만 해본 적이 없었던 그가 흥미를 갖고 참여해줬어요. 둘이 함께 자료를 찾아가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흥미로웠던 작업이었습니다.
그로서는 새 장르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때 일주일 정도 한국에 있었는데 스테프는 한국 여성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억압된 여성의 어떤 부분이---. 그러다 한 번에 터져 나오면 엄청나게 표출되는 그런 현상에 흥미를 갖고 있어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님프>라는 작품을 작업하게 된 겁니다.

그럼, 스테프씨는 한국 여성의 어떤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던가요?
우리가 처음 한팩에서 작업을 할 때는 여성들이 친절하고, 정갈하고, 깔끔한 그런 모습이다가 뒷풀이에서 술 한잔하면 일단 모든 것이 표출되어 나오는... 몇 년 전 제가 스테프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래요.(웃음) 그랬을 때 눌려 있던 것이 표출되어 나오는 식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현상과 그런 해석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테프씨가 아바투아 페르메 극단 예술감독이던데, 그 극단도 짧게 소개해 주세요.
아바투아 페르메는 15년 정도 된 극단입니다. 극단이지만 오페라도 하고, 영화작업도 하고, TV 시트콤도 했었습니다. 저도 이 극단을 통해서 단역으로 방송 출연했고요. 그리고 저랑 작업하면서 이 단체가 춤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브뤼셀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메힐레라는 작은 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스테프는 거기서 태어났고 거기서 서포트를 받으면서 작업을 해왔죠.

 



다시 이번 작품으로 돌아와서... 왜 <님프>인가요?

저희가 관심을 가졌던 점은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의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님프는 700년을 넘게 사는 요정이잖아요. 아름다우면서도 굉장히 잔혹하고, 섹시한, 위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의 아름답고 청순한 모습과 함께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콜라주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스토리보다는 영화의 단편에 나오는 듯한 이미지에 더 치중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이미지들을 통해 관객이 각자 나름의 스토리를 구성해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음악은 영화 음악을 한 친구가 할 겁니다.

우리는 님프, 요정 그러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유럽에도 그런가요?
네. 요즘 ‘님프 매니아’라는 영화도 나왔습니다. 섹슈얼에 중독된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님프는 양면적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저와 가장 가까운 여성의 이야기를 다뤄 왔고 이번에도 그런 점이 작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연진이 재미있습니다. 독립무용가 최진한씨, 안은미 컴퍼니에 있었던 김혜경씨, 저 그리고 아바투아 페르메 극단 배우들 3사람이 함께 하고요. 오십대 중반 남성 배우 한 분과, 삼십대 배우 두 분입니다. 우리들 6명이 모두 님프 역입니다.


여섯 유형의 현대적(?) 님프가 조합되면 엄청난 님프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님프> 작업 구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리고 출연진들은 어떤 행색(行色)을 하고 나올 건가요?
이제 한국에서 작업을 시작할 것이어서 아무래도 만나봐야 윤곽이 정해질 것 같아요. 벨기에에서 내일 도착합니다. 공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작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빡빡하게 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들은 개개인의 스토리가 아니라 집단의 님프들이 창출해내는 이미지들입니다. 그래서 역할 지정보다는 장면들을 중심으로 하고자 합니다.

요정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 플러스 사악한 모습도 있고, 또 님프라는 것이 그리스 신화에서도 산, 바다 등 모든 곳에 살고 있는 등 다면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이번의 <님프>는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려 하는가요?
스테프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한국 여성들이 참 아름다운데 그것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카페에 앉아 대부분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 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자신들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점을 너무 의식한다는 거지요. 그 때문에 아름다움이 지속되기는 하지만, 그런 과도한 모습들에 굉장히 놀랐던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좀 편한 장소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님프의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들이 괴기적인 모습으로 돌변했을 때 양극화되는... 그런 모습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이면에 여성들이 가질 콤플렉스들을 전시하고 표현하는 의도가 이번 공연에서 작용하지 않은가 합니다.
네. 어떤 점에서 님프라는 그 자체가 여리고, 어린, 순수한 유년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해외에 나간 지 십년이 지났는데 지금 TV를 봐도 예전 연예인들이 거의 늙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들을 사회가 강요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런 드라이브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형외과 광고가 가능한 나라는 한국입니다. 대중교통수단, 신문 등등... 다른 외국은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도한 성형은 한국에서 사회 병리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성형외과 광고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그런 광고를 보고 사회 균형이 실종된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님프>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풀어간다고 하니 또 관심이 가네요. 최진한씨, 김혜경씨와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나요?

사실 여자 무용수들과만 하려 했었는데 진한씨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대학 동기이고, 가끔 저희 집에 와 쉬다 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무용수 중에서도 특이하고 철학이 있는 친구지요. 왜 자기 안 시키느냐고 연락이 와서 스테프에게 진한씨 공연 영상을 보여줬고, 판타스틱하다 해서 함께 하게 됐죠. 김혜경씨는 지금 스위스 링가무용단과 작업을 하고 있고, 이전에 안은미 선생님 공연에서 몇 번 봤는데 무대에서 관객을 끄는 매력이 강렬하더라고요. 스위스 링가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봤는데 춤을 정말 잘 추더라고요. 그걸 보고 기회가 되면 같이 작업하고 싶어 했지요.

그럼 벨기에 배우 분들은 작업 끝내고 언제 한국을 떠나나요?
공연 끝나고 바로 다음날 갑니다. 다 애기 엄마라서 빨리 가야 합니다. 원래는 한 분만 와서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스테프가 2013년도에 한국에 왔을 때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해서 작업이 좀 커진 거예요. 이 작품을 올해는 한국에서 초연하고 내년에는 벨기에서 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야기된 곳은 메힐라에 있는 로나라는 극장이고 브뤼셀에서도 할 예정이고요.

스테프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번처럼 작지 않은 파급 효과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네, 스테프가 한국에 관심이 많습니다. 집에 엄청난 분량의 영화를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국의 괴기 영화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판타지가 있었던 거죠. 반면에 한국 사람과 달리 양반 다리 하는 걸 매우 힘들어 하더라고요.

스테프씨가 2013년도에 한국에 왔었다 했는데 당시 어디 어디 갔었나요?
서울에만 있었는데 당시 사철탕에도 관심을 보였고, 남산 주변 회현상가에 가서 LP, 저도 모르는 1950년대 한국 가수들의 LP를 사가기도 했죠. 한국인이 왜 사진 찍을 때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는지도 연구한 친구에요. 끊임없이 파고드는 집념이 있죠. 스테프는 현재 유럽에서 엄청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2018년도까지 스케줄이 이미 정해져 있고요.

 



허성임씨는 런던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했는데 런던에서는 활동을 안 하나요?

이제 시작했습니다. 런던 동쪽 트립 스페이스(Trip Space)에서 워크숍도 했고, 10분 정도 쇼케이스도 했습니다. 솔로 작품도 준비 중이고요. 이번 한국 작업이 끝나면 9월에 독일 본으로 가서 7주 정도 리서치할 예정입니다. 1960년대 초반 한국에서 오신 광부, 간호사 분들이 어떻게 거기서 뿌리를 두게 되셨는지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리서치할 겁니다. 제가 외국에 산 지 11년 되다보니 홈(home)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이나 갈등을 갖게 됩니다. 저의 홈이 브뤼셀인지, 영국인지, 한국인지? 정말 나의 집은 어디인지? 어딜 가나 저 자신 타인 같은 느낌을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리서치를 하고, 작품 발표를 독일에서 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독일에서는 리서치까지만 지원을 해주고, 그 이후는 제가 다시 진행해 가야 합니다. 지원 해준 기관이 NRW에서 잘 알려진 기관입니다. 아파트, 스튜디오, 월급, 제 콜래보레이터의 월급, 그 밖에 필요한 기자재까지 지원해주지요.

어떤 식으로 리서치를 하나요? 우리가 통념상 갖는 리서치보다는 충실하지 않나 하는 짐작도 듭니다.
일단 저랑 콜래보레이터로 들어가는 분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국에서 만난 분입니다. 한국분이신데 어머니가 간호사로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한국어를 못하는 독일 사람이지만 그 분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작업 표현을 할 것입니다. 저희는 홈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제가 트립 스페이스에서 10분 정도 쇼케이스를 했을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몸의 골반이었습니다. 골반의 움직임과 보이스를 더해서 골반이 이야기하는 것인지? 외계인이 골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었습니다. 일단은 쇼케이스에서 보여줬던 것은 저의 이야기였지만 작품에서는 그분들을 소재로 해서 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맥락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을 계획입니다.

그럼 리서치를 하고 그것을 작품화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독무가 될지 집단무가 될지 하는 것은 리서치 후에 나오는 것이고요?
지금 생각으로는 독무일 듯합니다. 내년 중후반에 발표할 듯한데 어느 지역에서 하게 될지는 미정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작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작업했던 단체나 니드컴퍼니, 아바투아 페르메도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고, 제 개인작업도 있고 또 제가 출산예정이라서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일이 많이 들어와 너무 감사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중점을 두고 풀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주 활동 무대는 런던+브뤼셀+서울이 되겠네요?
네.

지금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합니다.
로사스의 파츠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깜짝 파티를 갔었어요. 다들 테이블 밑에 숨어 있다 “서프라이즈” 하면서 나와 깜짝 놀라게 해주는 생일파티 있잖아요. 사실 예술하는 분들은 주로 예술하는 분과 결혼하잖아요. 그때 남편은 변호사였었어요. 다들 예술가만 있는 모임에 변호사가 와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었고 그렇게 인연이 닿았죠. 지금은 뱅커로 일하고 있고요.

남편분은 한국을 좋아하나요?
네. 그냥이 아니고 너무 좋아합니다. 남편이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8번은 왔던 것 같아요. 휴가 때마다 왔었지요.

그 남편은 한국 어디어디 갔었나요?
제주도, 부산, 경주, 청주, 춘천 등 많은 곳에 갔었습니다. 한국의 라이프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남편은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허성임씨는 어떠세요? 유럽에 사는 것과 한국에 사는 것.
저로서는 사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좋죠. 좀 아쉬운 부분들이 해외에서 자기 작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벨기에 같은 경우는 벨기에 사람이 아니면 지원을 안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벨기에에서 공부를 하고 자기 작업을 하고자 하는 한국 분들이 많은데 자리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부분에 한국이 조금의 도움만 주면 힘이 될 듯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제가 축제에 참가 신청을 하고 싶은데 개인이 신청을 하면 잘 안 받아지는데 한국문화원에서 접촉을 해주면 훨씬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굳이 경제적 지원이 아니더라도요. 지금 한국 문화원 자체가 한국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잖아요. 한국의 유명한 분들 초청해서 공연을 하게 되면 비용은 많이 들이는데 한국 동포들만 와서 보고 가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프로그램과 연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지적인 것 같고, 이러한 의견들이 좀 수렴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부분은 새로운 제안으로 널리 알릴 만합니다. 그럼 주제를 조금 바꿔서, 언제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으로 갔던가요?
95학번으로 한성대를 99년에 졸업했습니다. 유럽은 2000년도였는지 2001년도였는지 비엔나 임플스 탄츠(Impulstanz) 행사에 연수를 갔다가 로사스의 <드러밍>을 보고 잠을 못 잘 만큼 감동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벨기에로 가야겠고 다짐했죠. 그리고 2003년도에 파츠(P.A.R.T.S.) 학교 오디션을 봤고 그 해에 한국 사람을 처음으로 3명을 뽑았어요. 윤수현, 우경희, 저 이렇게 됐죠. 윤수현과 저는 세컨드 사이클 2년 과정이었고, 우경희는 퍼스트 사이클 4년이었고요. 일종의 편입 과정으로 3, 4학년 과정만 하면 되는 안무자 과정이었죠.

재학 중에 학비는 냈었나요?
학비는 첫해에 입학금까지 해서 5000유로, 그 다음해에 2500유로를 냈습니다. 그게 식대까지 포함된 금액입니다. 거기다 학교에서 장학금도 2500유로 정도 나와서 거의 공짜로 다닌 셈이었습니다.

 



안무자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가 놀란 부분으로 학생-선생의 관계가 수평관계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교장과 학생들이 함께 강사를 뽑는 일입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강사를 뽑았죠.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주로 어떤 과목을 들었나요?
재학생은 세컨드 사이클에 12명, 퍼스트 사이클에 30명 정도였습니다. 일단 오전에 가면 요가, 발레, 컨템퍼러리 테크닉 수업을 듣고 나면 점심시간입니다. 저녁에는 개인 작업을 하거나 수업을 듣죠. 오후 6시에 수업이 끝나는데 수업이 끝나고 또 개인작업을 하니까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었습니다. 요리수업, 마사지, 연기, 노래 등의 수업도 있었어요. 연기 수업이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연기 수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인상적인 연기 수업이라면 학교 수업보다는 얀 파브로와 얀 라우어스와 함께 작업할 때였습니다. 제가 졸업하기 전에 얀 파브르의 오디션을 보러갔어요. 이탈리아인을 뽑는 오디션이었는데 제가 모르고 갔죠. 저보고 이탈리아어를 하라는데 모르니까 모짜렐라, 스파게티, 볼로네즈...라고 주워 담았는데, 그들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오디션에 합격을 했고 그 때 옷을 다 벗고 올리브 오일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저도 놀란 게 제가 너무 자연스럽게 벗고 들어가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최종 통과를 해서 2주간 함께 작업하기 시작해서 2년 동안 투어를 다녔죠.
두 분에게 연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니드 컴퍼니의 얀 라우어스는 저에게 “넌 댄서로서보다 연기자로서 더 마음에 든다”고 했을 정도로 연기적으로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얀 라우어스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은 형식적인 연기를 버리고 무대에서 허성임을 이야기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레이닝되지 않은 모습의 연기자, 세련되지 않게 구사되는 외국어 대사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았고요. 작년에는 오스트리아 국립극단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파츠 학교 졸업할 때 작품을 발표하게 되죠?
네. 근데 저는 1년 반만 다녔기 때문에 작품 발표를 못했습니다. 원래는 중퇴여야 했는데 얀 파브로와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졸업을 시켜줬습니다.

현재 그 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있어요?
지금은 없습니다. 당시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서 그 뒤 5명을 뽑았었는데, 결과가 흡족하지 않아서였는지 그 뒤로는 잘 안 뽑는 것 같아요. 기능적 스킬에만 치중하면, 그런 학교에 적응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저도 나중에 학교의 그런 방식을 터득하게 된 점도 있습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있는 거죠?
네. 지금도 필리핀, 일본 친구들도 있습니다.

얀 파브르 오디션 당시 올리브 오일 위에서 춤을 췄다고 했는데, 애당초 그 작품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오디션을 한 건가요?
네. 원래 있던 작품이었는데 그 역할을 하던 이탈리아 사람이 나가면서 오디션을 진행한 거였어요. 맨처음 2004년도에 만든 작품으로 알고 있고 저는 2006년부터 출연했는데, 지금까지 100번은 한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3번 했고요.

100회 정도 했다면 여러 나라를 다녔겠네요.
네. 제일 인상에 남는 곳은 미국이에요. 제가 뉴저지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세운 어느 시어터 학교에서 저를 초청했어요. 관객이 40~50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국이 소식이 늦구나라고 생각했었죠. 일본 사이타마에서는 엄청나게 흥행이 됐었고, 파리, 페루 등 안 가본 데가 없었죠.

 



얀 파브로 무용단에는 얼마나 있었죠?

2008년까지요.

지금은 그 무용단을 나왔다고 봐야 하나요?
파브로는 일이 계속 있는 게 아니라 작업이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사회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레 발레 세 드 라 베로 옮겼죠. 거기서 1년 반 정도 있었고, 그 뒤 스위스 컴퍼니랑도 작업을 했었고요. 그러고 나서 니드 컴퍼니랑 작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 니드 컴퍼니에서는 정규 단원입니까?
2009년 말부터 니드 무용단의 정규 단원이며, 무브먼트 어시스턴트입니다.

니드 컴퍼니 구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벨기에가 조그만 나라잖아요. 그리고 외침을 많이 받았던 곳이라 유대 관계가 정말 끈끈해요. 그래서 얀 라우어스(Jan Lauwers)가 총 예술감독이고, 그 부인인 그레이스 엘렌 바커가 안무자이고, 조카가 있고, 그리고 단원들이 있죠. 마틴 세이거는 음악감독으로 음악작업도 하면서 저희랑 같이 무대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저희도 같이 노래도 하고, 작년엔 제 음악 CD도 만들었습니다.

무브먼트 어시스턴트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요?
무브먼트 어시스턴트는 조안무죠. 안무가를 도와주는 작업으로 그레이스가 이미지는 많은데 몸으로 표출이 잘 안 될 때 제가 많이 도와주죠.

니드컴퍼니 단원은 몇 명인가요?
현재는 10명 안팎이고, 요즘 유럽도 경제적으로 힘들어 단원 수를 줄이고 있죠.

월급을 받는 건가요?
원래는 월급을 받다가 제가 작년에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작업이 있을 때만 받습니다.

니드 컴퍼니는 단원들은 그럼 벨기에 사람인가요?
아니요. 영국, 프랑스, 벨기에, 일본, 튀니지 출신의 무용수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인 저도 있고요.

 



제가 <콴도 우나 도나>, <엔트런스, 인-트랜스>, <튜닝>을 봤는데, 세 작품의 공통점이 일단은 몸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언급된 주제이겠지만 지나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가진 인상은 참 에너제틱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착의했을 때와 탈의했을 때의 에너지 흐름에 차이가 있을 텐데 그 점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다르죠. 제가 <엔트런스, 인-트랜스> 작업을 했을 때 마지막에 탈의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저희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리허설을 했을 때는 속옷을 착용하고 했었는데, 실제 무대에서 탈의했을 때의 과정은 이랬습니다. 제가 연약해진 느낌, 공격에 취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탈의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탈의한 마지막 상태에서 캐릭터가 스스로 인간으로서 일어서는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흥미롭습니다. 옷이 인간에게 방어기제로 작용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굳이 무대가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도 탈의한다면 연약해지겠죠.
의미가 없는 상태에서 탈의한다면 정말 무의미합니다. <필리아>는 탈의가 필요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의상을 입고 했고요. <튜닝>을 했을 때는 의상을 입고 해보고 탈의한 상태에서도 해봤는데 탈의했을 때가 작품과 더 잘 어울려서 했던 것이지 쇼크를 주고 싶어서 했던 것은 아닙니다. 작품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은 것뿐이죠. 탈의를 한다면 조명도 당연히 달라져야 합니다.

누드에서는 살갗 자체가 그 사람의 의상이라고들 합니다. 똑같은 작품을 두고 착의했을 때과 탈의했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옷을 벗었기 때문에 저의 몸의 어느 부분은 더 프리해지고 어느 부분은 더 반대가 될 수도 있어요. 더 프리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의 표현이나 표출에 저의 모든 몸이 포함되기 때문에 표현 자체는 굉장히 활동적으로 가게 되고요, 또 몸의 중요 부위를 염두에 두므로 너무 오픈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약감이 따르죠. 탈의할 때 몸의 전체가 살아나고 감지되는 순간들이 있지요.

특히 그런 경우에는 피부 자체가 예술적 매체로 될 수 있습니다. 팔 부위의 피부라 해도 탈의한 상태와 탈의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그 피부의 가치나 느낌은 완전히 다르죠.
저로서는 여성으로서의 탈의가 아닌 인체로서의 탈의에 초점을 둡니다. 모든 사람의 몸은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콴도 우나도나> 경우는 좀 달랐지만 탈의를 통해 여성상을 보여주기 보다는 인체에 대한 탐구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좀 궁금한 부분으로 작품 제목 <콴도 우나도나>를 우리말로 적절히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자가 남자의 주역이었을 때’로 해석하더군요.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자가 남자를 이끌 때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제목에서 프린시펄은 남자의 원천이 여성이다는 점을 시사하군요. 그런 점에서 보면 모성, 생명의 원천이라는 해석 내지는 의미가 따라 다니겠죠?
네. 그래서 제가 작품 안에서 볼을 가지고 저글링하는 부분들이 나오는 게 그런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죠.

 



<튜닝>에서 장수미씨와 협연했잖아요. 장수미씨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1999년 ‘춤을 찾는 사람들’ 행사(자유소극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 뒤 장수미씨는 바로 독일로 유학을 갔고, 저는 2004년도에 벨기에에 가서 유럽에서 만났죠.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자 이야기가 나와 하게 된 것이죠. <필리아>의 경우 2년 정도 리서치를 했습니다.

<튜닝> 작품에서도 탈의가 나오는데 장수미씨 의견은 어떠했던가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너무 많이 넣었었는데 오히려 의미전달이 안된다고 해서 다 쳐냈습니다. 그리고 뭐부터 시작을 할까 하다가 드럼이라는 것이 사람의 맥박과 가깝기 때문에 열광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드럼 비트에 바탕을 두고 진동을 보여주고자 했죠. 저희는 연습을 할 때 비디오로 찍어놨다가 나중에 체크를 하는데 영상을 보다가 옷을 입지 않고 우리 몸의 진동을 보여주면 어떨까 라는 의견이 나와서 같이 부분 탈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부분으로서 <튜닝>에서 왜 락(rock)을 소재로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락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으로 락의 남성적 파워를 소재로 하고 싶었습니다. 락콘서트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마초적인 연주자, 에너지 넘치는 관객들인데, 이런 이미지들을 제하고 락 콘서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락콘서트 비디오도 많이 봤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심플하게 기타 하나, 스피커 두 개를 동원하고 우리가 출연할 예정이었어요. 원래는 남성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올라와 있었는데 파워가 그분에게 쏠리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전에 그 분을 무대 밖으로 내보냈죠. 그러면서 여성 무용수 둘만 남게 됐고, 여성들 몸으로만 진동을 표현하게 된 것이죠.

작품 후반에 말을 하잖아요. 'we lost two worlds' 아니면 ‘we lost two words’, ‘인크레더블(incredible)’ 등의 대사가 나옵니다. 출연진 입장에서 그 대사들은 어떤 의도였어요?
단어가 몇 개 나옵니다. two worlds인지, two words인지 좀 애매하게 발성했죠. ‘인크레더블’, ‘컴패터블(compatible)’, ‘어메이징(amazing)’ 등의 단어들은 히어로이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경지를 넘어선, 열광하는 관객들, 우리로서는 거의 도달할 수 없는 수퍼스타들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 <튜닝>은 록의 우상성에 대한 반문이라고 할까요?
네. 남성상에 대한 반문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때도 탈의에서 저희가 여성으로서의 탈의가 아닌 남성으로 보이는, 때로는 기타리스트로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관객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이미지가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죠.

 



<튜닝> 작품을 보면 초반에 약20분 정도 뒤돌아서서 등의 꿈틀대는 결만을 보여줍니다. 춤에서 그다지 흔한 장면은 아니지요.

그렇게 20분을 끌고 가려면 제 머릿속에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떨면서 제 머릿속에 있는 락커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저는 기타리스트였다가 열광적인 관객이었다가 그렇게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이 변환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튜닝>을 보면서 오히려 남성 무용수, 체격이 여성 출연진과 좀 어울리는 남성무용수가 함께했다면 오히려 더 중성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튜닝>을 몇 회 공연을 했나요?
유럽에서 3회 공연, 한국에서 2회 공연, 다시 유럽에서 3회 공연 하고, 또 스위스에서 2회, 모두 10회 공연했습니다. 둘 다 만족스러웠던 작업이었습니다.

몸은 가장 취약하면서도 가장 근원적이어서 몸에서 극과 극을 연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허성임씨 작업이 몸 측면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나로서는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다른 계획은 어때요?
장수미씨 하고 했던 듀엣 두 작품을 더 연장하고 싶고요. 이제 외국에 나간 지 10년이 지났는데 앞으로의 10년도 한국과 함께 발전하고 싶습니다.

2015. 08.
*춤웹진